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회복
사랑을 쉽게 믿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다.
좋아한다 라는 말은
누군가의 외로움이나 욕구일 수도 있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관계의 시작보다 끝을 먼저 떠올리는 습관은,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생존 방식이었다.
습관처럼 경계했다.
누군가를 먼저 좋아한 기억이 거의 없다.
감정을 확신에 가깝게 보여줘야
비로소 마음이 움직였다.
마음을 열기 위해선
신뢰할 만한 근거가 필요했다.
그건 어느새 내 방식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서툴지만 오래갔다.
사랑은 항상 오래, 진지하게. 진심으로.
어쩌면 그래서 더 지치고, 더 무거웠다.
그런 나에게 그는 이상하게 다가왔다.
조급하지 않았고, 감정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나를 바꾸려는 시도 없이 그냥 곁에 머물렀다.
불안해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조용한 확신은,
내가 그동안 감정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불안과 통제였음을 알게 해주었다.
오래 걸려도 되는 사랑이 있다는 걸
조용히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그가 물었다.
"왜 그렇게 사랑받는 일에 조심스러워?'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 자체가 내 안의 질서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늘 설명하고 증명해야 했던 감정들.
그런 피로 속에서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을 박탈하며 살고 있었다.
나를 접어가며 사랑을 유지했던 시간들에
더 많이 적응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내게 그는 아무 조건 없이 말했다.
"그렇게까지 조심하지 않아도 돼."
처음엔 낯설었고, 불편했다가
편안하기만 한 표정을 보고는 화도 났다.
그러다 나중엔 점점 믿어보고 싶었다.
'혹시, 나도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일까?'
그 생각이 스치자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그제야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왜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의심할까?'
아마도 내던져진 감정을 이해하려 애쓰고
때로는 나를 접어가며 사랑을 유지했던 시간들에
더 많이 적응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누군가를 소유하거나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무너진 감각을 회복해 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를 만나고 난 뒤,
부모님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두렵고 거칠었던 말과 표정이
이제는 외롭고 지쳐 있는 누군가의 고단함 처럼 느껴졌다.
감정의 칼날을 내게 쥐어준 사람이 아니라,
그 무기를 내려놓을 줄 몰랐던 사람들로 보였다.
이해는 받아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조금 더 견고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사랑이란, 자격이 갖추어져야 시작되는게 아닌
내가 나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에서 시작된다는 걸 안다.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감각은
누군가의 손을 잡는 순간보다
내가 내 손을 쥐는 순간에
비로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감정은 사치가 아니라는걸 알려준 사람,
이 모든걸 가능하게 해준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었다.
당신은 어떤 사랑을 통해 회복되었나요? 혹은 아직, 사랑이 두려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