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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우면 일어나는 일 1-5

산책전쟁 2

by 아이스

한참을 실랑이 끝에 그 집개는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고 난 다시 한번 위기를 피했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려서 온몸이 후들거렸지만 그보다도 견주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과 대처에 의구심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당사자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고 하찮게 대하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다고...

무슨 일이든 제풀에 꺾일 것이라고 믿는듯했다.


말하지 않아도 다 들리는 말이 있듯이 그 행태로 미루어 짐작건대 아마도 이러면서 그 난리를 방관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길래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우리 개를 물었으면 이쪽은 얼씬거리지 말아야 되는 것 아니냐...

왜 여기까지 들어와서 그런 꼴을 당하느냔 말이다 어디 한번 당해보든지

그럼 이제 겁나서 다시는 얼쩡대지 못하겠지...

빈정거리듯 읊어대는 그분의 목소리가 다 들리는 듯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사유지가 아닌 이상 어디를 다니든 내 자유와 권리의 문제이고 우리 개가 물었던 첫 번째 사고는 명백히 견주가 의도적으로 개를 풀어놓았고 그 개가 먼저 덤벼들어 방어했을 뿐인 정당방위이자 본인이 실수라고 인정하고 끝냈던 일이었으며 그 일을 빌미로 나에게 어떤 요구를 한다거나 사유지 근처까지 사유지 화하여 권리를 주장하며 타인에게 제재를 가할 권한이 그분에게 없다는 것이 팩트이다.


사람이 사회적 지위와 재력 혹은 알 수 없는 권력이 생기면 저도 모르게 갑질을 하며 텃세를 부리게 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본인 발밑에서 우습게 꿈틀거리고 있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나 할까...


간신히 그 상황을 모면한 후에야 슬그머니 나타난 그분은 갑자기 어이없게도 나에게 자기 개는 어디로 갔냐고 묻는다 그러더니 별일이 없었다는 듯이 내게 시선도 안 주고 도롯가 공터에 두었던 자기네 바비큐그릴에 둥그런 뚜껑을 괜히 한 번 열었다 닫으며 마지못한 시금털털한 목소리로 괜찮냐고 또 한 번 묻는다.

이는 그 소동을 다 알고 있었다는 뜻이고 알고도 그렇게 당하도록 두고 봤다는 의미한다.

나는 방금 전 벌어진 상황으로 인해 엄청난 공포를 느끼고 어렵게 또 한 번의 공격을 피한 후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말이다.


이건 또 뭐 하자는 건지?...


정말 할 말이 많았지만 대화는 사람과 사람이 하는 행위이지 이미 제대로 된 처신을 하지 않는 사람답지 않은 자에게 더 이상 피곤하게 따지고 들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도 아닌 자에게 세상 기본상식을 일일이 다 알려주고 가르쳐줘야 할 의무도 의욕도 없었다.

당연한 걸 알면서도 안 하는데 뭘 말해야 하고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심정이고 말한다고 인정이나 하겠느냐는 말이다.


차라리 배움이 적고 연세가 많은 평생 혹은, 오랫동안 막일이나 힘든 일을 해오신 분이라면 잘 모를 수도 또는, 삶에 지쳐 그러려니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그냥 내가 피해드리고 말자고 하고 말았을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렇게 크고 작은 트러블들이 쌓이며 산책길에서 행여 부딪히는 경우에는 두 마리를 제어하느라 힘든 나를 보고 역시 으르렁대는 자기 개를 불러들이거나 혹은, 잡아 제지는 하지 않으면서 마치 내가 실수로 균형을 잃거나 내 개들을 놓치기라도 바라듯 일부러 천천히 내 앞을 시위하듯이 지나갔다.


심지어 그 상황을 즐기는 건지 빙글빙글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 우리를 주시해 가면서 말이다.

아마도 첫 번째 사건에서도 내가 실수해서 혹은 우리 개가 먼저 덤벼서 물었을 거라고 의심하며 그 증거를 잡고 증명을 해내고 싶은 의도가 있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난 첫 번째 사건도 물론이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그 이후로도 그 집개와 그분 앞에서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고 굳건히 내 개들과 나를 꽉 잡고 잘 지켜내었다.


새벽산책에서 거의 매일 뵙는 남자 어르신과 하얀 말티푸종 개가 있다. 그분은 나와 지금까지 한동네에서 오 년째 아침산책시간이 비슷해서 자주 만나 뵙던 사이였고 우리 개들도 나이가 많은 그 집개 둥지와 인사하고 잘 지내던 사이였다.

어르신에게 내가 겪는 일들을 가끔 푸념해 왔기 때문에 대충 사건들을 알고 계셨는데 어르신은 나에게 그냥 참고 피해 가라고 하셨다.

오지 말라면 그쪽으로 가지 말고 하지 말라면

네~ 하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자에겐 엮이지 않는 것이 상책이고 내가 앞으로 더 다칠까 봐 그게 더 걱정이라고도 하셨다.


한마디로 속칭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예전에 어른들이 이런 말을 할 때면 난 비겁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겪어보니 이 말이 참 지혜로운 말이구나 하는 실감을 했다.

그 이유는 몸을 다쳐보니 피하지 않으면 내가 다치니까...

그 고통과 피해가 너무 크다 보니 일단 다치진 말아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어르신 말씀이 현명하고 고맙다고 느끼면서도 우리 부모세대들은 이런 식으로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부당한 이유로 억울하고 무자비하게 뺏기고 포기하며 살아왔을까 싶어 새삼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한편으론 엮이고 싶지 않지만 점점 갈수록 태산이 돼 가는 현실의 문제 앞에서 이제는 도망갈 수가 없는 지경에 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난 내가 사는 동네에서 내 개들과 산책을 쭉 이어가며 살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닥쳐진 일들은 피해서 될 일이 아니라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만 할 절박한 문제였다.




그렇게 치열한 산책을 이어가던 저녁 어느 날...

봄이를 데리고 그분의 사유지 앞을 훌쩍 지나 펼쳐져 있는 밭언저리에서 냄새를 맡고 있던 중 뭔가 부산스럽더니 지나올 때 계속 짖던 그 집개가 끝내는 뛰쳐나와 우리 앞에서 들이대며 위협을 하고 서 있는 게 아닌가!!!


또다시 아찔한 상황에 홀로 내던져진 것이다!!!


얼어붙은 나는 피할 방법을 못 찾겠고 얼른 봄이를 내 뒤로 숨기는 게 서로 붙어 싸우는 것을 방지하는 최선의 대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기막힌 일은 따로 있었다.

개가 빠져나간 것을 모르는 건지 지나올 때 분명히 그분 사유지 가건물 안에서 지난번 남편물림사고 때 견주에게 사고를 알려준 뒷집에 사는 지인과 술 등을 먹고 있는 걸 봤는데 어째 이 소란에도 그쪽에선 별다른 기척이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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