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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Jul 14. 2024

<언제나 책봄> '리:본' RE:BON

내게 '리:본'의 순간은?


누군가 네 인생의 해독제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의 한비아 작가처럼 국제구호 현장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위대한 여행은 아닐지라도, 세계 각국을 두루 다녀보진 못 했어도 내게 '여행'은 인생을 가르쳐 준 나침반 같았다. 에너지가 넘치는 백말 띠의 아버지 덕에 어릴 적부터 전국 방방 곳곳을 주말마다 다녔다. 성인이 된 후에도, 가정을 꾸리고 나서도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은 지친 일상에 활력소가 되었고, 여행지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풍경은 힘든 어제를 잊고, 다시 내일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분명 장소만 바뀌었을 뿐인데 집을 떠나 어디론가 나서면  화강암 같던 고민 덩어리도 작은 모래 알갱이가 돼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분명 똑같은 나인데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책을 읽는 마음가짐에 따라,

책을 읽는 장소에 따라 그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이번주 소개할 홍사라 작가의 '리:본'을 읽으면서  경험했다. 퇴근 후 밀려오는 졸음을 참아가며 침대에 누워 읽기도 했고, 술을 한 잔 마시고도 한 주에 책 한 권 읽고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읽어 내려갔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글이 마음에 확 와닿지 않아 글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오늘 마감 하루 전, 주말 당직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 친정 엄마가 데려다 주기로 했던 '청주시아동참여위원회'에 아이들을 내려주고 시청 근처 커피숍을 찾았다.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커피숍에서 글쓰기를 드디어 오늘 체험하는 중이다. 그간 불량한 자세로 틈틈이 읽었던 홍사라 작가의 '리:본'을 다시 읽었다. 


창 밖이 보이는 텅 빈 커피숍에 앉아 혼자 책을 읽는다. 얼마 전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작가의 마음, 감히 헤아리지 못했던 그녀의 삶이 조금씩 아프게 다가온다.


똑같은 나인데도 집에 있을 때 나와

여행지에서의 내가 다른 것처럼...

불과 며칠 전 읽었던 내용인데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내 마음가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거친 시멘트 바닥에 홀로 도심 커피숍 베란다에 덩그러니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하늘 위로 가늘게 뻗은 가지 끝부분 잎이 떨어져 나간 자리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막연하게만 상상했던 홍사라 작가의 불운했던 어린 시절과 화분에 갇힌 채 홀로 서 있는 나무가 오버랩된다.  


작가는 평생 알코올 중독에서 허우적거리며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밑에서 20년을 보냈다고 한다. 우울과 슬픔을 안고 살았던 어린 시절, 49살에 간경화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과부로 삼 남매 키우기에 급급했던 엄마, 결혼 후 버겁게만 느껴졌던 육아, 친한 친구의 죽음, 그리고 그녀에게 찾아온 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젊은 과부가 된 엄마의 현실을 마주했다. 아버지 없이 살아가는 자녀들의 입장과 마음을 깊이 공감하고 헤아일 수 있게 되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덕분에 나는 다음 세대를 더 깊이 애정하고 헤아리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지혜로운 스승 하워드가 조언해 준 것처럼 아버지의 죽음은 걸려 넘어진 자리가 되었으나, 아버지의 부재는 내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인생을 걸어가다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절대 실패나 저주나 불행이 아니다.
넘어진 바로 그 자리가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
리본(REBORN)이 된다.


작가는 넘어진 그 자리가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 삶을 장식하는 리본(REBORN) 이 되었다고 한다.


자신을 걸려 넘어지게 한 인생 최대의 장애물이었던 암이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리본(REBORN)이 되었다고 한다.


암 덕분에 죽음의 문턱에 서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고, 죽음 앞에 서는 경험을 통해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점검했다고 이야기한다.


집이 부도가 났던 일, 사춘기 때 선택적 함묵증을 앓았던 일 등 내게도 삶의 과정 중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작가가 말하는 '리본'을  꼽기엔 뭔가 부족했다.


그렇다면 내게 진정한 '리본'은 언제였을까?


투명한 잔 속에 반쯤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을 빙빙 돌리며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려본다.

그러다 내 생각의 끝에 다다른 나의 '리본'은 9개월 차에 접어든 나의 새로운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책을 접하게 계기도 내 일과 관련이 있다. 얼마 전 충북교육청 <2024 IB·수업 ·평가 혁신 Re-Born 本 콘퍼런스>에 강연자로 나선 윤건영 교육감님께서 교육청의 핵심 가치를 설명하며 이 책의 제목을 모티브로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순간, 다시 태어나는 '리:본'처럼 충북의 중등 교육도 수업 평가 혁신을 통해 새롭게 거듭납니다"


과거 교육에 대한 성찰을 통해 몸 근육과 마음 근육을 다지고, 기초·기본 학력을 갖춘 미래 인재를 양성하자는 것이 Re-Born 本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독서 후기 글을 연재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충북교육청 독서캠페인 <언제나 책봄>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작은 다짐으로 시작한 글들이 벌써 26회째를 맞는다.

막막했던 시기 교육청에서 새롭게 일하게 된 것도, 다시 힘을 내 일어서게 된 것도 가만 돌이켜보면 나 혼자가 아닌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작가는 고백한다. 만만하게 보았던 지리산등반을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함께 산을 걸었던 사람들이 동력이 되었고... 작가가 되고 싶다는 오랜 꿈이 이뤄어 진 것도 작가의 꿈을 꾸며 함께 걷는 수많은 선후배 작가들이 함께 집필 여정에 동행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글쓰기에 무지했고, 글 쓰는 능력이 부족했다.
방향을 잃었고, 자주 주저앉았다.
셰르파들과 함께 걸었기에 끝까지 갈 수 있었다.
글쓰기 코치들과 함께 걸어 완주할 수 있었다.


과거 취재 기자 시절 나의 날 선 글로

그 언젠가 마음 상했던 분들도 분명 있을 텐데..

교육청에서 보면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고마운 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여행 얘기로 시작해 급고백으로 마무리를 진 것 같은 이 수줍은 느낌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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