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세이읽는남자 Oct 22. 2023

현재를 살기로 한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는 두 가지 모드로 고민할 수 있는데 화이트 모드와 다크 모드이다. 화이트 모드는 긍정적이고 희망이 난무하는 버전이다. 과거가 엉망이더라도 지금부터 계획을 잘 세워서 황금빛 미래를 낙관하는, 할 수 있다 해보자를 외치는 버전이다. 반면 암울한 미래를 바라보는 다크 모드 버전은 과거가 원망스럽고 현재 우울하며 미래는 답이 없다. 그때 춘기형이 내 옆으로 쓱 온다.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네 안을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온 거 보면 알잖아 지금은 변화의 기로일 뿐이야


화이트 모드는 자주 생각할 필요가 있고 가능하면 비타민처럼 매일 먹는 편이 좋은데, 하루 사이에 새로운 백혈구와 적혈구가 갱신되는 것처럼 나의 뇌에 긍정적이고 희망이 있는 호르몬을 계속 분비시키는 것이다. 다크 모드가 항상 문제인데, 그냥 아는 척하지 말고 슝 지나치거나 비누를 살살 비벼서 지워 버리거나 해야 한다. 심한 사람은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기도 하는 것 같은데 굳이 그러지 말고 헬퍼 춘기형의 도움을 받아서 잘 한번 고민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에 쫓기는 듯한 압박을 느낀다면 그건 아마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이다. 마치 시험 종료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풀지 못한 문제는 많이 남아 있을 때나, 1점이 부족한 경기에서 추가시간마저 거의 임박했을 때와 같은 쫄리는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


그럴 때는 정답은 현재, 즉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문제 풀이에 집중하거나 내 발밑에 보이는 축구공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 그러면 한 문제라도 더 풀 수 있고 한 번에 기회로 골인을 성공시켜 역전승을 할 수도 있다. 어떡하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번 경기는 망했어, 졌어 해 본 들 결과만 더 악화시킬 뿐이지 아무 도움이 되질 않는다.


10대 때 춘기형을 만났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때 방황이나 우울은 조금만 하고 그시절만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 잠시 머리 아프게 불안한 시간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독감처럼 앓고 지나가는 정도로 마치고 얼른 현재로 돌아와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회사에 다닌다. 하루 시간을 거의 대부분 회사에서 보내고 나면 남은 에너지가 없다. (회)사후 세계를 준비해 보려 해도 40대가 넘은 시점이라 그런지 힘이 달린다. 술만 마시고 싶지 다른 건 하기가 싫다. 야심 차게 해보자, 외치며 시작하더라도 이게 정말 되는 건가 하면서 또다시 다크 모드로 빠지기 일쑤다. 마치 핀볼 게임기처럼 처음은 힘 있게 공을 튕겨보는데 여기저기 뚫려있는 구멍으로 쏙 들어가서 다시 처음을 되돌아오거나 뜻하지 않는 곳으로 방향이 가버리기도 하고 제대로 골인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점점 핀볼 게임기에 흥미를 잃게 되고 이건 안되는 거다 하면서 포기하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미래를 불안해하지 말고 현재를 보고 지금을 즐기라니, 맞는 말이긴 한데 와닿진 않는다.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건 늘 독자와 청자의 몫이지,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지 하면서 또다시 저녁에 술을 마시고 아침에 숙취로 헐떡거리며 좀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출근을 한다.


회사에서 워킹맘들에 대한 내 스펙은 바로 이런 맥락과 결이 같은데 육아와 가사까지 처리하면서 회사도 다니는 여성들은 정말 대단하고, 나는 못할 것 같고, 그게 엄마라서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저 존경 그 자체로 신기해하며 박수를 보낸다. 반면에 나는,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힘 있게 진행시킬 역량도 없고 목표를 세울 동기부여마저 약하다. 그러니 도통 일이 되겠냔 말이지.


이렇게 한번 해봐야겠다. 나라는 긴 물통에 물이 한가득 들어 있는데 바람이 불거나 물통이 움직이면 그 안에 있는 물이 출렁거리며 물결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영향을 준다. 그래서 일정 거리를 두고 칸막이를 여러 개 설치해 본다. 그러면 한 칸이 출렁거리더라도 바로 옆 칸의 물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내 안에 감정과 계획과 목표와 실행을 여러 칸으로 나눠서 상호 영향을 덜 받게 끔 하는 것이다. 이게 잘 안되더라도 저건 계속 진행되는 식.


예를들어 운동과 글쓰기를 나눠서 글쓰기가 잘 안되더라도 운동은 계속 진행되는 식이다. 그러면 한 가지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이 오염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차례차례 정리해가면 되지 않을까. 하나씩 차례차례 현재를 보고 지금에 집중하면서 칸칸이 만든 계획을 실천하면 되지 않을까. 않을까 말까를 떠나서 그 방법 밖에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문제가 접수되면 수술 장갑부터 끼고 메스와 의료용 집게부터 손에 쥔다. 해체하기 시작한다. 자르고 헤집고 들여다보면서 원인과 문제의 핵심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찾아낸 문제 덩어리들을 가위로 자르고 약 바르면서 치료를 한다. 완벽한 해결이란 없겠지, 코로나 감기도 완치 후 후유증까지 여러 날이 걸리던데. 단지 그렇게 하나씩 치료하고 처방하면서 완치도 하고 때론 모르게 저절로 잊기도 하면 사는거다.


멀리 보되 바로 눈앞을 더 자세히 오랜 시간 공들여서 들여다봐야 하고, 깊게 생각하되 너무 깊게 가면 현실이랑 멀어지니까 얼른 빠져나와서 차라리 얕게 자주 생각하는 쪽으로 해야겠다. 불혹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는 시절이라고 하던데 그건 공자에게나 해당되는 말 같고,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다는 현철식 마흔의 정의가 더 맞는 것 같다.


몰라, 뭐 어쨌든 지금 당장을 살펴보고, 한 시간 후를 고민하고, 바로 내일을 계획하자. 아파트 짓듯 한 층씩 쌓아 올리는 게 인생이라고 하니까 설계도 보면서 계속 고민 말고 철근 박고 거푸집 만들고 시멘트 바르는 일에 집중하는 게 지금은 더욱 중요하고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일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이전 08화 의욕부진 다 귀찮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