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리듬 위에 얹은 우리의 작은 음표들
겨울엔 크리스마스가 있고, 그보다 먼저 선배들의 수능이 있었다. 그리고 1년 뒤면 나도 그 시험을 치르게 되겠지. 그 무렵엔, 2~3억 원의 빚이 어느새 갚아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곤 늑대처럼 멀리서 그녀들을 바라보게 되겠지. 나는 그때쯤이면 더 이상 깨끗한 사람이 아니니까.
저 나이엔 ‘시간이 상처를 치료해 준다’는 말이나 ‘시간이 약이다’라는 위로를 믿지 않았다. 시간은 고통스러운 순간의 연속일 뿐이었고, 삶이 드라마처럼 극적으로 바뀔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선배들을 위해 수능 응원을 준비했다.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성실했던 사람들이기에,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랐다. 많은 이들이 말하길, 수능은 인생의 큰 분기점이라고 한다. 마치 19년 인생의 성적표처럼. 성인이 되기 전 마침표라고.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수능은 단지 본인의 공부 실력과 노력을, 전국 단위에서 시험해 보는 한 가지 방식일 뿐이라고. 전국에서 한 번쯤 순위를 매겨보는 드문 기회. 그런 경험 자체가 삶에서 흔치 않은 일이니까.
그래서 수능은 삶에 있어 전부는 아니지만, 지나고 나면 나쁘지 않은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앞서 달리기 때도 그랬다.
뭐든 잘해두면 나쁠 건 없으니까.
혹시 이 글을 읽는 고3이 있다면, 2026학년도 수능 잘 치르길 바란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지금의 당신을 응원한다. 힘들다면 받아들이고 즐겨라, 그럼 재밌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번 해에는 여자친구가 없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피시방에 갔다.
참 이상하게도, 다들 연말을 앞두고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점이 묘하게 겹쳤다.
왜 그 시점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마 여자친구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연애보다 우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자기들과 놀 사람이 못 된다는 것도.
사실 우리끼리도 의심하곤 했다.
‘우리가 뭐 그렇게 인기 많다고, 늘 여자친구가 있었던 거지?’
우리 수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끔은 웃기기도 했다. 우릴 사랑해 주는 여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누군가는 그런 우리를 철없다고, 혹은 한심하다고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의 우리는 즐거웠고,
후회는 없었다.
연애도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우리에게 친구는 훨씬 더 소중했다.
수능이 끝나자, 뉴스에서는 올해 등급컷이 어땠느니, 불수능이니 물수능이니 온갖 평가들이 쏟아졌다.
그 소리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 차례구나.
나도 저 흐름에 올라타게 되겠구나.
나도 저 시기에 TV에 나오는 사람이 되겠구나.
그럼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멋있게 내 이름 석 자 외치고, 짧게 소감 말하고 끝낼까?
아니면 그냥 웃기만 할까?
수능 난이도를 가늠하며 내년을 예측하는 뉴스 속 목소리들이,
더 이상 나와 무관한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년 겨울이면, 나도 그 중심에 서 있을 테니까.
그래도 굳이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남들의 평가는 참고사항일 뿐,
결국 이 시험은 내 것이고,
평가를 해도 내가 할 일이었다.
선배들의 수능이 끝난 날,
그들은 그동안 써왔던 책들을 한꺼번에 쓰레기장에 쏟아부었다.
그 양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후배들은 그 책더미를 뒤졌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시중 문제집은 이미 거의 다 풀어봤기에,
학원 교재나 과외, 인터넷 강의에서 쓰던 낯선 책들이 오히려 더 흥미로웠다.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문제를 마주하는 건
그 시절의 나에겐 꽤 짜릿한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덜 낡고 덜 더럽혀진 책을 고르는 데에 열중했다.
그 책 특유의 묵직한 냄새,
그걸 맡으며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마약 같았다.
그렇게 고3이 되었다. 열아홉.
이제 1년만 더 버티면 된다. 그렇게 믿었다.
끝까지 달려가서 결실을 맺고, 짐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사라지듯 쉬고 싶었다.
고3이 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친구들의 표정이 변했고, 말수는 줄었고, 성격은 조금씩 예민해졌다.
서로의 귀도, 입도 닫힌 채 각자의 공부에 몰두했다.
나는 아직 펜을 잡지 않았다. 한 번 정점을 찍고 나서 마음을 다잡는 중이었다.
6월 모의고사, 12월 모의고사를 치르면서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아직은 1등급.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일상은 매일 똑같았다. 반복되는 시간의 행진.
그 속에서 친구들은 종종 ‘변주’를 넣었다.
일상의 리듬에 자신만의 자유로움을 덧붙였다.
가끔은 허심탄회하게 술을 마시고 속마음을 털어놓았고,
가끔은 담배를 피우며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 했다.
가끔은 피시방에 갔다.
프로게이머의 꿈을 접은 걸 후회하면서도, 잠시나마 마음껏 몰입할 수 있었던 시간.
과학실에서는 각종 실험들이 벌어졌다. 그저 교과서를 위한 실험이 아니라, 우리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흩트리고 싶었던 실험들.
그렇게 우리는, 똑같은 하루 속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변주를 만들어냈다.
수험생이라는 악보 위에, 작지만 분명한 음 하나씩을 얹으며 살았다.
다들 우리의 악보가 어떤 피날레로 끝날지 궁금해했다.
당사자인 나조차도 그 결말이 궁금했으니 말이다.
유독 고3이 되고 나서, 자습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강당에 종종 발길을 옮겼다. 나이가 들었나, 수업시간에 피시방을 가기가 꺼러 졌다. 친구들이나 무엇보다 날 모티브 삼는 후배들을 위해서였다.
포근한 매트리스 위에 드러누워 잠들기도 했고,
가끔은 배드민턴이나 탁구를 치며 몸을 움직였다.
공부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 빈틈을 어떻게든 채워보려 애썼다.
의무와 여유 사이에서, 그리고 어느 순간 치료라는 명목하에.
나는 나만의 템포로 고3이라는 악장을 연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