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오직 바다가 느릴 것이라는 사실만이 분명하다. 친구가 옳았다. 우리는 결코 바다보다 천천히 늙을 수 없다. 우리가 사라져도 어떤 식으로든 바다는 남을 것이다. -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중
재작년까지는 먹을 걸로 생각지도 못했던 무화과를 좋아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4알의 무화과를 꼭지를 들고 살살 씻고 4 등분한다. 도자기 수업에서 만든, 세상 유일의 접시에 올리며 나의 어여쁜 아침이 시작된다. 예전에는 맵디매운 청양고추가 내 밥상에 매 끼니마다 올라왔는데 언제부턴가 그 왕좌를 무화과와 가지, 그리고 세상의 모든 호박 - 애호박, 단호박, 땅콩호박, 늙은 호박 - 에게 물려주었다.
길을 가다 콩알만한 풀꽃을 만났다. 너무 반가워 꽉 다물렸던 입이 절로 벌어지고 벙싯거린다. 아이고~ 이렇게 귀한 아기는 어디서 왔누? 이야기 속 할머니처럼 풀꽃에게 말 건네고 싶어진다. 사람들의 예식에 함께 하는 커다랗고 색 진한 꽃들이 조금씩 식상해지고, 작은 꽃들이 주는 감동에 푹 젖는다.
나에게 나이 듦은 그렇게 다가오는 듯하다. 맵고 강한 음식 대신 무슨 맛인가 싶은 슴슴하고 담백한 맛이 더 당기는 그 순간에, 발밑에 밟힐 뻔한 쥐똥만 한 꽃과 강아지풀에 마음을 쓰는 그 순간에, 자박자박 나이가 걸어오나 보다.
지난주이던가. 누군가 나에게 이제 인생에서 ‘가을’을 맞이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곰곰 생각하다 아직은 여름인 것 같다고 했다. 9월 중순인 지금이 딱 내 삶의 시기와 맞는 듯하다고. 여름이라 하기에는 더위가 한 풀 꺾인 듯하고, 가을이라 하기에는 한낮 더위가 아직도 맹렬한 시기.
솔직히 말하자면 가을에 거두어들일 열매가 보이지 않음에 민망하고, 여름의 표상이라 할 만한 열정도, 사랑도 미적지근해 열없다. 어딘가 끼워 달라 했다가는 청춘에게도 욕먹고, 어르신들에게 욕먹기 딱 좋은 그런 나이, 그래서 중년이라 하나보다. 어르신들 몰래 조용히 사부작사부작 젊음의 뒤안길에서 물러나 거울 앞에 앉아볼까 말까 고민하는 시기이다.
3년째 해안에서 살다 보니 여름, 가장 뜨거운 계절에 노을이 가장 붉고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삶에서도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큼 선명한 노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 정도로 내 여름, 청춘이 치열하지 못했음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내는 노을에 실망도, 자책도, 후회도 하지는 말자고 도닥도닥거린다.
그저 하루하루 배우는 게 즐거워 빨빨거리며 다니고, 사람들과 얘기하고 글 쓰며 서로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응원하고 격려하며 살아가는, 이 정도의 삶이면 인디언 핑크 정도의 색깔은 띠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주시에서만 살다가 결혼하고 시댁, 성산포에 갔던 신혼 초, 아버지가 경운기에 무언가를 싣고 오셨다. 이건 뭐꽈? (이건 뭐예요?) 묻자마자 벼락같이, 천둥같이 쏟아지던 아버지의 말. 아! 게난, 깨도 모르느냐. (아! 그러니까, 너는 깨도 모르느냐.) 그러던 내가 이젠 밭에 난 당근도 알아보고 애한테 가르치며 뻐긴다.
가지는 꽃도 보라색이다.
사과꽃에서는 사과향이 난다.
수박은 탁구공만 한 꼬마일 때부터
검은 줄이 그어져 있다.
당연하다고? 그 당연한 삶의 작은 진리들을 나는 진심으로 환호하며, 기쁨에 가득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워 나가고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세상을 다시 보는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쳐가는 나의 나이 듦이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