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계절은 사고로 얼룩진 가을을 지나 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그사이에 내 손가락은 결국 이대로 고정될 경우 관절을 쓸 수 없겠다는 진단을 받고 핀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고 그로 인해 부목을 하고 있어야 할 시간은 다시 한 달이 더 늘어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부목만 빼면 손가락이 다정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었다.
사실은 손가락보다는 산책이 더 험난해졌다는 게 당면한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한 마리씩 다니는 산책은 처음 나가기 전에 간식으로 따돌리는 수법을 썼는데 계속되다 보니 2번 타자 토리가 이제는 더 이상 간식의 유혹도 거부하며 저도 같이 나가겠다고 문 앞을 굳게 지키며 강한 반발을 해왔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 집개가 여전히 풀린 채 돌아다니고 있어서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돌발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도저히 모험을 감행할 수는 없었다.
내 양손이 멀쩡한 때라면 몰라도위협받는 상황이 이번에다시벌어진다면 한 손으로 두 마리를 감당하기란 너무힘든일이고 난 또 다른 부상을 당할지도 모를일이었다. 일단 지금은 더 이상의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조금만 참자 토리야 ~
왼손만 좀 나으면 다시 다 같이 다닐 수 있어~'
달라진 건 없었다.
겉보기엔 평범하게 산책루틴을 꼬박꼬박 지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난 일상이 깨지면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가며 더 이상 맘 편하고 즐겁지만은않은불안과 긴장 속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힘겹게 마감하고 있었고그분은 여전히거리낌 없이내가 사는 동네에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개를 풀어놓는행위로 마치 동물을 사랑하는 선한 사람인양행세하면서매일같이 내가 사는 동네를무슨 목적인지 출퇴근하듯이 드나들며나의 산책을 괴롭히고 방해하고 있었다.
원래 그분은 다른 곳에 거주하고 있는 토지주로서 일이 년 전부터 들어와 오두막을 갖다 놓고 농사나 정원을 짓더니 지인의 농장 밭에 묶여있었다는 그 개를 데려와 상주시키고 묶여 있던 세월이 불쌍했다고 생각했는지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마구 풀어놓았고 때로는 개집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서 걱정스러워 같이 찾아주겠다고하면 거절하며 괜찮다고들어올 거라며 방치하고는 그대로 차를 타고 제집으로 떠나가버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남의 동네에 한밤중에 개를 풀어놓고 무책임하게 가버리면서 대체 누구? 맘대로 뭐가?괜찮다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런 방만하고 이상한 사육행태로 인해 몇 년 동안 꾸준히 산책해 온 동네주민이 피해를 입고 있음을 같이 겪어서 알고 있고더불어 간접적으로 누누이 일러줬건만아랑곳하지 않는 뻔뻔함이란 대체 무엇으로 이해를 해줘야 할까?
오만이다.
다른이의 생명과 권리를 자신의 가치만큼 존중하지 않는 권위적인 오만함이다.
그 집 앞을 지나 산책길로 가려는데 그 집잔디마당에 풀려있던 개가 으르렁대며 또 뛰쳐나온다. 그 집 사유지밖 도로까지 나와서 위협을 하는데 역시 같이흥분하는 내 개 봄이를 얼른 뒤에 숨기고
'들어가!!!! 빨리'
그 개에게 호통을 쳤다.
그 개는 움찔해서 들어가는 척하는데 문제는 견주나 지인의 한심한 태도였다.
그 개가 무서운 건지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을 못한 건지 우왕좌왕하면서 목덜미를 잡아챈다거나 몸으로 밀어 바투잡지를못하고 멀찍이 서서 발만 번갈아 허공에다 대고 한참을 휘적거리는 게 개를 통제하는 그들만의 방식이었다.
더욱더 이상한 것은 그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단 한 번도 미안하다 또는, 죄송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타인에게 본의 아닌 위해를 가했거나 실수를 했을 때 반사적으로 하는 첫 번째 말과 감정은 당연히 '미안하다'이고이것은 어린아이에게도 꼭 가르쳐주는 기본 중에 기본예절이기도 하다.
