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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고 May 20. 2024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2024년 5월 15일

약 2000년 전 예수가 랍비로 칭송받으며 제자들을 이끌었다. 제자들은 또 제자들을 만들었고 점차 영역을 확장해 전 세계에 기독교를 안착시켰다. 신천지의 총회장도 제자를 만들었고 제자들은 총회장을 선생으로 칭송했다. 언젠가부터 신천지의 총회장으로 불리기를 원했지만 과거에는 신천지 대표, 혹은 선생님으로 불렸다.


매년 5월 15일마다 신천지에서는 스승의 날 행사를 치른다. 각 지역으로 퍼져있는 신천지 핵심 인재들이 인덕원 기도동산으로 모여 스승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핑계로 총회장을 찬양한다.

인덕원 기도동산은 총회장이 장막성전의 터를 바라보면서 모세의 심정으로 기도했다는 장소다. 움막을 짓고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매일 같이 기도를 했다고 한다. 흙을 파먹고 나무껍질을 씹으면서 절치부심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신천지 신도들에게 반복적으로 교육되는 내용이다. 그가 그곳에서 신이 택한 목자로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 기도했다는 이야기는 신도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신천지 총회장의 일대기를 들어 성지화한 장소가 여럿 있는데, 이 기도동산도 그런 곳이다. 특히 수도권에 있는 지파의 수강생들은 수료를 앞두고 총회장에 대한 믿음을 고취시키기 위해 과천의 장막성전 터와 인덕원의 기도동산을 찾는다. 가이드를 맡은 지파장이나 강사들이 장소에 담긴 이야기를 하면 수강생은 신학 과정 중에 들었던 신천지의 실상 이야기를 떠올린다. 성경이 이루어졌고, 나타난 실체를 눈으로 본다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이윽고 장면을 목격한 자의 믿음은 전보다 더 확고해지고 커진다.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 행사가 있었다. 코로나 19 이후로 참석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진 듯하다. 믿음의 크기는 다르게 마련이고 그 믿음 대로 행동하는 거지만, 모두의 마음에 있는 것은 참석 그 자체였다. 성지에서 벌어지는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구원에 이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신도들의 마음이 그러하니 인원을 동원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이번 스승의 날 행사에는 각 교회의 중진들과 교역자들, 그리고 각 회의 사명자들까지 참여할 수 있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과거에는 수를 제한하기 바빴으나 이번에는 인원 동원에 어려움을 느꼈는지 많은 신도에게 기회가 주어진 모양이었다. 교회 중진인 내 지인은 거의 무조건적인 참석이 요구된 모양이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대다수가 그런 마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 내 지인들의 마음은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천이 예정되었던 날, 참석을 기피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지인은 모처럼의 행사에 질색하며 코로나19 시절을 그리워했다.

"왜 이리 오라 가라 하는지 모르겠네. 이런 궂은날에는 그냥 적당히 실내행사로 돌려도 되잖아."

"그럼 가지 마."

그의 볼멘소리에 바로 가지 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완전히 떠나 버린 내 마음을 안타까워했다. 불만을 토해내지만 아직도 머릿속에는 행사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자리한 것이다. 이중적인 그의 태도에 한숨이 먼저 나왔다. 입씨름을 해서라도 내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지인은 자신의 행동과 말에 어떤 모순이 있는지 쉽사리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곳에서 신천지 신도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는 자신의 모순을 감출 만한 정당성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신천지의 총회장이 예수님의 대언자로서 성경을 이루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천지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는 총회장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된다. 적을 그곳에 두고 있으나 마음이 떠난 나 역시 총회장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아 신천지의 발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나를 채근하기도 한다.


현재 신천지에 남은 자들의 상당수는 총회장에게 씌워진 예수님의 대언자 프레임에 갇혀있다. 계시록 1장 1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전달되는 과정을 들어 총회장은 자신을 예수님의 목자로 세웠다. 한 때는 자신을 들어 사도요한 격 사명자라고 한 적도 있었다. 예수님이 그 종들(신천지 신도들)에게 보이시기 위해 그 천사(보혜사 성령)를 요한(총회장)에게 보낸 것이라는 말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와 끝도 없이 싸워야 했던 것이다.

그밖에 계시록의 모든 구절이 총회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몇몇 개념들을 만들어 신천지의 핵심 교리로 가르쳤다. 이 내용들은 기존 기독교 교리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었고, 요한복음 3장 34절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를 만나 진리와 비진리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한 번 총회장을 예수님의 대언자로 인정한 뒤로는 그의 판단이 곧 예수님이 예언이 이루어지는 실체로 이어지는 거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총회장은 자신을 스승 삼은 자들을 전국 각 지역에 보내서 지파와 교회를 세우게 했고, 자신의 말(계획)을 실현시키게 했다. 신천지는 이 과정에서 성경을 이룬 것이 나타났다고 가르쳤고, 총회장의 권능은 예수님의 대언자 수준에서 재림한 예수 그 자체가 되어갔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신천지의 총회장의 일대기는 요한계시록의 요한이 겪은 이야기를 현실의 사건과 맞추기 위해 조작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상당수의 실제 사건을 들었기 때문에 얼핏 보면 사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얼마나 허접한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있다.

총회장의 일대기 중 신천지 실상에 주요한 사건은 이러하다.

