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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Oct 13. 2024

눈으로 읽는 여행

노중훈의 <풍경의 안쪽>을 읽고

새벽 알람 소리에 눈을 비비고 화장실에 앉아 <매일성경> 하루치를 읽는다. 돌아가신 이모가 7~8년 전 정기구독을 신청해 줘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모가 돌아가신 후 그 언젠가부터 책이 오지 않는 것이 허전해 내가 다시 구독해 읽는 책이다. <좋은 생각>처럼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책인데 며칠 전 11~12월용 1권이 왔다. 10월 중순도 되기 전에 올해가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 괜스레 허전하다.

성경을 읽고 씻은 뒤 아이들 아침 준비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를 손에 꼽자면 스무 가지도 안되는데 매일 밤 잠들기 전 "엄마 내일 아침은 뭐야?" 묻는 아이들이 고맙기도 하고, 거기서 거기인 요리랄 것도 없는 간편식을 매일 조금씩 변형해 돌려가며 하는 내가 신기하기도 하다.

벌써 1년, 새 옷을 입은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일의 결과물이 기사로 보이는 기자와 달리 정무직은 결과치가 아닌 일의 조율과 지원, 연계 등의 역할을 주로 하는데 전직과 일의 바운더리는 비슷한 것 같다. 오히려 한 주제를 가지고 파고드는 기자에 비해 관계의 확장성, 일의 다양성 면에선 체급이 늘어난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배울게 많다. 언론사 모니터링을 한 뒤 회의 준비를 하고 이주의 일정을 체크한다. 예전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루 마감하면 기분이 개운했는데, 새로운 나의 일은 드라마처럼 끝날만 하면 이어지고 크고 작은 해프닝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래서 잠시 잊고 살았다.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두 글자 '여행'


짬이 날 때마다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읽을까 온라인 독서플랫폼에서 기웃거리다 노중훈의 <풍경의 안쪽>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제목이 참 좋다. 풍경 너머 저 안쪽에는 뭐가 있을까?

단순히 작가가 보고 느낀 여행의 기록, 그 이상의 깊이 있고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안고 책을 읽었다. 1부 압도의 풍경으로 시작해 느림의 풍경, 예술의 풍경, 4부 사람의 풍경으로 끝나는 <풍경의 안쪽>은 작가가 1994년 시작해 지금까지 중단 없이 먹고 있는 '여행 밥'의 중간 결과물이라고 한다. 작가가 유난히 마음이 끌렸던 장소와 홀연히 마음의 빗장이 풀렸던 시간, 한순간 마음이 일렁이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담은 책 <풍경의 안쪽>.


직접 가보지 않아도 작가의 여정을 따라 눈으로 여행을 함께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첫 책이었다. 그간 읽었던 여행 책은 정보성이 강하거나 작가의 감상이 진하게 묻어나 여행 책인지 에세이인지 구분이 어려웠던 책이 많았는데 노중훈 작가의 책은 달랐다.

고등학교 때 '냉정과 열정사이'의 작가였던 에쿠니 가오리의 팬이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글의 묘사가 눈에 보이듯 섬세했기 때문인데, 노작가의 풍경 묘사가 그랬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풍경은 티브이나 사진 속에서 자주 봐온 까닭에 직접 가보지 않았는데도 뻔할 것 같아 여행지 목록에서 빼버린 곳이었는데, 노작가의 글을 보고 산토리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흰색을 두른 집들은 또 지중해의 바스락거리는 빛의 알갱이를 고스란히 튕겨내며 산토리니의 풍경에 더한 신비한 켜를 보탠다. 새하얀 집들은 멀리서 보면 색의 통일감 때문에 서로를 빼다 박은 듯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동일한 모양새는 찾아내기 어렵다. 집들은 자유분방한 곡선 안에서 얌전하고, 간결한 담장 위에서 풀어져 있다. 집과 집, 건물과 건물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는 것은 골목길이다. 어떤 길은 반듯하고 어떤 길은 구붓하다. 산토리니 전체에 퍼져 있는 좁은 길들에 두 다리를 맡기면 고급 호텔, 그림 같은 카페, 아담한 상점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게 된다. 길들은 또 교회를 자주 불러들이는데, '정원'이 2~3명에 불과한 장난감 같은 건물도 있다.  

노중훈 <풍경의 안쪽> p308 상상출판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작가가 '조금이라도 더 붙들고 싶었던 오후-알바니아 티라나&두러스&베라트'로 당장 떠나고 싶었다. 맛과 멋이 완벽하고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에 권태의 쾌감 까지라니.... 권태의 쾌감이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느껴보고 싶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강 건너편을 바라보니 '1,000개의 창을 가진 도시'라는 별칭이 실감 났다....... 전망 좋은 테라스, 달달한 커피, 티끌 하나 없는 하늘, 폭포수처럼 내리붓는 봄볕, 인위와 자연이 결합한 탁월한 풍광, 권태의 쾌감.... 이제 그만 자리를 떠야 하는데 모든 것이 완벽한 오후의 정경으로부터 도무지 발을 뺄 수가 없었다. 결국 다음 일정을 을취소하고 좀 더 눌러앉기로 했다.

p143


여행 좋아하는 부모님을 만나 국내 여행은 웬만한 곳은 다 가봤지만 솔직히 말해 해외여행은 12개국을 다녔어도 신혼여행으로 갔었던 발리를 제외하면 죄다 동남아 휴양지였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라고 했던가? 자고로 여행은 물 위에 유유자적 둥둥 떠다니다 허기지면 산해진미로 채워주고 심심하면 썬베드에 누워 책 읽고 이런 게 진정 휴가지라며 해외여행은 쉼의 중점을 두었다. 이젠 좀 멀리 떠나봐야겠다. 4월이 가장 찬란하다는 이스트라반도의 휴양도시인 피란에서 세계 각지에서 모인 행복하게 게으른 여행자들을 만나러!!



작가와 함께 눈으로 상상하며 걷고, 마시고, 느끼다가 서너 장에 한 번씩 눈 부신 사진 한 장 가끔 나오면 부풀어 오르는 내 마음. 

기사체에 익숙해진 내게 작가님의 섬세한 묘사와 언어 구사력! 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여행 떠나기 전에 읽고 설레보련다.


그런데 언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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