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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성조 Aug 12. 2021

생활기록부 - 칭찬이든 욕이든 기분이 나쁘그든요

네가 뭔데 나를 평가하는데!

아이들은 평가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시험 싫어하는 거야 뭐 너무 뻔한 이야기고. 어쩌다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울 때면 꼭 나오는 말이 이거다.


응 아니야~ 니가 뭔데 날 평가하는데에에에에
너나 잘하라고오오오오

 

 쯧쯧. 하지만 교사가 어떤 직업인가.

저렇게 평가하지 말라며 애들이 치고 박은 날에도,

- 0월 0일 : 000 학생이 "응 아니야~ 니가 뭔데 날 평가하는 데에에"라고 발언함.  그 말을 들은 xxx학생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함. 본 교사는 어쩌고저쩌고 싸움 수습한 내용 주절주절...

으로 시작되는 상담록을 써대며 학생들을 평가해야하는 숙명을 지닌 인간들이 아닌가.


 정기적인 수행평가, 단원평가, 학생 누가기록, 상담록, 생활기록부 작성까지 관찰과 기록과 평가는 교육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필수적인 활동이다.

 

 평가 중의 화룡점정은 생기부, 그중에서도 행동발달사항이 아닐까? 행동발달사항을 적을 때면 선생님들은 한줄평을 적어내는 영화 평론가처럼 골머리를 앓는다. 어떤 단어를 써야 이 아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말이다.


 그렇게  학교에서 반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를 하나하나 적고 있다 보면, 문득 내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는 어땠을까 궁금해지곤 했다. 사실 요즘은 마우스 클릭만 몇 번 해도 금방 학창 시절의 생활기록부를 열람할 수 있지만, 왠지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이니깐! 마우스 클릭조차도 귀찮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마음 편한 길을 택했다.


 그런데 하필 오늘따라 이게 왜 갑자기 보고 싶어 졌을까?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런 날도 있는 것이다. 날씨는 완벽한데 딱히 별 약속이 없는 무난한 주말에 느지막이 일어나 하릴없이 침대를 뒹굴다 '다른 사람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위험한 호기심에 이르는 날.


 '이거 꽤 재밌겠는데.'


 일어난 지 2시간 만에 드디어 할 것이 생긴 나는 멍한 채로 살짝 신이 났다. 그리고 씻지도 않은 채로, 작동도 잘 안 되는 낡은 노트북을 퍽퍽 쳐가며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으레 그렇듯 칭찬의 말이 가득했다. 물론, 어렸을 때처럼 칭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몇 년 간 이 일을 하다 보면 이 화려한 칭찬들 속에 꼭꼭 숨겨진 교사의 진짜 마음과, 학교에서의 평소 생활 태도를 해석하는데 도가 튼 인간이 될 수 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처음 생활기록부 작성할 때 내가 배운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학생의 긍정적인 성품 위주로 작성한다. 


 둘째, 정말 웬만해선 부정적인 말은 쓰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 진짜 최소한 10번 정도는 고민하고 쓴다.


 셋째, 그래도 혹여나 비판하는 말을 쓸 때는 해당 학생의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는 어휘를 함께 쓴다.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조심스레 집은 뒤, 눈송이 굴리듯이 돌돌돌 굴린다. 상처 받지 않게 완충재를 충분히 넣고, 예쁘게 색칠도 해가면서. 이렇게 동그랗고 예쁘게 다듬어진 단어들이 생활기록부에 마침내 적히는 것이다.  


 예쁘게 다듬어지고 어쩌고 했지만, 사실 내 칭찬이 가득한 글을 읽는 건 아주 재밌는 일이다. 한참을 신나게 읽어나가고 있는데, 5학년 생활기록부의 한 문장이 걸리적거렸다. 드디어 등장했다. 뼈가 있는 문장!

 학업성취에 대한 의욕이 강하여 모든 교과에서 우수하나 행동에 꾸밈이 없고 즐겁게 생활함.


이 문장에 주관적인 과장을 많이 보태, 조금 거칠게 해석해 보겠다.

성적 쪽으로는 딱히 흠잡을 것이 없긴 하나, 지 멋대로 행동하여 속 좀 썩이고도 정작 자기는 즐거워 보이니 주의 요망.


 정말 다행이었다. 일단 지금 내 옆에 아무도 없다.


 그리고, 나의 흑역사가 딱 한 문장으로만 남겨져 있다. 생활기록부를 보는 순간, 5학년 학교생활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목줄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던 당시의 내 모습이 연예인들의 다소 민망한 데뷔 무대처럼 동영상으로 남아있고, 그 밑에는 나를 평가하는 수백 개의 악플들이 달려 지금까지도 떠돌고 있다면... 어우. 나는 벌써 사회와의 슬픈 안녕을 고하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쑥을 캐는 자연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젠장. 쓸데없는 호기심 덕분에 괜히 기분만 애매해졌다. 하여간에 잠이나 마저 잘 것이지 판도라의 상자를 뭣하러 열어제껴가지고...


 타인의 평가를 자양분 삼아 발전하는 일은 대체 얼마나 어려운 걸까? 반성과 발전은 고사하고 의연하기도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항상 어렵고 부끄러우며 매번 숨고 싶다.


 얼마 전 읽은 양귀자의 소설  <모순>이 떠올랐다. 아무에게나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치욕이라던 그 말. 타인도 결국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며 애써 위로해보아도 평가를 받는 것이 사실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짜증부터 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또 아이러니하게도 평가를 해야 하는 사람이 돼버린 뒤로는, 나 자신이 세상 객관적인 사람이라도 되는 것 마냥 굴게 된다. 교실 안의 아이들의 심리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마치 창조주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어쩌면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매번 요동치는 점수와 등수로 매겨지고, 예의 바른 행동과 반항적인 표정으로 평가받았던 학생 때의 심정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휘발된다. 아무리 생활기록부 작성을 위한 것이라지만, 아이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습관적으로 짐작해 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는 일도 부지기수다.


 정작 나는 이미 한참은 지난 과거의 작은 평가 한 마디를 하루 온종일 곱씹으며, 이렇게 글을 한 바닥이나 적어놓고는 말이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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