이미 두 차례나겪어서 달려드는 목줄 없는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상당한 나에겐 엄청난 공포일수밖에 없는 난감한 경우가 이후에도 그 집 앞을 지나쳐 갈 때마다 수시로 계속되었다.
개가 오랫동안 농장에 묶여서 자라와서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면 마냥 남의 동네에 대책 없이 풀어놓을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통제의 기쁨을 알 고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잘 훈육하며 키우는 게 개를 위해서 더 좋고 맞는 일이자 보호자로서의 도리이다.
자기 개는 똑똑해서 집에 알아서 잘 들어온다고 남들에게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개가 보호자 없이 돌아다니다가 누군가를 놀라게 한다거나 어디다가 용변을 볼 수도 있는 일을 자신은 못 봤으니 모른다고 책임이없다고 할 것인가?
더 큰 문제는 그 개가 누군가에게는 적대적으로 군다는 것인데 그걸 알면서도 저렇게 풀어둔다는 것은 어떠한 사고를 조장하는 암묵적인 위협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풀어놓고 싶다면 상주하지도않는 사유지 주변에서 그럴게 아니고 본인 사는 동네 주거지 근처에서 그렇게 하면 되겠다.
거기는 도심 아파트 단지라서 꺼려지고 여기는 드문드문 주택과 빌라와 산과 밭이 있는 남의 동네라서 만만하고 책임을 져야 할 일에서 상대적으로자유롭다고여겨져서 저러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미 다 큰 개를 데려와서 성향을 잘 모르고 겁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발생해도 제지할 능력이나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위급상황등 필요할 때는 최소한 자기가 키우는 개의 목덜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단번에 잡아 어찌 되었던 제압을 할 수 있어야 보호자로서의 자격이 있고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피해를 불러올지도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자가 자신의 권리는 극대화하고 타인의 권리는 침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한 채 어쩌면 개를 이용해서 사유지를 지키고 이 동네에서 토지주로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지인이 농장에 묶어놓았듯이 자신도 지킴이목적으로 데려와놓고 개를 사랑해서 입양한 것처럼 포장하며 위선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어디서 막대기하나를 구해 들고 머릿속으로는 개가 다가왔을 때 제어하는시뮬레이션을 해가며 남모르는 비장한 산책을 이어가던 새벽 어느 날...
그분 사유지 뒤쪽 공터에서 봄이만 데리고 탐색을하던 중 어두운 저쪽 도로 멀리서 무슨 불빛하나가 일렁이며 움직이고 있었다.
뭐지? 하면서 한참을 봤더니 그분이 이마에 등산용 렌턴을 붙이고 개는 풀어서 산책을 끝내고 오는 중인 모양이었다. 순간 풀려있는 개가 못내 불안했지만 설마 보호자도 같이 있는데 알아서 데리고 들어가겠지 하고 있던 중 우리를 발견한 그 개는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바로 코앞까지 와서 짖고 으르렁대었고 또다시 아찔한 현장에 내몰린 난 봄이를 숨기며 어떻게든 물고 물리는 상황을 다시는 만들지 않으려고 그 개를 보고
'가!!! 네 집으로 빨리 들어가!!!
하고 소리치며 쫒으려고 안간힘을 써댔다.
그런데 너무도 어이없고 황당한 것은 그분의 태도였다. 그 모든 순간을 다 보고 있었으면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려 달려들고 있는 자기 개를 내팽개쳐두고 멀거니보더니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사유지안 가건물 속으로 그냥 쑥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저게 사람이 맞나 싶었다.
지금 본인개의위협을 피하려고갖은 고생을 다하고 있는 나를 보고서도 멀찍이 서서 어떠한 조치도 미안한 기색도 없이 외면해 버리고 아예 자리를 떠나버리는 게 과연 사람으로서 할 짓이란 말인가???
사람이라면 목격한 순간 빨리 달려와서 자기 개를 잡아 제지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상식적인 행동이 아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