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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Oct 07. 2023

미래가 불안하다

지구가 위성과 충돌한다거나 식량 문제로 대 혼란이 온다는 이야기, 특히 예비군 가면 틀어주는 영상 중에 ‘세계는 불타고 있다’ 그런 거 보면 곧 전쟁이 터질 것만 같이 설명을 잘해주는데, 정말 그럴싸하다. 보고 있으면 진짜 불안하다. 핵전쟁 관련된 영상을 보다가 아파트라 방공호는 못 파더라도 생존 가방 정도는 준비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검색을 해 본 적도 있다. 그런데 이 생존 가방에 비상식량이 들어가던데 그러면 유통기한에 따라서 선입선출 대장도 정리해야 할 것 같고 뭐 이래저래 귀찮은 게 많아 보여서 그만뒀다. 대신 생수나 쌀은 좀 많이 사둔 적은 있었다.


정말 진지하게 대비를 하는 사람도 봤다. 어느 미국인 아저씨였는데, 집 근처에 커다란 벙커를 만들어서 최대 몇 명이 몇 달 동안 지낼 수 있다며 마치 무슨 신혼집 소개하는 프로그램 마냥 이방 저방 돌아다니며 소개했다. 어쩌면 이분은 오히려 핵전쟁이 났으면 하고 바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야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이 벙커를 한번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봤지? 맞지? 내가 핵전쟁 난다고 했지?’ 하면서 얼른 벙커에 들어가서 뚜껑을 닫고 초코바를 하나 뜯어서 야무지게 드실 것 같았다.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주는 강도는 얼마면 적당할까. 이런 질문을 왜 하냐면 최근에 내가 미래를 무척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다 춘기형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미래를 생각하면 할수록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더 많이 생각이 난다.


노후를 편하게 보낼 만큼 재산을 확보해 뒀는가, 아니 당장 쓸 것도 모자란다. 그럼 앞으로는 더 많이 벌 수 있는가, 글쎄 내가 나이가 적은 게 아니라서. 아이들 교육 해외 연수나 아이패드 같은 도구까지 시원하게 제공할 수 있는가, 어렵다고. 더 큰 집으로 이사할 수 있는가, 없다. 가능성은 있는가, 몰라.


도통 답이 없다. 그래서 현재 상황에 비추어 미래를 그려보면 참담하다. 애들은 크지, 물리 법칙을 거스르며 집은 점점 좁아지고 있지, 회사를 계속 다닌다고 해도 크게 나아질 것은 없어 보이지. 불안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잠깐이고 불안감은 내 주변을 한 바퀴 쓱 돌고 다시 내 등에 와서 다시 찰싹하고 들러붙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다. 미래는 항상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제멋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현재 내 주변을 쭉 살펴보면 이게 스무 살 때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는 것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는 거다. 목표로 삼아 본 적도 없고 미리 준비를 한 적도 없었는데 이렇게 살고 있다(좋은 방향으로. 어쨌거나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잘 살고 있으니까, 예전엔 쥐뿔도 없었는데). 그러니까 미래는 진정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당연한 소리와 함께 조금 더 사고를 확장해서 생각해 보자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생각하는 최악을 피하고 최선을 당기는 쪽으로 최소한의 장치를 구비해 두되, 나머지는 운에 맞기는 수밖에 없다는 급발진 운타령으로 결론을 낼 수 있겠다.


그러니까 핵전쟁이 두렵다면 최소한의 대비는 하되 너무 거기에 몰입되어 현재에 너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소리다. 최소한의 대비라면 방사능 빛을 차단할 수 있는 금박지 같은 거 몇 개 사놓는 거겠지. 엄한 데다 땅 파고 계속 관리하고 그런 거는 하지 말자는 거다. 내 노후가 걱정되고 지금 회사 생활만으로는 불안하다면 뭔가 하나 기술이든 학문이든 뭔가 하나 주제를 잡고 조금씩 연마하면서 실력을 쌓아나가면 족하다는 건데, 그래도 아마 불안감은 쉬이 달아나지 않을 것이다. 이거 뭐 찔끔찔끔한다고 인생이 다이내믹하게 변할 것 같지도 않고 다시 한 바퀴 뺑 돌아서 내 등에 ‘불안’ 이러면서 들러붙겠지. 어쨌든 현재를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가 되시겠다.


수능을 준비하는 입시생 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도 미래가 참 불안했던 것 같다. 대학에 따라 내 인생이 휙휙 변한다고 얘기들을 많이 하시니까, 어찌 될지 모르는 내 인생이 혹시나 최악으로 치닫진 않을까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인데, 사실 뭐 꼭 그때 그런 점수 그런 대학 그런 방향이 아니었더라도 지금 내 인생이 더 나빠지진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오히려 더 좋았을 수도 있고. 그래서 그 당시 나를 만나면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다.


어? 너 지금 불안해할 필요 없는데. 뭐가 되었든 어쨌든, 네 미래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정 불안하다면 최소한으로 대비할 수 있는 게,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공부 그거니까 계속하던 거 하면서, 현재를 좀 즐겨도 될 거 같은데. 딱 그 정도면 될 거 같은데.


인간이 용감해질 수 없는 건 상상력 때문이라는 영화 대사처럼. 상상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겁이 나는 거 같다. 그리고 좋은 쪽으로 상상하기보다는 나쁜 쪽으로 상상하는 거에 더욱 집중하도록 인간은 세팅이 되어 있어서(그게 생존 면에서 유리하니까) 항상 최악으로 생각한다는 걸 이해하고 아예 생각을 하지 말거나, 아니면 하더라도 ‘인생사 결국 운빨’ 혹은 ‘하늘의 뜻’ 뭐 이런 걸로 소멸시키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현재에 만족하고 충실하는 편이 훨씬 가치가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미국 아저씨는 즉각 벙커 관리를 그만두어야 한다. 손녀도 있던데 그냥 손녀랑 놀이공원에 가고 맛난 거 먹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는 거에 열중하되, 정 관심이 있다면 가끔 금박지나 휴대용 정수통 같은 거 사 모으는 취미나 가지면 될 일이다.


나도 마찬가지. 내가 꿈꾸는 게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해 조금씩 준비하고 있는, 그거나 빠짐없이 계속하면 될 일이지 억지로 상상해 가며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는 거 알겠는데 자꾸 등에 착착 달라붙는 건 이렇게 글 쓰면서 조금씩 소멸시키면 되겠다.


누가 그랬는데, 글쓰기는 힐링이라고. 그래, 맞는 말 같다.




덧붙이는 말: ‘춘기형’은 사춘기의 비유입니다. 첫 화에 설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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