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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고 May 27. 2024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총회장은 2012년 5월 동성서행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순방을 시작했다. 그 뒤로 수십 차례 해외 각국을 다니며 세계평화와 전쟁종식이라는 슬로건으로 연설을 이어갔다. 당시에 이 행보에 함께 한 여자가 있었는데 현재는 신천지에서 제명된 뒤 신천지와 법적공방 중이다.

이 여자은 어느 날 갑자기 신천지의 주요 인사로 떠올랐으며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자가 되었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수료생에게 간증을 하러 왔을 때였다. 당시의 나는 총회장을 향한 그녀의 과잉 충성이 당혹스러웠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다.

신천지는 일반 교회와는 다르게 이성적인 믿음을 강조했다. 예언과 성취를 보고 믿는 것이 참 믿음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한국 기독교에서 보이는 체험에 의존하는 신앙 행태를 비판해 왔다. 내게는 신천지의 이성적 믿음 추구가 꽤 합리적으로 다가왔다. 성경의 예언이 해석되고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실체로 나타난 것을 믿는다.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꽤나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런 신천지 신도의 믿음 행태에 체험을 보태고 극단적이고도 극대화된 믿음 행태로 바꾼 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총회장의 옆자리를 꿰차고 어디든 함께했다. 오랜 시간 총회장을 바라본 신도들은 이 모습이 어색했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총회장은 평소 큰 행사가 있거든 자신의 아내와 동행했고 많은 신도들이 그 모습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총회장이 있는 과천에서는 소위 사모파와 원장파로 나뉜 무리가 대치하고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납득되지 않아 오랜 시간 번민했다. 신천지의 구조에서 2인자는 존재할 수가 없는데도 2인자 노릇을 하는 그녀가 탐탁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를 비호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 몹시 버겁고 힘들었다.

총회에 있는 지인들에게 여러 번 문의를 했다. 도대체 어떻게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냐, 그녀의 존재가 성경적으로 마땅한 것이냐는 내용으로 수도 없이 문을 두드렸다. 총회장의 측근은 총회장의 허물을 감추는 데 급급했다. 대부분은 뜬소문이었다.  다들 각자의 충성심을 보탠 자기만의 총회장을 믿는 방법을 자랑처럼 늘어놨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총회장의 모습이 몇 달째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달에 한 번 정도, 어느 시점에는 매주 설교를 했다. 총회장은 불안한 마음이 들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혹은 기분이 좋아도 그랬다.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든,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든 직접 입을 열어야 했다. 그런 총회장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좀처럼 없던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총회장의 음성만 담긴 파일이 예배 설교 시간에 재생되었다. 두어 번쯤. 그리고 소문이 퍼졌다. 대수술을 여러 차례, 중환자실에서 생사가 갈리는 투병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 신도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계시록의 이긴 자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에 실족하거나(마음이 떠난) 절대 죽지 않을 총회장에게 내려진 신의 시험을 애타게 바라보며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대체로 후자가 신천지 신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 무렵 총회장이 억대 굿판을 벌였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신도들에게까지 그 일에 대해 변명하는 일은 없었지만 공식적이지만 은밀하게 하달된 답변은 그녀가 굿판을 주도했고 충성심에 무슨 일이든 해서 총회장을 살리려 했다는 것이었다. 이 내용은 대체로 중간관리자급의 사명자들에게만 교육되었고 그마저도 충성심이 상당히 높은 경우에만 전달되었다.


총회장이 다시 공식 석상에 올랐을 때는 이전 보다 더 활기가 넘쳐 보였다. 몇 차례의 대수술 끝에 건강을 회복한 것이다. 총회장은 자신이 건강을 찾았다는 것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단상으로 오를 때마다 펄쩍 뛰어오르는 쇼맨십을 보였다.

