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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Jun 30. 2024

<언제나 책봄> '부의 인문학'

똥멍청이가 된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선배는 리즈 시절이 언제였어요?"라고 묻는 후배의 말에

"집 앞 무심천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 보며 팔자 좋게 생갈비를 뜯었던 그 시절"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만 하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질 정도니 부()를 기준으로 치면 그때가 내 인생 전성기임이 분명하다.

아버지는 은행에 다니셨고 엄마는 무심천 변에서 소갈비 집을 하셨다. IMF가 터지기 전만 해도 주말마다 칠순, 돌잔치 등 손님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빛 좋은 개살구'였을지 몰라도 그 시절 난 잘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유복한 환경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지냈다. 광우병과 함께 집안에 이런저런 일이 터지기 전까진 말이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니 집 안 곳곳에 빨간딱지가 붙었다. 평소에는 매사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성격인데 막상 큰일이 터지니 이상하리만큼 덤덤했다. 드라마 속 흔한 소재처럼 우린 60평대 큰 집에서 주인 세대가 있는 조그만 집으로 옮겼다. 엄마 생신 선물 살 돈이 없어서 번듯한 선물 대신 폭죽을 흔들며 일을 마치고 온 엄마를 마중 나갔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 날 엄마의 블로그에서 그때의 추억을 발견했다.


I.M.F와 광우병 파동으로 9년간  운영해 오던 가게 문을 닫고 김밥 집에서 육 개월간 일을 한 적이 있다.  아침 열 시에 출근해 저녁 열 시에 돌아오는 길은 늘 피곤에 절어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들었다. 퇴근을 하려고 가게 문을 나서려는데 딸이 웃으며 마중을 와 있었다.

여고 담벼락을 끼고 경사진 골목길을 딸이 앞서 겅중겅중 뛰어가며 하늘을 향해  손을 내밀자  슈우웅 ~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포물선을 그리며 커다란 꽃이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삼월 초 엿새, 달도 없는 어두운 밤이 딸의 마음처럼  빛나다 사라졌다.  폭죽이 '반짝' 하고 빛날 때마다 앞으로 남은 내 삶도 저렇게 빛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엄마, 생일 축하해요. 돈이 없어서 선물을 못 샀어. 미안해."  딸과 내 눈에서 누가 먼저라 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이미 네가 준 마음으로 세상을  모두 받은 것 같아 ᆢ!'

우리는 어느새 손을 잡고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 유리문 앞에 딸이 걸어놓은 happy birthday라는 축하 가랜드가 생경해서, 기쁘고 그래서 더 슬픈 선물이었다. -박정자, 우리 엄마의 수필 중에서-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기쁨을 발견하는 초긍정 성격 덕분에 가난했던 그 시절도 내겐 인생의 값진 기억으로 남았다. 가진 거라곤 17년 기자 생활을 끝으로 내게 주어진 퇴직금.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엄밀히 부모님 집), 부부가 타고 다니는 차가 내가 가진 재산의 전부지만 단 한 번도 불행하거나 부족하다고 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부의 인문학'이 책을 읽는 내내 똥멍청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주식도 코인도 부동산 투자도 단 1도 하지 않는 나인데... 오로지 월급 중 일부분을 적금 들고, 목돈 쓸 일이 있으면 적금을 깨서 쓰고, 또다시 소액의 적금을 들고 살아가는 이런 나인데...

책 1장 제목인 <노예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부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저자는 '왜 진보정권이 집권하면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를까?'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을 근거로 들었다.

노동자와 서민의 권익을 강조하는 진보정권이 집권했을 올 때 오히려 부동산과 주가가 많이 오른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부동산과 주식이 더 많이 올랐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경제환경이었다고 보지만 진보정권의 경제정책이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진보정권은 서민과 약자를 돕기 위해서 재정지출을 늘리고 복지 정책을 확대하는 걸 좋아한다...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에 따르면, 재정지출과 복지 확대 정책을 처음엔 경기 부양이 되지만 이후엔 인플레이션으로 찾아온다고 했다... 중략... 정부 지출로 무상 복지를 약속한 좌파 정권이 원유 매장량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를 낙원이 아닌 지옥으로 만든 것이다.

-브라운스톤의 '부의 인문학' 중에서-


그래, 1장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전략적 사고 없이 무턱대고 열심히 하면 빨리 망한다' 부분을 읽을 '이거 뭐지? 내가 잘못 살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다가 '재능과 노력보다 줄 서기가 더 중요하다' 부분에선 슬슬 반감이 들기 시작했다.

시장은 도덕적 기준으로 보상하지 않는다
서울의 집을 사야 하는 분명한 이유
비교우위론은 지방이 아닌 서울에 집을 사라고 말한다


지방에 사는 나로선 열받는 대목이 나온다.

분업의 힘에 의해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고 서울만 더 발전하게 되다 보니 지방 사람들은 박탈감 느끼게 되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이걸 모른 척 내버려 둘 수 없는 이유가 서울 사람이나 지방 사람이나 선거 때는 1인 1표라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수도권 억제법을 만들어 지방 활성화를 들고 나온다. 한 표라도 더 얻자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나라가 부자 되는 속도는 떨어뜨린다.


중간에 책을 덮을까 하다가 뼛속부터 문과생인 내게 잘 맞지 않는 것일 뿐, 끝까지 읽다 보면 뭔가 깨닫는 게 있을 거야란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저자가 말하는 '자본주의 게임에서 반드시 이기는 부의 법칙'이 인생을 살아가는 기본 가치와 견주어 볼 때 얼마나 중요한 걸까?

물론 나 역시 돈이 많아서 부자가 되면 좋겠다.

그런데 하루종일 주식 차트를 보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래? 좀 부족한 듯해도 맘 편하게 살래? 묻는다면 난 후자로 살란다.

똥멍청이처럼....

오랜만에 활자가 책 밖으로 튕겨 나와 눈싸움했던 책. '부의 인문학'이다.


삶의 척도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고백하건대 나의 경우에는

돈이 없어 바닥까지 쳤을 때 무엇이 더 중요하고 소중한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

가족.

그리고 지금 내 짝꿍이 된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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