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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리래티스 Jan 04. 2025

삼체문제

삼체 -류츠신-

독서조각


“그러니까 규칙이 전혀 없는 혼란한 세계라는 겁니까?”

“그렇다네”


중국의 SF작가 류츠신이 지은 삼체는 동양최초로 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했다. 


삼체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보자면 예원제는 문화대혁명 기간에 홍위병들에게 구타당해 사망한 물리학자의 딸이다. 그녀는 노동수용소에서 일하다가 아버지 만큼 훌륭한 과학자임을 인정받아 중국의 우주 연구소에서 일하게 됐다. 그녀는 외계에서 온 메시지를 받았고, 그들이 인류에 위협에 됨을 알고서도 지구의 좌표를 그들에게 보냈다.


시간이 흘러 현대에 들어서 물리학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 발생했다. 여러 연구들이 이유를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방해되거나 무산됐고,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자살했다. 


최첨단 나노소재를 연구하는 왕먀오는 어느 날 자신의 눈에 카운트다운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을 알았고, 이 일이 과학의 경계라는 단체와 관련됐다고 여겨 단체의 일원인 선위페이를 찾아간다. 


선위페이는 그에게 나노소재 연구를 멈추면 카운트다운이 사라진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그에게 어떤 게임을 소개하는데…


위 내용은 소설 삼체의 도입부 부분이다. 오늘 살펴볼 이야기는 선위페이가 왕먀오에게 알려준 게임 이야기다.


게임은  VR 기계로 진행되고, 게임속에서 느끼는 감각은 실제와 구분이 되지 않는데 이는 현대 기술로는 구현할 수 없는 것이다.


게임속의 세계는 항세기와 난세기로 나뉜다. 항세기가 아닌 시기는 모두 난세기다. 난세기에는 사람이 살 수 없다. 난세기에 사람들은 마치 육포와 같이 자신의 몸을 탈수시키고 항세기를 기다린다. 항세기 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다. 항세기가 왔다고 여겨지면 왕은 탈수된 그들의 몸을 물에 던져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다. 하지만 만약 항세기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죽고 만다.


항세기가 언제 찾아올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이 게임의 목표는 태양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해서 항세기가 언제 찾아올지 얼마나 지속될지 맞추는 것이다.


첫번째 게임 등장인물은 주술사 복희와 점쟁이 문왕이었다. 주술사 복희는 태양은 신이고 신이 깨어 있으면 변덕이 심해 난세기와 항세기가 뒤바뀌고, 신이 잠들면 항세기가 지속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신에게 최면을 걸어 잠들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점쟁이 문왕은 64괘를 그려 항세기와 난세기의 날짜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둘의 주장은 모두 틀렸다. 태양은 뜨지 않고 세 개의 비성이 떠서 혹한이 찾아와 모두 얼어붙고 말았다.


두 번째 게임은 묵자가 등장했다. 묵자는 현학이 아닌 관측을 통해서 태양의 움직임을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계론을 신봉했고, 태양도 기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대한 태양이 떠서 모두 타 죽었다. 


세 번째 게임속에서는 갈릴레이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했다. 왕먀오는 사실 태양은 한 개가 아니고 세개라고 주장했다. 비성 역시 태양이라고 말했다. 태양이 너무 멀리 있어 비성으로 보인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갈릴레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왕먀오의 주장을 반박했다. 세개의 태양이 단 한 번도 관측된 적 없기 때문이다. 왕먀오는 세개의 태양이 관측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다. 세계의 태양이 동시에 뜨면 단 몇 초 만에 모두 불타 죽기 때문에 기록을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세개의 태양이 떠서 모두 불타 죽었다. 왕먀오의 말이 맞았다. 그렇게 레벨 2로 넘어간다.