병상에서 일어난 것은 사망했다가 부활한 것으로 포장되어 신도들에게 퍼져나갔다. 끝내 총회장의 옆자리를 지켰다는 두 사람이 영웅처럼 떠받들어졌는데 대형 지파의 지파장 하나와 그녀였다. 그 후로 2인자라는 말이 부족할 만큼 그녀의 위상은 높아졌다. 이전에 이 정도의 권세를 가졌던 사람이 있었던가.


총회장이 돌아온 뒤에 그녀는 전국적으로 빛의 군대라는 이름의 집체교육을 실시했다. 전권이 그녀의 손에 쥐어지자 전국적으로 세력을 강화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된 것이었다.

빛의 군대는 사람을 극한까지 몰아붙여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락에 떨어트리고 난 뒤에 메시지를 심어주는 일종의 세뇌교육이었다. 심어야 할 메시지는 총회장이 죽음에 이르렀다가 다시 부활했다는 것이었다. 포장하기로는 목자의 심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프로그램의 슬로건이었지만 실은 신학과정으로 생긴 총회장을 향한 믿음을 극대화시키려는 구성이었다.

기수 별로 30-100명가량의 인원이 참여했고, 교육 진행을 위한 보조인력이 거의 1:1로 붙었다. 무박 3일의 시간이었다. 잠을 재우지 않아 체력을 극도로 떨어트리고 음식 섭취 또한 극단적으로 제한시켰다.

실현시키기 어려운 미션을 주고 달성하지 못하게 해 무력감을 주었다. 프로그램 중간중간 '죄 고백'이라는 시간을 만들어 다수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게 했다. 수치심으로 오열하거나 거부반응으로 퇴소를 자처하는 일도 벌어졌다.

야간 산행, 산속에서의 체력단련 훈련, 공포에 닿을 수 있는 모든 방식을 동원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마칠 때가 되면 완전히 무너진 정신 상태에서 영상을 하나 틀었다. 총회장의 병상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열이면 여덟아홉에게 극한의 세뇌가 이루어졌다.

앞선 기수에서 감동한 사람들이 후속 기수의 교육 보조로 참여했고, 빛의 군대에 참여한 사람과 참여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생겼다. 놀랍게도 그 여부가 참 믿음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뉘었다.

신천지 역사상 가장 대대적이고 역동적인 교육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되어 사라졌다. 육체적인 한계로 몰아붙이려는 과정에서 다수의 인명사고가 있었는데, 끝내 사건은 은폐되었고 빛의 군대는 어느 시점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내 기억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빛의 군대는 신천지 신도들의 머릿속에서 그녀가 신천지의 2인자임을 인정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수많은 루머에도 그녀를 옹호하는 세력들이 늘어났고 그녀의 위상은 공고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총회장이 계시록을 이룬 예수님의 대언자라는 전제가 깔려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총회장의 위치를 가장 적절하게 이용해 그 자리에 오른 자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총회장과 그녀의 행보가 바로 동성서행이었던 것이다. 동쪽에서 이루어진 것을 서쪽에 전한다. 서쪽, 그러니까 유라시아에서 시작된 예수의 예언이, 동쪽,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마태복음 24장 14절의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해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의 구절과 연결되어 정당성을 찾았다.

수십 차례 해외를 돌면서 총회장은 강연을 하고, 세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 대담을 나눴다. 성과는 영상으로 편집되어 신도들에게 방영됐다. 영상 속에서 총회장은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고, 세계 주요 인사들의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었다. 신천지 신도들은 정말로 신천지가 신의 가호로 세계로 뻗어나간다고 믿었다.

이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청년들이 밤낮없이 매달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해외 인사들과 만남을 추진했고, 비용은 편집된 영상을 DVD로 제작 판매하여 얻은 수익이나 후원을 받아 해결했다. 해외 각지에 파견된 교역자와 청년들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총회장이 강연할 수 있는 구색을 갖췄다. 편집된 영상이 신도들에게 보이면 나도 저 현장에서 신의 뜻에 동참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수많은 청년들이 또다시 타국에 파견되었다.

