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실랑이 끝에 그 집개는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고 난 다시 한번 위기를 피했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려서 온몸이 후들거렸지만 그보다도 견주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과대처에의구심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당사자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고 하찮게 대하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다고...
무슨 일이든 제풀에 꺾일 것이라고 믿는듯했다.
말하지 않아도 다 들리는 말이 있듯이 그 행태로 미루어 짐작건대 아마도 이러면서 그 난리를 방관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길래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우리 개를 물었으면 이쪽은 얼씬거리지 말아야 되는 것 아니냐...
왜 여기까지 들어와서 그런 꼴을 당하느냔 말이다 어디한번 당해보든지
그럼 이제 겁나서 다시는 얼쩡대지 못하겠지...
빈정거리듯 읊어대는 그분의 목소리가 다 들리는 듯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사유지가 아닌 이상 어디를 다니든 내 자유와 권리의 문제이고 우리 개가 물었던 첫 번째 사고는 명백히 견주가 의도적으로 개를 풀어놓았고 그 개가 먼저 덤벼들어 방어했을 뿐인 정당방위이자 본인이 실수라고 인정하고 끝냈던 일이었으며 그일을 빌미로 나에게 어떤 요구를 한다거나 사유지 근처까지 사유지 화하여 권리를 주장하며 타인에게 제재를 가할 권한이 그분에게 없다는 것이 팩트이다.
사람이 사회적 지위와 재력 혹은 알 수 없는 권력이 생기면 저도 모르게 갑질을 하며 텃세를 부리게 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본인 발밑에서 우습게 꿈틀거리고 있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나 할까...
간신히 그 상황을 모면한 후에야 슬그머니 나타난 그분은 갑자기 어이없게도 나에게 자기 개는 어디로 갔냐고 묻는다 그러더니 별일이 없었다는 듯이 내게 시선도 안 주고도롯가 공터에 두었던 자기네 바비큐그릴에 둥그런 뚜껑을 괜히 한 번 열었다 닫으며 마지못한 시금털털한 목소리로 괜찮냐고 또 한 번 묻는다.
이는 그 소동을 다 알고 있었다는 뜻이고 알고도 그렇게 당하도록 두고 봤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방금 전 벌어진 상황으로 인해 엄청난공포를 느끼고 어렵게 또 한 번의 공격을 피한 후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말이다.
이건 또 뭐 하자는 건지?...
정말 할 말이 많았지만 대화는 사람과 사람이 하는 행위이지 이미 제대로 된 처신을 하지 않는 사람답지 않은 자에게 더 이상 피곤하게 따지고 들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도 아닌 자에게 세상 기본상식을 일일이 다 알려주고 가르쳐줘야 할 의무도 의욕도 없었다.
당연한 걸 알면서도 안 하는데 뭘 말해야 하고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심정이고말한다고 인정이나 하겠느냐는 말이다.
차라리 배움이 적고 연세가 많은 평생 혹은, 오랫동안 막일이나 힘든 일을 해오신 분이라면 잘 모를 수도 또는, 삶에 지쳐그러려니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그냥 내가 피해드리고 말자고 하고 말았을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렇게 크고 작은 트러블들이 쌓이며 산책길에서 행여 부딪히는 경우에는 두 마리를 제어하느라 힘든 나를 보고 역시 으르렁대는 자기 개를 불러들이거나 혹은, 잡아 제지는 하지 않으면서 마치 내가 실수로 균형을 잃거나 내 개들을 놓치기라도 바라듯 일부러 천천히 내 앞을 시위하듯이지나갔다.
심지어 그 상황을 즐기는 건지 빙글빙글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 우리를 주시해 가면서 말이다.
아마도 첫 번째 사건에서도 내가 실수해서 혹은 우리 개가 먼저 덤벼서물었을 거라고 의심하며 그 증거를 잡고 증명을 해내고 싶은 의도가 있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난 첫 번째사건도 물론이지만항상 그래왔듯이 그 이후로도 그 집개와 그분 앞에서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고굳건히 내 개들과 나를 꽉 잡고 잘 지켜내었다.
새벽산책에서 거의 매일 뵙는 남자 어르신과 하얀 말티푸종 개가 있다. 그분은 나와 지금까지 한동네에서 오 년째 아침산책시간이 비슷해서자주 만나 뵙던 사이였고우리 개들도 나이가 많은 그 집개 둥지와 인사하고 잘 지내던 사이였다.
어르신에게 내가 겪는 일들을 가끔 푸념해 왔기 때문에 대충 사건들을 알고 계셨는데 어르신은 나에게 그냥 참고 피해 가라고 하셨다.
오지 말라면 그쪽으로 가지 말고 하지 말라면
네~ 하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자에겐 엮이지 않는 것이 상책이고 내가 앞으로 더 다칠까 봐 그게 더 걱정이라고도 하셨다.
한마디로 속칭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예전에 어른들이 이런 말을 할 때면 난 비겁해서 자기 합리화를하는 거라고만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겪어보니 이 말이 참 지혜로운 말이구나 하는 실감을 했다.
그 이유는 몸을 다쳐보니 피하지 않으면 내가 다치니까...
그 고통과 피해가 너무 크다 보니 일단 다치진 말아야 할 것 아닌가...
하는생각이 들었다
난 어르신 말씀이 현명하고 고맙다고 느끼면서도 우리 부모세대들은 이런 식으로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부당한 이유로 억울하고 무자비하게 뺏기고 포기하며 살아왔을까 싶어 새삼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한편으론 엮이고 싶지 않지만 점점 갈수록 태산이 돼 가는 현실의 문제 앞에서 이제는 도망갈 수가 없는 지경에 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난 내가 사는 동네에서 내 개들과 산책을 쭉 이어가며 살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닥쳐진일들은피해서 될 일이 아니라 꼭해결하고 넘어가야만 할 절박한 문제였다.
그렇게 치열한 산책을 이어가던 저녁 어느 날...
봄이를 데리고 그분의 사유지 앞을 훌쩍 지나 펼쳐져 있는 밭언저리에서 냄새를 맡고 있던 중 뭔가 부산스럽더니 지나올 때 계속 짖던 그 집개가 끝내는 뛰쳐나와 우리 앞에서 들이대며 위협을 하고 서 있는 게 아닌가!!!
또다시 아찔한 상황에 홀로 내던져진 것이다!!!
얼어붙은 나는 피할 방법을 못 찾겠고 얼른 봄이를 내 뒤로 숨기는 게 서로 붙어 싸우는 것을 방지하는최선의 대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기막힌 일은 따로 있었다.
개가 빠져나간 것을 모르는 건지 지나올 때 분명히 그분 사유지 가건물 안에서 지난번 남편물림사고 때 견주에게 사고를 알려준 뒷집에 사는 지인과 술 등을 먹고 있는 걸 봤는데 어째 이 소란에도 그쪽에선별다른 기척이 없는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