1967년 6월 장막성전 입교, 1971년 청도로 낙향, 1977년 가을 예수님께 안수받음, 1979년 배도자에게 편지함, 80년 봄 예수님께 책 받아먹음, 80년 3월 14일 공생애 시작, 80년 가을 구치소행, 81년 2월 2일 선고유예로 출감, 81년 3월 14일 산상예배 시작, 81년 9월 20일 이삭교회 임직예배 목격, 84년 국사봉에서 신탄 집필, 84년 3월 14일 신천지 창립(실제 창립일 선포 9월 24일).

그러나 이는 계시록의 사건을 배도, 멸망, 구원의 순리로 맞춰 넣기 위해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하다.

신천지에서는 총회장이 장막성전 입교 후 청도로 낙향하는 이유를 변질된 일곱 사자의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해 수차례 탄원하다가 핍박을 받아 낙향한 거라 가르친다. 그러나 한 가지 빼놓은 것이 있는데 1971년 2월 2일 자로 일곱 사자 중 두 명과 그 외 몇 명을 폭행으로 고소한 것이다. 관련 자료를 조금 더 살펴보면, 장막성전 내부 문건에 고소 사실과 더불어 총회장의 낙향 이유에 '전 재산을 털렸다고 하며'라고 언급되어 있다.

79년 받았다는 안수는 세 번의 변개가 있었다. 86년 발간한 계시록 완전 해설에는 80년 봄, 어느 설교 전문에는 79년, 07년 발간한 천지창조에는 77년이었다.

또한 편지를 보낸 날짜는 대여섯 번의 변개가 있었다. 86년 발간한 계시록 완전 해설에는 80년 봄, 97년 발간한 신천지 발전사에는 80년 9월, 90년대 중후반 사용하던 교육자료에는 80년 3월, 06년 신현욱 목사가 회심하여 탈퇴한 뒤로는 79년, 시기를 특정하지 않고 기간으로 명시하는 교육 자료도 있다.

그리고 책 받아먹은 일과 편지를 보내는 일이 벌어진 순서를 바꿔서 말하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책을 받아먹은 뒤 편지를 보냈다고 가르쳤다가 06년 이후로는 편지를 먼저 보낸 뒤에 책을 받아먹은 것으로 가르쳤다. 이는 장막성전의 일곱 사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건이 필요한 신천지가 80년 9월 이삭교회로 간판이 바뀌었다고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 상충되어 말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미 전부 이탈한 상태의 일곱 사자에게 편지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79년 총회장이 일곱 사자 중의 하나가 세운 사데 교회에 입교했다고 가르치는 상황에서 일곱 사자 중의 한 명이었던 자에게 회개의 편지를 보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신천지에서는 총회장이 사데 교회에서 평신도였다고 가르치고 있으나, 실은 제자로 들어가 직책을 맡았고 교주가 주장한 시한부 종말론에 실패하자 사데 교회의 직책자들을 수습해 신천지의 초석을 다졌다.

한두 번이면 넘어갈 만한 것도 반복되면 의심해야 한다. 물론 신천지 안에서도 계속해서 의문을 품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일점일획이라도 다 이룬다고 가르치면서 왜 이리 바뀌는 게 많은가, 하면서 의문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대체로 믿음이 없는 자 취급을 받았고, 요주의 인물이 되어 상담을 핑계로 일대일 교육이 진행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이름만 대면 알 법한 한 강사의 등장으로 실상에 대한 재정립이 이루어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강사는 단숨에 총회 교육부장이 되었고, 전국적인 계시록 실상 교육을 진행했다. 그는 다소 복잡한 계시록의 실상을 도표로 그려서 명료하게 구분했다. 논란거리를 만들 만한 사건들은 명예훼손 따위의 문제를 들어 얼버무리고, 그동안 논란이 있었던 사건들은 놀랍게도 반복해서 말하는 두 가지 문장으로 일축시켰다.

"책을 받아먹은 뒤에 실상을 보고 나니 계시록이 깨달아진 것이다."

"소한테서 돼지털 하나 났다고 소가 돼지 됩니까?"

이미 신천지 교리 교육을 통해 신천지의 총회장이 계시록의 이긴 자라는 공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에게 저 두 문장은 굉장한 파괴력을 가졌다. 책을 받아먹은 자가 그렇다는데 어쩔 거냐는 식의 논리가 생겨났고, 더 나아가 실상이 있는데 날짜를 잘못 기억하는 게 뭐가 문제가 되냐는 논리가 생겨났다. 소와 돼지털 이야기는 돼지털을 작은 것으로 비유해 하찮은 것 때문에 큰 것을 놓치지 말라는 의미였다. 저 교육 이후로 의심을 하던 사람들은 의심이 해소되기를 원하지 않고, 총회장의 말 그 자체를 믿으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저 교육이 먹힐 만한 상황이 아니다. 신천지의 총회장은 대놓고 실상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했고,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예전에 의심을 잠재웠던 강사는 모종의 사건으로 제명되었다. 믿음의 근간이 흔들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신천지 신도들은 여전히 스스로 세뇌를 반복하면서 총회장을 향한 맹신을 이어간다. 제명된 그 강사의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신천지 실상에 대한 의심은 죄악이며, 총회장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다.


나는 가끔 신천지 신도의 스승은 본인 스스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르치는 자, 곧 제사장이 되겠다는 열망이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기준이 절대적 진리가 되어 총회장을 예수님의 대언자가 아닌 새로운 신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을 총회장이 의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왕이 되고 싶은 욕심 많은 허풍쟁이는 지속적으로 일관된 거짓말을 했고, 지독하고 괴로운 현세에서 벗어나고픈 유약한 인간들이 그 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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