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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Oct 06. 2024

사랑은 집착이 아니야

최진영의 <구의 증명>을 읽고

비문학을 읽을 땐 책 표지부터 작가의 말, 평론까지 꼼꼼히 살펴본 뒤 책 읽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소설의 경우는 다르다. 책에 대한 정보, 리뷰, 서평 등은 일부러 멀리하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미지의 여행을 떠나는 톰 소여가 된 기분으로 무지의 상태에서 나의 여행은 시작된다. 그저 한 문단을 읽었을 뿐인데도 작가와 한 마음이 되어 그다음 내용이 가늠이 되는,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신나게 읽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첫 문장부터 아니 심지어 제목부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책이 있다.

최진영의 <구의 증명>은 후자였다.

까만 안갯속을 헤쳐 지나가야 하는 어둡고 불안한 마음으로 읽다가도 실마리가 잡혀 책의 전개가 와닿는 순간엔 '이게 책의 맛이지'하며 무릎을 치지만 이번 책은 다 읽고 나서도 뭔가 개운치 않은 씁쓸한 뒷맛이 남았다.


<구의 증명> 지동설이나 인간 본질에 대한 철학적 탐구의 내용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작품 속의 '구'는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구'와 '담'의 사랑, 작가는 사랑이라고 말하는 듯 하지만 이건 사랑이 아니다. 관점에 따라 사랑이라면 사랑이라고  수도 있겠지만 길바닥에서 죽은 '구'를 집으로 옮겨 자신의 입으로 넣는 기괴하고 엽기적인 행각은 그 과정이 어찌 되었든 사랑이 아니라고 본다.

이건 삶의 결핍에서 오는 누군가를 향한 집착이다.

 사랑은 집착이 아니다. 떠나보내야 할 때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하고, 이루어지지 않아 슬프고 외로울지라도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겨지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말로는 쉽다. 사랑! 오죽하면 불치병이라고 했을까?


시작부터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었다.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 죽은 구는 꼭 술에 취해 곤히 잠든 사람 같았다. 나는 길바닥에 앉아 죽은 구를 안고서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바람에서 새 옷 냄새가 났다. 비가 올 것 같아. 비가 오면 어쩌지 비가 오면 좋겠다. 아니야 비가 오면 안 되지.
깊은 밤 잠 못 드는 몸처럼 이리저리 뒤척이던 걱정과 바람. 쇄골까지 내려온 구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니 푸석한 무리칼이 한 움큼 빠졌다. 손에 쥔 그것을 가만히 보았다. 버릴 수 없어서, 돌돌 말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밤은 천천히 가고 비는 오지 않았다. 나는 울지 않았고 구는 숨 쉬지 않았다. 죽은 구를 안고 있었지만 그와 죽음이란 개념은 전혀 연결되지 않았고 같은 극을 띤 자석처럼 강렬하게 어긋났다.

최진영 <구의 증명>  p15~17

 

책을 다 읽고 취재 기자 시절 그 사건이 있을 무렵 숱하게도 썼었던 고유정이 떠올랐다.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고유정 살인 사건. 내가 살고 있는 있는 청주에 고유정이 살았었고, 청주에서 붙잡혔기에 당시 지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고유정의 행각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고유정의 얼굴이 방송에 공개되기 직전 편집실에서 본 살인마의 초점 없는 흐릿한 눈빛이 아직도 생생해 간담이 서늘한데 책 속 주인공인 담의 독백에서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죽어가며 간신히 움직인 그 의지를, 뼈와 근육을 구의 마음을, 어떤 상상도 견딜 수 없어 차라리 나의 뇌를 꺼내 내팽개치고 싶었다.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 무엇이 구를 죽였는 가. 나는 사람이길 원하는가.    

최진영 <구의 증명>  p472


소설이 다 끝나고 가난과 시련에서 구와 담을 품어주지 못한 세상이 미웠다. 한 사람이라도 그들의 손을 잡아줬다며  이 소설의 끝은 달라졌을까? 생각하다가도 절벽 끝 막다른 곳에서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기보단 사랑이란 이름으로 서로에게 집착하는 구와 담이 안쓰러웠다.

더 마음이 좋지 않았던 건 '소설에 관해서라면 아무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고 텅 비어버렸다'는 작가의 말이다.  작가는 글을 집필하는 지난 1월 한 달 내내 바깥으로 거의 나가지 않고 방구석 일인용 의자에 앉아 구와 담의 이야기만 썼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에게 새해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고,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고, 눈 떠보니 모든 게 꿈이잖아... 그런 느낌이었다고 한다. 작가가 쓴 글인데도 본인이 쓴 글 같지 않고 그런 묘한 기분에 휩싸여 재교를 봤다고 한다. 글을 읽고 작가의 상태를 걱정하긴 또 처음이다. 칩거 속에 쓴 구와 담의 이야기가 작가의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작품을 다 읽고 나만 이런 느낌이었을까 궁금해 도서 리뷰를 살펴봤다. 호불호가 확연히 갈렸다. 누군가는 구와 담의 사랑을 숭고하고 가난한 사랑이라고 했으며, 누군가는 읽고 나면 온 세상의 채도가 없어진다고 적었다. 작가의 식인적 표현이 참 슬프고 힘들었다는 글도 있었다.

난 구와 담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고 결핍에서 온 집착이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글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글을 이끌어가는 작가의 문장력과 흡입력이 날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안녕'하고 말했는데 '안녕'으로만 끝날까봐. 아니, 그 인사조차 돌려받지 못할까봐. 누구에게나 보여주는 겉치레 인사 말고, 너의 고유한 표정과 감정을 갖고 싶었다. 네 머리채를 잡아당기면 분명 네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화를 내면서 하지 말라고, 아프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러면 나는 깐죽거리고 싶었다. 왜? 왜 하면 안 되는데? 시비 걸 듯 놀리면서 우리만의 특별한 시간을 고무줄처럼 쭉쭉 늘이고 싶었다.

최진영 <구의 증명> p483~484


죽이고 싶도록 사랑한 사람이 있는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 사람이 있는가?


소설 속 상상이 현실 속 뉴스로 다가오는 세상에서 살면서

사람들이 부디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방에게 잔혹과 고통을 가하지 말기를....

정말 죽이고 싶도록 밉다 하더라도 그 미움의 마음이 선으로 희석되기를....


나는 있는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광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사랑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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