청년들이 일하는 동안 최저 수준의 여비교통비가 지급되었다. 버틴다는 말 말고는 다른 말은 할 수 없는 수준의 생활비였다. 몇 개월 벌어 몇 개월을 버티거나, 간혹 실업 급여를 받아 생활한다던가, 그게 아니라면 야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대리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마저도 해외로 파견된 경우에는 할 수가 없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껴 버텨야 했다. 청년들의 노동력이 착취에 가까운 수준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신의 일을 한다는 착각으로 거룩하게 포장되었고, 각자의 자랑이 되어 다른 신도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신천지에서 동성서행을 얻은 성과라며 홍보했던 것들이 있었다. 분쟁지역의 무장 단체를 모아놓고 종전 선언을 시켰다던가, 실제 각국의 전직 대통령과 만나 대담을 나누는 것들이나, 총회장에게서 빛을 보았다며 찾아온 사람들의 인터뷰였다. 대체로 신도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나 내게는 끔찍한 사기극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총회장의 동성서행이 사기극일지라도 신도들의 결집력과 후에 있을 큰일을 하는 데 있어 초석으로 삼을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때로는 이런 것도 필요하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동성서행을 시작한 지 4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총회장의 행보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신천지에서는 4년에 한 번씩 대형 문화체육행사를 벌였다. 같은 해 동성서행이 시작되었고 체육행사에서 혼인잔치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주인공은 총회장과 그녀였다. 성대하고 성대했으며 모든 신도가 보는 앞에서 황금색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두 남녀가 춤사위를 벌였다.

동성서행은 계속되었고, 신천지가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국내의 신도들은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다는 정신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았고, 전도 활동에 매진했다. 총회장이 해외로 떠나면 전국의 교회는 전도 경쟁이 벌어졌고 총회장이 돌아오면 전도 결과로 상벌이 주어졌다. 그녀의 존재는 더욱 부각되었고 실제로도 그녀가 나타나기 전과 나타난 후의 신천지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총회장은 설교 중에도 그녀의 존재를 언급하며 칭찬을 일삼았고, 급기야 막달라 마리아의 사명을 하는 자라 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그녀는 별안간 사라졌다. 법적 공방을 여러 차례 거치고 그녀는 신천지에서 제명되었다. 따지고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에게 심판받은 셈이다. 솔직히 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보로 신도들이 꿈꿨던 구원과 신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순간들은 완전히 무너졌고 거짓말이 되었다.

총회장의 해외 순방 일정에서 생긴 수많은 거짓말과 기행으로 신천지를 떠난 청년들이 많다. 모두가 하나같이 말하는 것은 자신의 청춘이 한 노인의 늦바람에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총회장의 해외 순방이 그녀와의 밀회였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성과는 모두 조작이며, 해외 주요 인사들은 총회장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다.


총회장은 언제나 그렇듯 이에 대한 사과가 없다.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사단의 무리들이 있어 힘이 든다며 신도들에게 우는 소리를 한다. 신도들은 이 일로 다시 신의 목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자신을 희생해 신의 목자의 행복을 빈다.


신천지에서는 총회장의 설교를 녹취하고 녹취록을 분석하면서 그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일종의 정신교육 개념의 활동이 있다. 나 역시 거의 모든 설교의 녹취록을 가지고 있다. 총회장의 설교 때 그녀에 대해 발언한 내용이다.


원장은 얼굴도 이쁘고 말씨도 이쁘고 맘씨도 이쁘지 않습니까. 해외에 나가면 제가 말하고 나서 원장이 나와서 말을 합니다. 같이 나가서 듣는 사람이 마음이 열리고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쁘니까 데려다니나? 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꾸 자기를 안 보고 딴생각이나 하니까 자기가 낡아졌다는 생각은 안 하고 딴생각이나 하는 거 아닙니까? 이 사람 실족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과연 신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일까. 악한 자와 사칭하는 자에 대한 심판은 왜 이루어지지 않는가. 왜 나의 청춘은 신의 이름으로 이리 고달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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