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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Oct 22. 2023

의욕부진 다 귀찮다

가장 귀찮은 게 술자리다. 회사에서 술 먹는 거는 이제 재미가 없다. 뻔하고 지루하고 별로 할 말도 없고. 차라리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과 마시는 게 더 좋다. 동네 이슈나 아기 엄마들 에피소드를 들으며 ‘에이 그건 좀 아니지’, ‘진짜 멋진 사람이네 리스펙’, ’자, 잘 들어봐 이 사안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와 같은 피드백을 주는 게 훨씬 신난다. 게임은 원래 재미가 없었고, 넷플릭스 드라마도 흥미가 없다. 음악은 예전에 좋아했던 음악만 듣고, 찾아서 즐기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홍대에서 인디밴드 공연을 보는 걸 좋아했는데 이제 좀 별로다. 왜냐면,


어릴 때는 와와! 잘한다! 보컬 목소리 좋아요! 베이스 예쁘다!라고 하면 그건 관객의 호응으로 취급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양복 입은 아저씨가 술에 취해서 워워! 예쁘다! 호우 오우! 하는 건 뭐랄까. 저 멀리서 우릴 본다면 그냥 술에 취한 주책바가지 아저씨들 같은 느낌이랄까. 마치 젊은 친구들 사이에 껴서 술 마시려고 홍대에 왔다가, 음침하고 음악소리가 나는 지하에 끌려서 내려가 보니 밴드가 음악을 하고 있는데 노래가 끝나면 보컬 가슴팍에 만 원씩 찔러주는 그런데인 줄 알고 호우 오우! 를 외치며 취해서 비틀거리는 그런 사람들처럼 보일까 봐 신경 쓰인다. ’형, 제발 예쁘다 좀 이런 거 하지 마. 음악 관련된 멘트만 치라고‘ 하며 술 취한 형에게 한 마디씩 하는 것도 미안하고, 그래서 잘 안 간다. 가더라도 점잖게 박수만 치고 맥주병만 입에 대는데 그것도 짜증 난다. 왜 난 몸을 막 흔들고 머리도 막 미친놈처럼 돌리며 좋아해요! 처음부터 다시 가자 시발! 기타 나이스! 이런 멘트를 못하냔 말이다. 안 간다. 그냥 이제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예전에 즐겼던 것들에 흥미를 잃었거나 접근이 어려워졌다. 이렇게 되면 삶이 너무 팍팍할 것 같아서 고민을 하다가 ’아이돌을 한번 좋아해 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음악도 찾아 듣고 굿즈도 사서 모으고 기회가 되면 공연장에도 가보고 그러면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외모를 가진 아이돌 멤버가 있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영상을 몇 개 봤는데. 도저히 몰입이 안 된다. 그냥 아기여서, 내가 좋아하는 대상으로 설정하기에 너무 무리가 있었다. 귀엽게 보이려는 포즈나 멤버들끼리 장난치는 모습들도 뭐랄까 그냥 중학생 조카 같은 느낌이랄까. 포기했다.


중학생 때, 쉬는 시간에 반장이 볼펜 두 자루를 가지고 책상 위에서 푸슝푸슝 으악 으악! 하면서 펜끼리 격투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게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자기는 초등학생 때 이렇게 노는 걸 참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며 어른이 되어서도 이렇게 놀 거라고 말했다.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로봇 메카물에 나오는 캐릭터 장난감이 몇 개 있었는데 인형놀이하듯이 서로 싸움도 붙였다가 화해도 시켰다가 1초도 안 돼서 즉시 배신하며 영화 한 편 홀로 찍으며 놀곤 했다. 장난감 가게에서 최신형 장난감을 보면서 ’아, 저거 있으면 정말 제대로 한판 놀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난 다음 생각한 것이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나는 꼭 저것보다 더 좋은 장난감을 다 모아놓고 방대한 스토리의 범우주적 세계관으로 점철된 스토리를 만들면서 놀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중학생이 되니 재미가 없었다. 장난감을 손에 쥐면 바로 떠오르던 스토리(자 이제 무기를 구하러 떠나볼까 같은)가 아무리 쥐고 있어도 떠오르지 않았고 로봇 자체도 현실성 없게 투박스러워 보이기 시작했으며 팔다리 관절 조작도 내 마음대로 잘 안 되는 것이 답답하기만 했다. 점점 흥미를 잃게 되었고 대신에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나 놀이에 빠지게 되었다.


어쩌면 나이로 생기는 변화라는 건, 기존 것을 빼앗기고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아닌 단지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는 순서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학년을 끝내고 2학년이 되어 새로운 학우들과 선생님을 만나는 것과 같다. 달라진 교과서를 받고 배워야 할 과목이 더 늘어난 것과 같이 내가 속한 시간의 지점이 거기 어디쯤인 것 같다. 머물러 있고 싶어도 시간의 흐름은 끊을 수 없이 흘러가도록 둬야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어쨌든 우리는 이 강에서 저 강까지 자연스럽게 떠밀려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 그때 좋았는 데가 아니라 오 이런 것도 있네 하며 뒤가 아닌 앞을 보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홍대 클럽 못 가면 뭐 어때. 어차피 서서 보는 공연도 이젠 힘들어서 못하겠는데 번듯한 콘서트장이나 뮤지컬 공연장에 가서 베이스 드럼에 가슴이 콩닥 거림을 느끼면 될 일이다. 운동을 하고 식생활을 개선하여 예전 몸매로 돌아가고 인기남이었던 얼굴을 다시 찾는 미션에 도전해도 좋다. 세상에는 재밌고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다만 그전에 인정해야 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1학년이 아니라는 사실을, 늘 가던 단골집을 다신 갈 수 없음을, 현재의 모든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권태는 변화를 갈증하는 정신적 신호라 일상이 재미없고 지루하다면 가슴 뛰고 신나는 일을 찾아야 한다. 예전에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현재의 만족과는 무관한 것이라 차치하고, 지금 당장 재미있고 즉시 실행 할 수 있는 걸 생각해 내야 한다. 전혀 해본 적 없는 것, 그동안 생각만 하고 용기가 없어 시도하지 않았던 그런거.


그 당시에는 과학과 기술력이 달려서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가능한 일.


시간과 자본이 부족해서 포기했지만 현재는 충분히 넉넉해서 할 수 있는 일.


나는 이제 그런걸 찾아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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