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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대회는 중요한 일을 준비하는 습관을 길러 준다

by 철봉조사러너
오늘은 컨디션이 좋다.


왜냐면 오늘은 너무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저하게 준비했다. 컨디션도 너무 좋다. 정말 잘 해낼 일만 남았다.


나는 요즘 징크스 같이 생긴 것이 있다. 이상한 게, 중요한 일이 있는 날마다 비가 온다... 처음엔 어쩌다 그랬으려니 했지만, 한 2년 전부터 계속 반복된다. 특히, 업무적으로 중요한 만남이나, 외부 발표, 심지어 오늘 같은 날에도 비가 온다. 이런 날을 매우 싫어하는 나에게는 정말 곤혹이다. 영향을 안 받기가 어렵다...


오랜만에 강의를 나왔다. 새로운 곳이라서 좀 어색했지만, 크게 긴장되지는 않았던 거 같다. 준비한 것을 충분히 발휘했다. 날씨가 안 좋았음에도 강의가 끝나고 매우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에게 있어 정말 최악의 기록을 냈던 2023년 JTBC 마라톤이 생각났다.


그날 아침은 정말 유독 컨디션이 좋았다. 미리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날은 정말 중요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1년 전부터 달성하고자 마음먹었던 3시간 10분 이내의 싱글 기록을 내기에 딱 알맞았다. 문제는 그날도 비가 왔다는 사실이다. 대회 전부터 강수량이 상당했다. 하지만, 출발지점에 들어서고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입고 있던 우비를 버렸다. 공기가 상쾌하고 선선한 것이 '바로 오늘이구나'를 느끼게 해 주었다.


21km 하프 지점까지 정말 좋은 페이스로 잘 밀고 나갔다.

'오늘 되는 날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하프를 지나 25km 지점부터 오기 시작한 비는 나를 완전히 젖은 수건처럼 무겁게 만들었다.


결국 싱글은커녕 3시간 20분이 넘는 기록으로 들어왔다.


나중에 함께 뛰는 동료 러너 형님이 내가 뛰는 뒷모습을 봤었는데, 너무 안쓰럽고 무겁게 뛰더라라고 후기를 들려주셨다. 어쨌든 이래 저래 나의 마지막 마라톤은 최악의 기록을 낸 대회로 기억에 남았다.


출발 전 - 제대로 퍼짐 - 완주 후 가정문제 발생...

나의 2023 JTBC 마라톤 후기: 달리기 은퇴를 선런(Run)하다.


마라톤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서는 정말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챙겨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훈련이다. 42.195km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많은 러너라도 못해도 2~3개월의 준비기간을 가진다. 최소 월 200km 넘게는 달려주고, 기록의 향상을 위해 장거리, 인터벌, TT(Time Trial)까지 아주 다양하게 훈련한다. 만약 풀코스 마라톤이 처음이라면 당연히 10km, 21km(하프) 등의 대회를 거쳐서 경험해야 하고, 최소 일반인은 6개월은 훈련해야 한다. 정말 단순히 설명했지만 풀 마라톤은 많은 고민과 시험을 통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만큼 휴식도 중요하다는 가치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마라토너는 필수적으로 테이퍼링(tapering)을 한다. 이는 열심히 훈련을 이어가다 천천히 어느 시점부터 훈련을 줄이고 컨디션을 조절하는 걸 말한다. 대략 훈련은 2~3주 전부터 줄여 나간다. 굉장히 체계적인 계획 하에 이루어지는 중요한 과정이다.


훈련량을 점차 줄여간다. 그 대신 속도는 빠르게!


그다음은 카보로딩(Carbo-Loading)이다. 이는 대회에서 쓸 에너지를 비축하는 행위로써, 대략 1주일 동안 탄수화물을 엄청나게 먹는 거다. 거의 때려 넣는다는 표현이 맞는데, 흰떡이나 빵, 밥 등을 거의 때려 넣는다. 물론 고기도 많이 먹는다. 마라톤 같이 긴 장거리는 자신에 신체에 있는 당(글리코겐)을 태우면서 달리기 때문에 사전에 에너지 충전은 필수이다. 대회 당일이나 달리면서도 '에너지 젤'같은 보조제도 당연히 먹는다.


