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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Oct 12. 2023

초조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이룬 게 얼마 없는데, 나이는 많고 큰일이다. 이렇게 계속 쭉 가다가는 금방 오십 대, 육십 대가 될 것만 같다. 뒤에서 누군가 계속 내 등을 떠밀고 있는데 나는 힘을 주며 버티고 있는 것 마냥 몸은 긴장되고 마음은 초조하다. 그래서 시간이 늘 아깝게 느껴진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회사에 있는 시간도 가족들끼리 여행을 가서도 항상 쫓기는 느낌과 함께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휴대폰 게임은 고사하고 영화 보는 시간도 아깝게 느껴져서 극장 안 간 지가 거의 몇 년은 된 것 같다. 그러면 그렇게 시간을 아껴서 뭐 대단한 걸 하느냐,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게 무슨.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언제나 시간은 부족했고, 지금부터 시작하기엔 늘 늦은 것 같았고, 항상 나이가 많다고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군제대를 하고 대학교에 복학했을 때가 23살이었는데 노땅이라고  생각했다. 30살이 되었을 때는 청춘이라는 따뜻한 육지를 떠나 멀고 먼바다를 표류하는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더 거슬러 가보면 고등학생 때 대학만이 살 길인가를 고민하며 펑크 로커를 꿈꿨으나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린 것 같아 포기했다. 만약 30살이 되었을 때라도 기타를 처음 배우고 음악 만드는 기술까지 10년간 연마했다면 지금쯤 밴드 보컬은 몰라도 유튜브 스타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할걸 그랬다.


어쭙잖게 위로한답시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거나 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이른 때와 같은 말을 한다면, 그건 참 공감이 안 간다. 어떤 속담이나 명언이든 간에 스스로 성찰이 있어야 흡수가 되는데 내용을 모르고 결론만 들어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간다. 나이가 어떻게 숫자야, 살아온 세월이지. 왜 그렇게 사람이 단순해. 가장 늦었다고 내가 생각했으면 늦은 거지. 이르다고 생각해야 이른 거고.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자꾸 이르대. 그럼 뭐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살았을 땐가. 배부르다고 생각했을 때가 고픈 거고? 말도 안 되는 얘길 하고 있어.(춘기형 거기 있구나. 그렇지?)


만약에 40살인 내가 20살인 나에게 ‘그냥 그거 해. 절대 안 늦었어. 지금 좋아. 해’라고 말해주고 싶듯이, 60살인 내가 지금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한참 남았어. 천천히 해. 괜찮아. 아직 멀었다 너‘ 뭐 그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또 한편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하다. 기분 좋아져서 하나 더 해보면, 70대 노인에게 가서 ’어르신 저는 40대입니다만, 지금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어서 하루하루가 초조하고 마음에 조급증이 나있습니다요 어르신‘ 한다면, 나에게 뭐라고 피드백을 줄까. ’한창이구먼 뭘 그려‘ 뭐 그런 게 아닐까.


삶이 늘 그랬던 것 같은데 딱딱하게 숫자를 들이대면 답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 우리 둘이 버는 연봉에 지금 나가는 고정비에 앞으로 예상되는 예비비까지 고려하고 그리고 아이 하나 키우는 데 평균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에 연봉 상승 혹은 중단까지 예측해서 휴대폰 가게 점원이 계산기 두드리듯 탁탁탁 하고 나면 결론은, ‘결혼 불가, 육아 불가, 마이너스, 혼자 사는 쪽을 추천함‘으로 나올 것 같다. 그런데 또 살아보니 살아지더라 하는 경험담이 여기저기서 나오지 않나. 삶에 변수가 너무 많아서 그것까지 계산기에 다 욱여넣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 대략적인 추이 정도만 감안을 할 수 있을 뿐이지 절대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꿈을 만들고 차근차근 할 수 있는 걸 하되, 긴장감이 들면 그걸 동력으로만 활용하고 나머지는 찌꺼기 취급해서 잘 버려가면서 깜깜한 도로 위에서 헤드라이트가 비치는 곳까지만 잘 보며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시계는 그때 보면 된다. ’5시네. 얼추 예상대로 왔네, 늦었네, 빨랐네‘ 하면서.


살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거나 멀리 앞을 내다보는 경우가 있다. 가끔이라면 물론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건 맞는데, 가령 그것이 현재를 살고 있는 나에게 수시로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면 물리쳐야 하는 대상으로 지정을 해야 한다. 왜냐면, 쓸데없기 때문에. 방해만 되고.


눈앞에 보이는 것만 믿고 가는 거다. 그러다 이 길이 맞나, 잘 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잠시 차를 옆에 세워두고 지도를 훑어본다. 확인했으면 다시 달리는 거다. 그런데 자꾸 중간에 차를 세우고 이 길이 맞나, 아닌가, 이 지도 업데이트 안 된 거 아닌가, 그러게 내가 내비게이션을 사자고 했잖아 하면서 시간을 지체하면 못 간다. 하염없이 늦어지고 남은 기름도 다 떨어지고.


나는 지금 비상 깜빡이 켜고 잠깐 섰다. 춘기형과 함께.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최근에 일이 잘 안 풀리고 회사에서도 스트레스가 조금 있어서 약간 센티해진 것 말고는 특이사항이 없는 것 같다. 그러면 그냥 다시 달리는 거다. 모니터 켜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다. 타이핑하는 거지. 그냥 계속. 쭉!


그렇지? 춘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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