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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김작가 Apr 16. 2022

이거 진짜 맞냐고
흔들어 보는 바람까지

남종면도 퇴촌권


모든 게 지어낸 이야기 같은 날

진짜라기엔 너무 높은 채도의 파란 하늘과 시든 잎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만개한 목련과 벚꽃, 

이거 진짜 맞냐고 흔들어 보는 바람까지,

이런 날은 웅성웅성 진짜임을 과시하는 현실체들이 분주하다.

남종면 분원리 팔당호에 있는 레스토랑 가람은 이맘때면 모임별로 점을 찍게 되는 곳이다.

귀여리부터 검천리, 수청리를 지나 양평까지 이어지는 벚꽃을 즐기러 오는 관광객들이 많아서 시간대를 잘못 맞추면 고생하지만 일찍 움직이면 스트레스 없이 방문할 수 있다.

그래도 새로 생긴 카페들이 많아지면서 복잡함을 살짝은 피할 수도 있는 곳이다.

바람이 없는 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에 만나는 풍경은 일단 숨을 멈추게 한다.

호흡을 천천히 길게 쉬면서 맞추어가면 어느새 하나가 된다.

그림 속의 일부가 되어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곳.



이제 , 여기는 레스토랑이니 식사를 해야 한다. 

무엇을 주문하냐도 중요하겠지. 

괜한 돈을 지불했다고 생각하면 다시 오게 되지 않는다.

가끔 스테이크도 한 개 정도 주문하지만 주로 먹게 되는 것은 엔초비 파스타와 먹물 리조뜨, 루꼴라 피자다.

엔초비를 잘 모를 땐 조심스러웠었다. 비린내와 생선가시에 경기를 하는 사람이라...

멸치를 생선으로 칭하는 것, 그것의 작은 뼈를 가시로 칭하는 것도 우습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 

시도해 보게 된 계기가 아마도 이때였던 것 같다. 

유럽 여행에 동행했던 윤선생님께서 피자에 엔초비를 추가 주문하는 걸 보고 용기 내서 먹어 봤었다. 

좀 놀라긴 했다. 한국에서 엔초비 들어간 요리를 주문하면 잘게 다져서 들어가 있는데 추가 주문을 해서 그런지 큰 멸치 몇 마리가 피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김찌 찌게에 멸치 크게 들어간 것도 정말 싫어하는데....

국물 먹다가 작은 조각이 입에 걸리면 불쾌해진다.

그래서 멸치육수는 따로 뽑아야 한다.

이렇게 까칠한 내가 엔초비가 통째로 올려진 피자를 둘둘 말아서 눈 꼭 감고 먹어 본 것이다. 

여행지의 힘이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게 시작 1.

또 한 번은 그림책 모임 멤버 푸딩 아니 매드 푸딩이 엔초비 파스타를 좋아한다며 주문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믿음이 가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다행히 적절히 다져진 엔초비가 어우러진 파스타여서 거부감보다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것은 멸치액젓의 풍미와 젓갈과는 다르지만 그런 역할을 하며 음식의 맛을 돋우게 했다. 

이때부터 엔초비를 병으로 사서 요리에 넣어 먹고 있다. 

누군가의 선택을 따라 한다는 것은 신뢰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상하게 믿음이 안 가는 사람도 있지 않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때도 있다. 

어떤 사람을 따라 해보고 있다면 그이를 좋아하는 것일 게다. 

처음엔 별로라고 생각했다가도 따라 하고 있다면 말이다.


사진의 찻잔은 시인이신 안작가님께서 우리 모임원들을 위해 관음리에 있는 카페 반에서 구입해 오신 것이다.

커피는 가람에서 주문했고 선물 받은 잔에 따라 마셨다. 

커피잔에 가람 소유의 하늘이 담겨 있다.

안 작가님은 우리를 위해 특별히 고르셔서 찻잔을 자랑스럽게 구입해 오셨는데 지역이 좁다 보니 모두가 알고 있는 까페와 도자기, 심지어는 찻잔 그림을 그린 사람도 있어서 한바탕 웃으며 찻잔 건배를 했다.

실내보다는 외부에 앉아야 이곳의 특혜를 다 누릴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엔 경쟁이 심해서 눈치 작전도 필요하다. 


우린 가람을 나와서 시간이 넉넉한 날엔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이동한다.

내가 안 올 때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갈 때마다 한산하다. 사장님께는 죄송하지만 조용해서 좋았다. 

분위기가 이렇게 좋은데 왜...

창문이 선택한 풍경 한 조각.
마음에 두고 있던 구도로 풍경 한 조각을 맞추어 창문에 밀어 넣어보지만
쓸데없는 고집인 것 같아 창이 내어준 오늘의 메뉴를 받아들인다.


혼자 한번 와야겠다고 올 때마다 생각한다. 

혼자 올 때 피칸파이와 투샷 아메리카노를 마셔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도 순간적으로 세웠던 것 같다.

만나는 사람들이 좋으면 좋은 것만 만나게 된다. 음식도 공간도 날씨도 협조적이다.

좋은 공간을 함께 공유하며 우리는 한패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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