"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태양 운행이 불규칙한 것은 우리의 세계에 태양이 세 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상호 인력 작용 아래 예측할 수 없는 삼체 운동을 합니다. 우리의 행성이 그중 한 개의 태양을 따라 안정적으 로 운행할 때가 바로 항세기입니다. 다른 한 개 또는 두 개의 태양이 일정한 거리내로 들어오면 그 인력 때 문에 행성은 기존 운행에서 벗어나 세 개 태양의 인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불안정하게 움직입니다. 이때가 난세기입니다. 그 시기가 지나면 우리의 행성은 다시 한 개의 태양에 잡혀 잠시 안정적인 궤도를 돕니다. 다시 항세기가 오는 거지요. 이건 우주의 럭비 경기입니다. 운동선수는 세 개의 태양이고 공은 바로 우리의 행성입니다!"


네 번째 게임속에서는 뉴턴과 폰 노이만이 등장한다. 폰 노이만은 인간 병사로 컴퓨터를 구현했다. 그는 그가 만든 인간 병사 컴퓨터로 태양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개의 태양이 일직선으로 나타났고 중력에 의해 모든 것이 태양으로 빨려 갔다. 


마지막 게임은 비성부동이다. 세개의 태양이 움직임 없이 멈췄다고 행성 근처로 돌진했다. 결국 행성은 태양과 세개의 태양과 충돌을 일으켜 분열됐다. 다음 비성부동이 일어난다면 행성은 태양속으로 빨려 들어가 소멸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깨달었다. 태양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음을… 




투자조각


소설 삼체에 나오는 내용은 유명한 삼체이론을 소설로 소개한 것이다. 이 내용은 파스칼의 내기라는 제목으로 한번 소개했던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2fab0ada6d0c424/32


인간은 불확실성, 즉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세상 만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기에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투자자로써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얼마나 빨리 인정하느냐 이것이 꽤 중요하다. 


나는 수험생 시절 공부를 잘했던 편은 아니지만 언어영역 만큼은 자신 있었다. 남들이 어려워하는 언어영역이 쉽게 느껴졌고, 시험 시간도 여유 있었다. 하지만 항상 일정한 점수대에서 더 올라가지 못했다. 문제를 푸는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성적이 정체된 적이 있었다.


당시 다니던 학원에서 언어영역 강사님과 문제풀이에 대해서 질의응답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었다. 저자의 의도에 관한 문제였는데 나는 답이 아닌 문제 자체에 의문이 있었다. 그때 강사님의 해결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수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문제에 대한 의문은 접어두고 답을 찾아라. 그리고 일단 좋은 성적을 얻고 난 다음 대학에 가서 좀 더 깊게 공부할 기회가 생기면 문제에 대한 탐구를 해봐라.”


나는 그때 그냥 문제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체되었던 점수대에서 벗어나 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수능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가끔은 풀리지 않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소설 삼체에서 VR 게임이 등장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삼체 행성에 사는 외계인들이 삼체 게임을 사람들에게 하도록 했던 이유는 삼체 문제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삼체 문제가 풀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구인들에게 게임속에서 삼체문제를 풀도록 했던 이유는 자신들이 살던 행성을 버리고 지구로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삼체게임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투자시장에서 벌어지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다.


삼체 게임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3개의 비성으로 보일 때 : 태양이 멀어서 비성으로 보인다. 혹한이 찾아와 모두 죽는다.

3개의 태양 : 단 몇 초 만에 모두 불타 죽는다. 

3개의 태양이 일직선으로 나열 : 중력으로 인해 모두 태양으로 빨려들어가 죽는다.

3개의 태양과 충돌 : 행성이 분열한다.

1개의 태양과 2개의 비성 : 항세기


첫번째 게임 속 주술사와 점쟁이는 예측이 아닌 예언을 하고자 했다. 놀랍게도 아직도 투자 시장에는 예언가들이 존재한다. 어떤 근거도 없이 미래를 예측한다면 그것이 예언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럼에도 많은 예언가들이 개인투자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우연히 맞기라도 한다면(어쩔수 없다. 누군가의 예언이 틀린다면 누군가의 예언은 맞는다) 그들의 인지도는 더 올라간다. 매 시대 예언가가 등장하는 이유는 누군가 예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삼체게임속 주술가도 처음 몇 번의 태양움직임을 맞췄다. 그러자 왕은 그의 말을 믿고 항세기라고 생각해 탈수된 사람들을 본래의 인간으로 돌렸고 갑자기 등장한 난세기에 모두 얼어붙어 죽고 말았다. 


