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세이읽는남자 Oct 22. 2023

짐 정리하고 다시 출발

40대 남성 30% 이상이 갱년기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성호르몬 감소로 인해 발생하는 데 원인을 알 수 없는 무기력감, 성욕 감퇴, 만성 피로, 집중력 저하, 우울증, 자신감 상실, 복부비만, 발한, 골다공증의 증상을 겪는다고 한다. 나도 그런 건가 싶기도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성격이 조금 다른 것 같고, 젊음에서 이젠 안 젊음으로 옮겨가는 와중에 느끼게 되는 상실감과 신체적인 걸 포함해서 주변의 환경까지 급격히 진행되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증상인 것 같아서, 갱년기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춘기, 춘기형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고 10대 사춘기 기간처럼 나에 대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고민과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변화를 인정하기 싫었고 계속 과거에 머물러 있고 싶었다. 그래서 우울했고 좌절했으며 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 상태를 지금껏 글로 쭉 써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변해버린 내 모습부터 주변의 환경까지 이미 모두 달라졌으나 나는 알아채지 못하고 여전히 예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차이가 만든 간극에 빠져서 이어지지 못하고 혼자 허우적거리고 있던 것이다.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 처방도 가능해졌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바로 인정하기. 현재에 내게 주어진 상황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나는 젊지 않고 어리지도 않다. 그 나이에 누릴 수 있었던 혜택을 반납하는 대신에 다른 것도 생겼다. 나는 바로 그 다른 것에 대해 앞으로 더 많이 알아보고 집중해야 한다. 갤럭시 폰에서 아이폰으로 갈아탔으면 삼성페이는 이제 잊어야 한다. 아이폰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장점을 찾고 잘 사용하고 만족감을 느끼면 되는 일이다.


목표가 한라산 등반이고 가장 아래에서부터 두 발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면 몇 번의 휴식이 있을 것이다. 가져온 짐을 정리하면서 필요한 건 채우고 가져온 쓰레기들은 모두 버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밟으며 겪게 되는 몇 번의 큰 변화 앞에서 나는 짐을 풀고 정리를 하고 상처가 난 곳은 연고를 바르며 그렇게 준비가 되었다면 다시 출정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결론이 생겼다면 혹은 아직 미완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이 쉼터는 떠나야 한다. 이곳이 내 목적지가 아님을 알기에 힘차게 문을 열고 당당하게 밖으로 나선다.


스스로 내린 해결책을 실행할 일만 남았다. 나쁜 습관은 버리고 좋은 것은 들이며, 너무 먼 곳을 보기보다는 내 발 앞에 놓인 문제에 집중하고,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실천한다. 막연한 불안과 걱정은 과감히 지워버리고 현재의 즐거움과 만족감을 충분히 느끼며 일상을 보낸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의 기로에서 우선 유연하게 대처하되 가끔 가감한 결정을 통해 이제 더 이상 후회하는 과거는 만들지 않기로 한다.


그게 다지 뭐. 이 정도만 생각하고 있어도 사춘기라는 시절은 원래 그냥 시간이 알아서 해결하는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에 충분하다. 가까운 시일 내에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인생에서 운이라는 작용은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모르는 것이기에 나는 그저 묵묵히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준비하면 되는 일이다.


춘기형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어쩌면 조금 암울해 보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태풍이 불고 난 후에 바다가 깨끗해지듯이 춘기형이 쓸고 간 자리에 새로운 새싹이 돋는다. 새로운 출발, 속편이긴 하지만 어쨌든 또 다른 스토리가 앞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재밌겠다, 기대된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편은 전편과는 내용도 질도 모든 게 더 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들뜬 기분마저 생긴다.


그거면 된다. 사춘기는 그 정도로 생각하고 넘기면 충분하다.


이러다 정말 갱년기가 오면 말이다.


그때는 ‘갱년기씨 처음 뵙겠습니다’ 하는 에세이를 적으면서 또다시 증상과 진단을 한다는 핑계로 나를 들여다보고 이유도 생각해 보고 나름대로 해결책도 강구하면서 그렇게 또 만나게 될 것 같다.


그날까지 모두, 아디오스!



이전 09화 현재를 살기로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