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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 Oct 22. 2023

개를 키우면 일어나는 일 1-7

봄이의 트라우마

내 독촉에 얼굴은 벌겋고 약간 흔들거리며 마지못해서 지로 나온 그분은 술을 많이 마셨다며 상황에 맞지도 않는 한가한 핑곗거리를 중얼대며 다가왔고 난


'이것 좀 보세요!'  !!


역시 놀라고 흥분해서 넋이 나간 듯이 초점이 붕 떠있는 봄이를 보니 가슴이 더 내려앉았지만 상처를 좀 보라고 했고 그걸 건성으로 보면서 뭔 생각을 했는지 자기네 개도 온몸에 피가 얼마나 묻었는지 닦아주고 있었다나?


그러면서 앉아 있는 봄이 보고 하는 말이

'봄이야 괜찮지? ' 괜찮은 거지?

"오늘은 그렇게 됐네요"


그렇게?  돼?  뭐가 그렇게 돼?

뭐가 괜찮아 보여서 괜찮니도 아니고 괜찮다고 단정 짓고 개를 상대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건지 정말 제눈에는 이게 괜찮아 보여서 술 취한 목소리로 주절거리는 건지 참으로 황당했다.

본인의 잘못과 자기 개의 횡포로 피투성이가 된 남의 집 개를 보고 그리고 나를 보고 한다는 말이 그것뿐이고 그게 끝이었다.


나의 강력한 제지로 계속 빼돌리는 바람에 봄이는 공격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아예 물지를 못했고 그반해 풀려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그 개가 파고들면서 주둥이와 턱을 한번 물린 후 피가 튀고 범벅이 되어 엉키면서 봄이 피가 그 개에게 묻은 것이지 그 개는 물린 곳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봄이를 3개월 때부터 키우며 지켜본 바로 토리와 달리 자주 깨물기는 지만 겁이 있고 어설퍼서 토리처럼 야무지게 한방을 노려 는 못하는 성향의 개였다.




늦은 시간이라 병원을 갈 수가 없었고 일단 지혈을 하고 옆에서 토리가 핥아주고 해서 드러난 상처는 오른쪽 윗주둥이와 아래턱인데 아래턱 쪽이 상처가 깊고 살점이 뜯겨나간 듯 커다란 열린 상처자국이 보였다.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는 자에게 사과를 강요할 순 없는 일이었다.  

 남편에게 위로? 의 문자를 하나 보내왔고 역시 남편 물림사고 때처럼 사과표현은 일절 없었다.   법이 바뀌어 2m 이하 목줄을 하게 되어 있고 그 개도 자주 공격성을 보이니 꼭 조심해 달라고 당부하고 마무리가 되었으나 나는 해결되지 않는 사고원인과 그 후처리의 미흡함에 답답함을 넘어 속이 다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답이 없이 반복되고 끝도 없이 돌아가는 현실에 점점 희망을 잃고 개들과의 산책에서 힐링되던 심신이 반대로 하면 할수록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었다.


거기다가 그 사건 이후로 봄이가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집 앞에서 더 예민하게 눈치를 보고 자연스레 지나가길 거부하거나 극도로 흥분해서 막 덤벼드는 등 봄이는 지난번 공격당한 후 그 후유증으로 이제는 먼저 선수를 쳐야겠다는 욕심이 생긴 건지 언제나처럼 마구 짖어 대는 그 개를 보면 돌진하려 들었고 그때마다 훈육하고 통제하느라 난 마음도 아프고 힘도 드는 고단한 산책길을 감내해야만 했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내 딴에는 그렇게 극구 안 물리도록 안간힘을 쓰며 배려를 해주고 도리어 내 개가 심각하게 물렸는데도 고맙다는 소리는커녕 미안하단 말 한마디 안 하는 파렴치한 견주 때문에 괜히 우리 봄이만 마음의 병을 얻어 그 트라우마로 이 고생을 하는구나 싶어 자책감이 심해졌고 봄이에게도 너무나 미안했다.

사진 찍으라고 포즈도 잘 잡아주는 봄이 ~

게다가 원래도 야생성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녀석이라 토리와 달리 나를 완전히 믿고 따라오지는 않았던 봄이었는데 이제 더 나를 의심하고 믿지 못하게 되어 앉아서 고집을 피우는 성향도 더욱 심해졌다.

하긴 지킨다고 하는 게 오히려 물리게 하고 말았으니... 나도 할 말이 없었고 결국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으니 더는 못 믿고 저렇게 구는 것도 십분 이해는 되었다.  

그래서 더 속상하고 힘들어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손가락깁스를 풀고 나면 거의 대충은 정상이 될 줄 알았던 손가락은 충격적 이게도 이 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관절이 굳어 주먹이 쥐어지지 않았고 수술을 담당했던 주치의는 손가락을 악소리가 나오도록 눌러가며 최대한 빨리 그리고 초기에 열심히 재활을 해나가야 한다고 다그쳤다.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올 정도였는데 그게 손가락이 아파서인지 상실감과 우울함 때문이었는지 딱히 나눌 수가 없을 정도로 이렇게 된 상황이 비통하고 절망스러웠다.

물론  다리나 팔을 잃거나 장애를 갖게 되는 나보다 더 큰 고통에 몸부림치는 분들이 허다하겠지만 내 좁고 짧은 시선에선 그저 나의 손가락 관절이 굳어버린 게 더 크고 절박한 이 아닐 수 없었다.


이래저래 아프고 힘겨운 겨울이 지나고 있었고 그날도 사건의 현장이던 뒤쪽 공터를 봄이 와 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꼬박꼬박 거쳐 다니며 산책을 다니던 중에 그분이 또 말을 걸어왔다.

자기 개가 스트레스로 털이 빠진다며 무슨 일이든 할 테니 이쪽을 좀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이란  말을 써가며 웬일로 조금 숙이는 듯했다.  

일인지...?  왜 갑자기 하지 않던 태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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