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평소 오페라를 좋아하는 터라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아리아들을 자주 듣는답니다.
나름 명반들도 몇 개 가지고 있고요.
제가 즐기는 오페라들은 이탈리아와 독일에
뿌리를 두는 것들입니다.
특히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사랑해요.
.
각설하고,
어제는 우연한 기회에 러시아 오페라를 볼 기회가 생겼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Евгений Онегин).
이 글의 제목처럼
푸시킨이 작사하고,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오페라는 아니에요.
차이코프스키가 푸시킨의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오페라예요.
그나저나 차이코프스키가 오페라를 쓴 줄은 몰랐답니다.
작품의 간략한 내용은,
상남자 오네긴이 시인인 그의 친구와 함께
친구의 약혼자 집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약혼자의 여동생은 오네긴에게 사랑에 빠져 고백하지만,
어리고 서툰 숙녀의 고백을 가볍게 밀쳐내며 상처를 줍니다.
그리고는 친구의 약혼녀의 마음도 도둑질합니다.
이것을 알게 된 친구는 오네긴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그 과정에서 죽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오네긴은 이 약혼녀의 집에 다시 들르게 되고,
부자의 아내가 되어 화려해진 과거 사랑고백녀에게 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랑고백을 하지만,
이 여인은 정조를 지킬 것을 다짐하며
오네긴에게 떠나 줄 것을 간청하고 작품이 끝납니다.
푸시킨의 삶과 원작소설 그리고 본 오페라와의 연관성을 잘 설명해 주어 더 풍성해지네요. 들어보셔요.
이렇게 설레는 맘으로 미리 줄거리를 파악해 두고,
저녁 7시 극장으로 향합니다.
Die Oper - Евгений Онегин
자치가 발달한 독일은
보통 마을 단위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경제, 문화와 관련된 인프라를 구축해 둔답니다.
그래서 깊은 시골을 제외하고는 보통 마을에 극장이 있어요.
그렇게 역사와 함께 자리했기에
아예 거리 이름이 '극장길' (Theater Straße)이에요.
이 길을 따라 극장으로 향합니다.
극장길 (Theater Straße)
극장 앞에 도착하니,
7시 반 공연을 앞두고 지인들과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관람객들이 눈에 띕니다.
하이델베르크 극장 외부
극장 내부로 들어가 티켓팅을 하고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샴페인이나 와인 등
간단한 주류를 구입할 수 있는 작은 바가 위치해 있어요.
그곳을 지나 홀로 진입합니다.
토요일 저녁,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온 사람들은
이 시간만이 선사하는 여유로움과 더불어
한껏 들떠있는 느낌입니다.
작은 바와 극장 내부 홀
오페라가 상연되는 극장 내부로 들어와 앉았습니다.
중간 보다 조금 앞 왼쪽 모서리 자리,
좌석이 마음에 듭니다.
제 좌우에는 나이 지긋하신 노년의 숙녀분들께서 앉으셨어요.
`사회적 자본`이 높아 타인에 대한 신뢰가 탄탄한 이곳은
처음 보는 사이여도 자연스레 스몰토크가 오갑니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토요일 저녁 홀로 극장을 찾은 제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이 오페라는 본 적이 있는지?
이곳에 거주한 지는 얼마나 됐는지?
이곳에 살며 특별히 느끼는 것들은 무엇인지 등등.
그렇게 옆에 계신 숙녀분들과의 대화로
마음에 여유가 찾아들 즈음에 작품이 시작됐습니다.
시작 전,
사회자가 나와 청중들을 환영해 주고,
오늘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합니다.
그리고 시작...
사회자 Herr Schmidt
오늘 러시아의 오페라를 처녀관람하며,
어떤 것이 유럽의 것과 다를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몇 가지 감상평을 남겨봅니다.
첫째,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연급 남성배우들의 음역이
바리톤이 많다는 거였어요.
유럽의 오페라들은 주연급 음역으로 테너를 선호하는 듯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드럽고 낭만적인 음색과 고음역대가 주는
짙은 호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인 듯해요.
하지만 오늘의 작품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바리톤,
조연이 테너입니다.
시작 전부터 의아했는데,
오늘 작품의 무대배경과 평소 들어봤던 `러시아 가곡`을 생각해 보면,
특히 `모래시계`의 테마곡 기억하시죠?
남성성의 상징으로 바리톤의 음색을 앞세우는 것 같았습니다.
둘째, 서사와 연출이 단조롭다는 거였어요.
작품의 서사를 다양하고 흥미롭게 만드는 조연들이 많지 않았어요.
총 3막으로 구성이 된 작품이었는데,
각 막마다 주인공이 혼자서 70% 정도를 소화해 내더군요.
더구나 주인공과 주연급 배우들의 목소리가 바리톤이다 보니
귀가 다소 지루하기도 했답니다.
무엇보다 귀를 즐겁게 해주는 아리아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거.
그래서인지 제 옆 노년의 숙녀분들은 잠깐 조시기도 했다는 거.
하지만 그렇게 독백이 긴 만큼
인물의 세밀한 감정묘사를 따라가며
호흡할 수 있었던 부분은 장점이었던 거 같아요.
다만 러시아어로 공연했고,
독일어 자막을 띄우는 상황이어서
원어가 주는 특유의 어감을 감지할 수 없어 아쉬웠답니다.
다만 성악가인 배우들의 기교들과 감정의 흐름으로
떠듬떠듬 정서적 맥락을 파악했던 듯해요.
그나저나 3시간 가까운 작품을
러시아어 대본을 암기해 연기한 배우들에게
브라보와 브라바 그리고 브라비를 보냅니다.
세 번째, 독특한 연출이었어요.
1800년대 후반에 이 작품을 초연할 당시 차이코프스키는
기본 오페라와 비교할 때, 전통성이 부족해서
이 작품의 흥행을 걱정했다고 해요.
작품 중간에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있어요.
이 작품이 18세기 후반에 쓰여진 것을 감안할 때,
회상 장면에 대한 연출은 인상 깊었습니다.
요즘이야 너무도 당연한 연출이겠지만,
영화도 아닌 오페라에서 그것도 그 당시에
이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연출했다는 것은 흥미로웠습니다.
아마도 이런 요소들이
당시 차이코프스키의 기우를 잠재우고
이 작품을 흥행하게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2막이 끝나고 30분의 중간 휴식시간
이렇게 장장 3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무려 20여분 동안의 커튼콜
들어갔다 나왔다,
막이 내려왔다 올라갔다.
장난하나?ㅎ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조연으로 참여한 솔리스트가 한국분이셨는데,
정통적인 테너음색에 아주 단단하고 풍성한 성량을 갖고 계셨어요.
훌륭한 테너를 알아본 것은 비단 저뿐만은 아니더군요.
남성, 여성 주인공 보다도 더 큰 박수갈채를 커튼콜 내내 받으셨어요.
커튼콜
푸시킨의 소설을 배경으로 한 것이어서,
혹시 한국어로 상연하는 작품을 보실 기회가 있다면,
사랑에 빠진 요조숙녀의 절절한 마음과 실연의 아픔을
보다 문학적인 표현들로 감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총평은 동토의 땅 러시아
그곳에서 나고 자란 푸시킨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그들은 충만한 러시아적 정서 속에서 작품을 완성했다.
그렇게 `러시아가 러시아 했다`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작품을 보시면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실 거예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죄와 벌` 등에
흐르던 느낌과 정서가 닮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