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작은 너에게

그리고 당신들에게

by 지하림

힘들수록 조용히 사라지는 쪽을 택하곤 했다.

연락처를 정리하고, 이름을 바꾸고, 번호를 바꾸고, 도시를 떠나 내려왔다.


지나온 선택들을 모아놓고 보니 도망을 위했다기보다 다시 굴러가기 위한 작은 숨구멍을 찾으려 연신 발버둥을 쳐댄 흔적이 가득이었다. 버티다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잠시 사라지는 쪽을 택했던 거다.


정처 없이 떠돌던 어느 날 밤, 이유 모를 눈물이 흘렀다. 무엇을 그토록 잘못했기에 이 먼 곳까지 흘러왔는지 끝을 상상할 수조차 없어 더 버거웠다.


형용하기 어려운 불안이 오래 머무르던 노을이 지던 때, 그가 조용히 말했다. "바다랑 노을이 안아주는 느낌이야"라고.


그 한마디는 뜻밖의 안도였고 마음을 내려놓게 만든 첫 위로였다. 평생 도망치며 찾던 안전함은 요란한 위로나 약속이 아니라 묵묵히 반복되는 행동 속에 있었다.


손을 잡아주고, 말없이 안아주고, 갑자기 막춤을 추며 웃음을 짓게 해 주던 꾸준함지 그의 헌신이 나를 다시 나에게 데려다준 것이었다.


결국 도망의 끝에서 머무를 자리를 찾았고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구구절절 감추려던 수많은 흔적들은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문장이 되었으며 그 문장들을 외면하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조금씩 덜 숨는 쪽으로 자라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삶과 사랑을 위해 지금의 내가 멀리 달라질 필요는 없다. 도망치지 않고 하루에 한 걸음만이라도 덜 숨는 쪽으로 돌아오는 일이면 충분하다.


이 연재의 끝은 여전히 완성이 아니라 초대로 남기려 한다.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오라는 초대가 아니라 지금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는 초대로 말이다.


나와 비슷한 시간을 겪었거나 감정을 느꼈을 누군가에게 고립을 선택했던 시간을 안아주고, 언제든 잠시 숨어도 괜찮다고 내밀어주는 손이고 싶다.


돌아올 수 있는 힘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아주 작게라도 다시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강요 없이 그저 숨 쉬듯 건네는 초대로 남고자 한다.


결국 삶은 자기 속도를 부정하지 않는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아주 작은 속도로도 충분히 이어지니 받아들이는 순간까지만 힘을 내본다면 다시 굴러가기 시작한다고 믿는다.




유년의 상처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남아있겠지만, 그 안에도 나를 지켜낸 사랑이 실로 존재했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keyword
이전 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