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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안류에 휩쓸리면

부제_The Ghost in My Mind #8

by 이안류


그날도 X는 퇴근길에 운전을 하며 지금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를 읊조리고, 나는 ‘어’, ‘그렇구나.’, ‘힘들었겠네’ 등의 추임새를 무미건조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피곤하나 봐?”

라고 X가 물어봤다.

나는 “오늘은 좀 지치네.”라고 대답했다.




이런 대화 패턴이 차 안에서 반복되고 있었고, 나는 육체적 피로를 빌려 상황을 회피하고 어둠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X와의 퇴근길이 즐거운 항해가 아니었다. 처음 함께 일을 시작했을 때는 들뜬 마음에 야식도 먹으며 못다 한 잡담을 신나게 나누고, 앞으로 어떻게 일을 전개하면 좋을지 의논도 하는 시끌벅적한 퇴근길이었는데, 어느덧 차 안은 X의 사업과 미래 비전, 그리고 나의 낮은 호응만이 맴돌 뿐이었다. 머릿속은 메아리가 울렸지만 자꾸만 시선은 차창 밖으로 달아났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 이후 여파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때로는 나도 억지로 텐션을 올리며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떠들다 하루를 마감하기도 했지만, 그런 날 집으로 올라오는 내 발걸음은 왜 이리 무거웠는지.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참 못난 아이처럼 느껴졌다. X는 나를 생각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고마운 친구인데, 난 힘들었다. 무의식 중에 X가 준 기회와 나의 존엄을 교환한 것일까. X와 일하면서 나는 점점 포말처럼 바다로 사그라져 갔고, 나의 야무졌던 계획은 침몰해 갔다. 이곳에서 나의 논문은 허황된 부표였고 X의 사업은 출항한 함선이었다.







“언니, 난 이제 더 이상 내 안을 들여다보는데 시간을 쓰지 않을 거야. 이 정도면 나 잘 살고 있잖아. 이제 열심히 앞만 보고 나아갈래.”



퇴근길 잠시 멈춘 차 안에서 X가 툭 던진 말에 나는 절망했다. 마지막 끈이 뚝 끊긴 느낌이었다. 나는 X가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끝없이 피워 올리는 인정의 연기(煙氣)를, 통제의 올가미를 알아차리기 바랐다. 친구로만 지낼 때는 잘 몰랐었다. 그저 잘했다고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고, 적극적이고 눈치 안 보고 도전하는 아이라고 생각해서, 때로는 그 모습이 솔직해 보여 귀엽게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사회에 뛰어들면서 X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지속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했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 또한 다른 이들처럼 인정 욕구도 경쟁심도 많은 사람이지만, 이 무기는 내 안으로 향하여 나를 여러 번 처참히 죽였었다. 하지만 X는 밖으로 욕구를 발산하였고 예민한 나는 그 신호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X가 지속적으로 나에게 던지는 간접적인 인정의 요구를, 자신의 계획 속으로 나를 자꾸만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X와 친구로 시작했기에 동료나 직원처럼 공사를 구분하며 적당히 거리 두기가 쉽지 않았다. 농담조로 이런 이야기를 다루거나 언쟁을 벌인 적도 있었지만, 이는 곁가지만 다룰 뿐 핵심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X가 자신은 더 이상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참 많은 생각들과 감정들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이제 X와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할 수 없겠구나.’




X와 좀 더 깊게 연결되고 싶었던 나의 외로움은 또다시 이안류의 검푸른 심연으로 더욱 빨려 들어갔다. 미래로 나아갈 것이라는 X의 선언이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더욱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잔잔하게 서로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안류(離岸流)는 해안가 바다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해안선과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잔잔해 보이지만 수면 아래 흐르는 이안류에 휩쓸리면 순식간에 먼바다로 끌고 가버리는 숨은 조류(潮流)다. 우리의 바다에도 깊게 소용돌이치던 이안류가 점점 나를 해안가로부터 떠밀고 있었고, 나는 바다에 떠다니는 이름 모를 부표처럼 멀어지는 해안을 망연히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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