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한김작가 Apr 11. 2022

길에도 정이 들어서 그럴거다

도수리 마을회관 버스정류장앞



눈 내리던 날의 도수리는 가지말라고 보채는 아이처럼 사랑스러웠다.
내가 언제, 떠난다고 말이라도 했던가.


관계를 줄이고 은둔이 편안하게 자리 잡을 즈음, 혼자 걷는 길에 마주친 도수리의 풍경.

애매한 시골의 특징 중 하나인 인도가 드문드문 있는 길을 걷다보면 앞뒤로 지나는 차들을 주시해야한다.

처음 이곳에 이사 와서 아이를 등교시킬때는 위험한 길이 마음에 안들어서 화가 치밀었었다. 최소한 학교 주변에는 인도를 제대로 만들어야하지 않는거냐고.

아들이 학교 기숙사생활을 한 뒤로 안전에 대한 걱정이 줄어서 그런지 들쑥날쑥한 길에도 나름 변화가 있어 좋다는듯이 여유롭게 산책한다.

길에도 정이 들어서 그럴거다. 

자주 들여다 보지는 못했어도 길은 나를 지켜 보고 있었을테니까.

이제야 마음을 열어 준것 같아 미안하다.

그날은 말이 많은 도수2리 풍경이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평소에는 차로 움직이는 일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이런 정도의 시골에서는 차 없으면 살기 힘들다고들 하지만 사실 좀 걸어줘야한다. 몸의 건강도 그렇고 정신건강은 더욱 그렇다. 

게다가 걸으며 만나는 또는 샘 솟는 아이디어는 어떤가. 나설때마다 주워 담느라 정신이 없다. 

마음 먹고 산책할때는 생태습지공원이나 우산리 베짱이도서관쪽길이나 귀여리 물안개공원까지 차를 타고 가서 걷는게 보통이지만 이건 일상 여행자로서 마땅치 못한 행동이다.

여행이란게 수려한 풍경만을 감상하는게 아니니 말이다

땅을 느끼고 냄새를, 소리를 그리고 사람도 관계해야한다. 

그러다 아프게 되는 일이 생긴다해도...


7년째 퇴촌에 머무니 변화 되고 있는게 보인다. 유입인구가 많아지고 있긴 한가보다. 상상도 못했던 롯데리아, 다이소가 들어와 있다. 최근에는 프렌차이즈 꽈배기전문점도 입점해서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인도도 수시로 정비 되어 안전한 산책로가 확보되고 있다. 불편하던 이 길들도 곧 추억이 되겠구나.

퇴촌의 번화가인 광동리도 길이 넓혀지면서 오래된 가게들이 사라지고 옮겨지고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나는 나이들고 퇴촌은 회춘을 했다.

눈에 젖지 않으면서도 편안한 트레킹화를 신고 나서본다.

 나서면 도수리 마을회관앞 버스정류장이.  

마을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정류장 뒤로 한걸음 물러나 돌아서 있고, 오래 함께였을  키 큰 나무가 있다.

버스정류장에 어울리는 조합이다.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맘 상한듯 길에서 비켜 선 비석에는 운명처럼 만들어졌던 마을의 시작이 새겨져있다.

키 큰 나무는 그날부터 기념수라도 되었던 걸까?

말은 없어도 익숙해 보이는게 떼어 놓았다가는 일 날것 같다.

한때는 둘이 마을을 대표하는 완장을 차고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버스정류장 대기소가 바리게이트 역할을 해 준답시고 들어서면서 말이 없어졌을 상황이 짐작 된다.

마을비석, 키큰 나무, 정류장이 어우러지게 자리 배치 되었다면 불만이 좀 덜했을까.

긴 시간을 보낸 풍경은 어째도 어색하진 않고 이것조차 익숙함에 추억이 되겠지만…

조심스럽게 말해 보고자하는건 시골풍경을 망쳐 놓은 사건의 전말이 궁금하다는거다.

사실 정이 든거다. 그냥...이 대목에서는.



인도가 없는 그러나 그리 위험하지는 않은(더 조심하게 되니까) 길을 따라 퇴촌의 번화가쪽으로 걸어 가다보면 그냥은 지나치기 어려운 참새방앗간이 나온다. 가업을 이어 집안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차를 타고 가면 필요한게 있을때만 들어가게 되지만 걸어서 지나갈땐 참새가 되고 만다. 

참기름 좀 사두어야하지 않나?, 저녁에 떡국 먹을까?, 동생네 들기름 사다줄까...

아냐아냐...손시려워....애써 부정하며 지나가본다.

가격 저렴하고 맛도 좋아서 자주 이용하는 곳인데 가까워서 편하다.

가업을 이어서 운영하시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부모가 자식에게 일을 물려줄 때는 그만큼 당당하거나 행복한일이지 않겠나. 엄마는 이렇게 행복했단다하며 내것을 내어 줄 수 있으면 바랠게 없겠다.


눈이 질척거리기 전에 산책을 해서 걷기가 편했다. 

눈이 내린지 오래 되지 않아서 풍경도 좋았고 미끄럽지도 않았고...





이전 01화 돌아갈 곳이 있는 게 여행인 거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