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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nna Aug 01. 2022

걸음을 잊은 날

<삶은 즐거운 늪이다 >


2. 걸음을 잊은 날



어미 사슴이 새끼를 낳았다. 아기 사슴은 태어나자마자 몸을 벌벌 흔들면서 접힌 긴 다리를 세운다. 가느다란 쇠꼬챙이 같은 다리는 처음 하이힐을 신은 여자 같이 흔들거린다. 일어서려고 하고 있다. 몇 번이나 반복한다. 어미는 가만히 옆에서 지켜본다. 태어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아기 사슴은 이미 어미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티브이 속의 아기 사슴처럼 나도 다리에 힘을 주고 입술을 꽉 깨물고 긴장하고 있다가 건강하게 잘 걸어가는 아기 사슴의 뒷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아기 사슴보다도 한참 전에 태어나 미리 걷고 있었던, 이젠 눈 감고도 걸어야 하는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떻게 걸어야 할지 모를 때가 가끔 있다. 두 발을 어떻게 내디뎌야 할지, 왼 발 오른발 어떤 발을 먼저 써야 할지, 팔은 어떻게 해야 할지, 시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다. 자연스럽게 행했던 모든 것들이 낯설어질 때 나는 당황한다.



한참 잘 걸어가다가 갑자기 걸음이 낯설어진 나는 길가에 서서 걱정이 한가득한 그림자를 달고 있다. 그림자는 그런 나를 마치 어미 사슴처럼 지켜볼 뿐이다. 나만을 바라보고 의식한 채 내 발을 꼭 붙들고 있다.



왜 난 당연히 해오던 것들이 가끔 낯설까? 모든 살아 움직이는 것들로부터 소외된 채 정지되는 것일까? 인간의 걸음걸이를 익히려고 잠깐 외계인이 내 기억을 빼앗아 간 것일까? 걸음의 자동화 시스템이 가끔 멍을 때리는 것일까? 사람들은 길가에 멈춰 있던 내가 어떻게 걸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가 없다. 한참을 잘 걸어왔기에 앞으로도 잘 걸을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낯섦을 발견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평소 쓰던 언어가 주는 낯섦에 아찔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편하게 내뱉었던, 무의식보다도 더 무의식의 자동판매기 같던 단어가 몇 번을 반복하고 정색해서 읊조리면 익숙한 단어는 바로 휘발되어 날아가버리고 길치가 되어버린 낯섦만 남는다. 낯설다고 했으면서 뒤돌아서면 또 자연스럽게 그 언어를 쓴다. 그뿐만이 아니다. 누구나가 다 아는 연예인의 얼굴을 어느 순간 찬찬히 뜯어볼 기회가 생기고 정색해서 보는 그 순간 낯섦에 또 빠졌던 기억이 난다. '원래 이렇게 생긴 사람이었나?' 하면서 말이다.



익숙하던 것이 금세 건망증이 되어버리고 낯섦으로 공백을 채운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고 익숙한 것이 날을 세우면 낯섦이 될 수도 있다.



워밍업을 하듯 왼팔과 왼다리,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묶어버린 듯 함께 움직여본다. 내가 바보같이 걸어도 사람들은 모른다. 바보같이 한참 걷다 보면 혼자 피식 웃음이 난다. 그 틈을 타서 내 걸음은 제자리를 찾아간다. 마치 익숙한 것에게 마냥 위안을 받지 말고 당연한 듯 굴지 말라고 하는 경고 같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하는 모든 행동에 그저 감사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언제든 멈춰 세울 수 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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