길고 강도가 높은 운동은 글리코겐을 고갈시켜 급격한 피로와 신체에 부담을 준다. 이는 연구에 있어서 오랜 학설이다. 스웨덴 스톡홀름 세인트 에릭스 병원의 교수였던 조나스 벡스톰(Jonas Bergström) 박사와 동료들은 운동 중 근육의 글리코덴 대사에 대한 연구(1967)에서는, 운동 강도와 지속 시간에 따라 글리코겐이 고갈됨이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영국 버밍엄 대학교 스포츠 및 운동 과학부의 최연소 교수인 애스커 주켄드럽(Asker E. Jeukendrup) 교수도 운동 전 탄수화물 섭취에 대해서 운동 성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2011). 이는 2시간 이상의 지구력 운동에서 에너지 공급을 최적화하기 위해서 글리코겐 고갈의 방지가 필요함을 제시하였다.


결국 마라톤은 약 2시간 반에서 3시간 이상 운동을 이어감을 감안해야 한다. 그때부터는 몸의 지방이나 근육이 아니라 몸에 비축된 글리코겐(탄수화물)까지도 빠지게 되기 때문에 급격한 피로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며칠 전부터 이미 충실하게 몸의 영양을 채워 넣어 만들어 줘야 한다.


결국 이처럼 대회 D-day를 기점으로 최소한 2주 전부터 철저한 관리는 필수이다.


당연히 대회 전날은 웬만하면 신체에 무리를 주지 않고, 충분히 수면해야 한다. 혹여나 음주는 금물이다. 전날을 잘못 관리하면 그동안의 노력을 모두 날릴 수 있다. 물론 긴장감에 수면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느끼는 거지만 대회의 성패를 가르는 건 수면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훈련 - 테이퍼링 - 카보로딩 - 휴식) 이 4가지는 마라톤 대회의 필수 사항이다.

테이퍼링과 카보로딩은 이런 거 먹으면서 푹 쉬면 된다. 단, 전문적으로 할 거면 영양의 균형도 중요하다.


나에게 있어 마라톤 대회는 중요한 일을 준비하는 습관을 가르쳐 주었다.


집중력이 부족한 편은 아닌 듯 하지만, 나는 긴장을 많이 한다. 심지어 아침형 인간도 아니라서 아침부터 중요한 일을 하면 더욱 실력 발휘를 잘 못한다. 하지만 마라톤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서는 나를 아침형 인간에 맞춰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일을 함에 있어서 긴 기간 동안 준비하는 습관은 어느 분야에서나 확실한 성공의 요인이다.


이제는 많이 긴장하거나, 중요한 날 컨디션이 매우 안 좋아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줄었다. 마라톤 대회처럼 미리 철저하게 준비하면 떨리지 않게 되고, 조금 컨디션이 별로라고 해도 어느 정도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은 충분히 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정말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게 확실하다.


사실, 요새 개인적으로 좀 다시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고, 업무적으로도 여러 불편한 감정이 든다. 그러다 보니 연초부터 준비했던 일에 대한 의욕도 좀 시들해졌다.


정말 열심히 살고 있건만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하니 도 난다.


심지어 여전히 내 몸은 마라톤 대회의 참여는커녕, 단순한 러닝을 하기도 쉽지 않은 상태다.

한 번 망가진 신체적인 문제는 생각만큼 좋아지지 않는 듯하다.


비록 힘든 시기이지만, 예전에 열심히 참가했던 마라톤 대회를 기억해 보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나의 마지막 대회인 2023년의 JTBC 마라톤은 바쁘다는 핑계로 대회 전에 충분히 잘 쉬고 먹지 못했었다...

충분히 노력했으면 다음 단계는 휴식이어야 할 때가 있다.

무슨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노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너무 열심히 한 게 원인일 수 있다.

지금의 일상을 다시금, JTBC 마라톤과 같은 실수처럼 되풀이할 수 없다!


어떤 중요한 일에 있어서 예전처럼 열심히 준비하고 적절한 휴식을 통해 잘해보려고 한다.


나에게 찾아올 중요한 기회의 순간을 위해, '마라톤 대회'를 참가하듯이 준비할 것이다.

다시 내가 마라톤 대회를 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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