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팩, 나의 버킷리스트

그걸 하는데 30년이 걸렸다

by 투빈대디



검은색 각진 백팩,

하얀색 무선 이어폰,

몸에 딱 맞는 바지,

벨트 밖으로 내놓은 셔츠,

스티브 잡스 운동화.


내가 요즘 출근길에 입는 차림새이다.

오래전부터 내가 꿈꾸었던 버킷리스트, 비즈니스룩 (bucket business look)이다.


"별것도 아닌 이 차림새를 갖추는데 30년이 걸렸다."



오랫동안 대세였던 전통적인 직장인의 비즈니스룩이 있었다.

정장 스타일의 재킷과 바지에 검정 구두, 재킷 속에는 하얀 와이셔츠, 와이셔츠는 바지 벨트 속에 집어넣고, 좌우 균형 맞게 매어진 넥타이 등이 그것이다.


나는 그런 비즈니스 룩으로 15년을 출근하였다.


그랬던 그 시절에는 검정 구두 대신 갈색 구두를 신는 것, 하얀색이 아닌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는 것, 늘 매던 넥타이를 푸는 것만으로도 파격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소심한 일탈이었다.


첫 번째 직장생활 15년을 떠나보내고, 새롭게 시작한 두 번째 직장생활 15년은 내 차림새에 대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시절이었다. 그때 그곳에서는 내가 보스였으니까.


그런데도, 노 타이에 익숙해지는 데만 몇 년이, 재킷에 청바지를 받쳐 입는 데에 십 년 가까이 걸렸다. 그리고 15년이 다 지나도록 끝내 운동화에 백팩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렇게 30년이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 전 18년 만에 다시 시작한 월급쟁이 직장인 생활, 그 출근길에 내가 꿈꾸어왔던 버킷 비즈니스룩을 완성하였다.


나름의 오랜 노력과 변신이 그 완성의 기반이 되었다. 넥타이와는 일찌감치 이별하였고, 정장 양복은 모두 재활용센터로 보냈으며, 30년간 출근길 동반자였던 차는 지하주차장 구석에 장기 주차해놓았다.


이런 일을 하고 나서야, 백팩을 멜 수가 있었다.



그렇게 비즈니스룩의 중심이 된 '백팩'은 내게 꽤 많은 선물을 담아다 주었다.


'젊음'을 준다. 백팩을 메고 걸으면 어느새 청년이 된다. 이 엉뚱한 착각을 하는 동안 백팩을 멘 나는 그 아름답던 청춘의 시대로 돌아가 청년의 걸음걸이로 길을 걷는다.


'자유'를 준다. 백팩을 메고 나면, 두 손 모두 자유롭고, 어깨는 무거움을 잊어버린다. 그렇게 몸에서 시작된 자유로움은 순식간에 마음속 저 깊은 곳까지 자유로 가득 채운다.


'배려'를 준다. 백팩을 메고 지하철을 탈 때면 백팩을 가슴 앞으로 돌려 멘다. 타인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 않아서다. 가방을 앞으로 멘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지만, 생각으로 바라보면 참 멋진 폼이다. 백팩을 앞으로 돌려 멜 때면, 배려심이라는 소중한 것이 아직 내게 있음을 확인한다.


'건강'을 준다. 백팩을 메면 차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가볍고 자유로운 몸을 가진 백팩은 걷기와 잘 어울린다. 걷기를 더하는 만큼 건강을 덤으로 얹어준다.


백팩 하나가 이렇게 많은 선물을 준다. 내가 백팩 메기를 조금만 앞당겼더라면, 나의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백팩 메기 버킷리스트 프로젝트의 물심양면 후원자 - 아내와 딸들 - 에게 감사를 전한다.



오늘도 나는 백팩을 메고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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