예언은 우연히 몇 번 들어맞기도 한다. 문제는 그렇게 몇 번 맞춘 예언가의 말에 사람들이 지나친 확신을 갖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최근에 적중률이 높은 예언가의 말이라면 더 듣지 말아야 한다. 아니 애초에 근거 없는 예언을 들을 이유가 없다.


두번째 게임은 기계론적 사고다. 우리는 기계론적 사고에 대해서 파스칼의 내기 편에서 배웠다. 기계의 움직임을 예측하듯 주가의 움직임을 맞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주가의 움직임을 기계처럼 예측하려면 모델이 일정해야 한다. 모든 시장이 똑같고, 모든 시장의 참여자가 똑같아야 가능하다. 실행 조건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세번째 게임은 단 한 번도 관측되지 않은 것을 믿는 문제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자신의 저서 블랙스완에서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기준을 설명했다. 


1. 예측 불가능성

2. 엄청난 충격

3. 사후 합리화 가능성


발견된 백조가 모두 흰색이었을 때 사람들은 백조는 모두 흰색이라고 귀납적 추론을 했다. 이때 흰색이 아닌 단 한 마리의 백조만 나타나도 이 이론은 틀린 것으로 판명된다. 결국 검은 백조가 발견됐고 모든 백조가 흰색이라는 이론은 틀렸다. 


투자시장에서 예측 불가능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개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을 준다. 대공황, 블랙 먼데이, 닷컴 버블 붕괴, 서브프라임, 코로나 팬데믹과 같이 말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이 발생한 후에는 마치 사전에 예측이 가능했다고 합리화하며 그 징후들을 나열한다. 


안타까운 사고지만 최근 일어난 제주항공 사고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대재앙이지만 사고가 일어난 후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쏟아져 나온다. 


세번째 게임 속 갈릴레이와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번도 관측된 적 없는 세개의 태양 이론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세개의 태양이 떠오르자 인정할 시간도 없이 불타 죽었다. 만약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세개의 태양이 뜰 수밖에 없었다는 사후 합리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실제 인물이야기가 아닌 소설 속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투자자라면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라는 사고방식은 버려야겠다.


네번째 게임은 어떨까? 현대 컴퓨터를 만들었다고 불리는 폰 노이만이 등장해서 병사들을 인간 컴퓨터로 만들었다. 투자 시장에서도 컴퓨터를 이용한 계산, 그리고 프로그램 매매를 신봉하는 경향이 짙다. 컴퓨터를 이용한 프로그램 매매가 일반 개인투자자보다 유리한 점은 속도다. 가격 오차를 아주 빠르게 계산해서 캐치해내고 누구보다 빠르게 매매를 진행하는 것이 프로그램 매매의 장점이다. 하지만 그런 컴퓨터도 미래를 예측하는데 무용지물이 된다. 


마지막 게임의 핵심은 인정이다. 삼체 행성에 사는 외계인들은 수없이 문명이 파괴되고 나서 태양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방법은 오로지 떠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내가 수험생 시절 언어영역 문제에 대한 의문을 거두고 인정했을 때 점수가 올랐듯이, 투자에서도 시장에 정답이 없음을 인정하고 난 다음 수익이 더 좋았다. 


투자에 비법은 없다. 혹여 비법이 있더라도 매번 달라지는 시장에 모두 일괄 적용되는 비법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먼 옛날 우주 만물의 움직임을 모두 예측하고자 했던 데카르트, 뉴턴, 라플라스, 푸앵카레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모두 실패했다. 


왜냐면 우리는 세상 만물에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글을 쓰기 전의 나와 쓴 이후의 나는 달라졌다. 이글을 보는 누군가에게 미세하나마 영향을 줄 것이고, 이글을 쓰면서 이글을 읽게 될 사람들에게 나 또한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시로 변하는 태양은 서로에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다. 세개의 태양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참여자가 있는 투자시장에서 정답을 찾는 다는 것은 연금술과도 같다. 


그렇다고 좌절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정하면 시장이 더 쉽게 풀린다. 그 방법을 찾는 것이 투자자가 해야 할 일이다. 




삼체 -류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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