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면,
한 주 치 식단을 구상해요.
아침은 정해져 있고,
저녁은 건강식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 몇 가지를 셑팅해 두었어요.
다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점심은
한식을 요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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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건 아니지만,
수요일쯤 되면,
반인분 혹은 일인분씩 덜어서 잘 보관해 두었던 일품요리가
냉장고에 정렬합니다.
이런 주기로 목요일 혹은 주말에는 일품들을 모두어 식사해요.
평온했던 어제 오후 오토와 함께
평일 점심,
아이들이 오후 수업이 있을 경우,
열심히 요리해서,
후다닥 준비해 주고,
집중해서 먹어야 차질이 없어요.
그렇다 보니 각 음식에 첨가한
사랑 세 스푼, 정성 두 스푼의 맛을 음미하기 어렵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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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주기 속에서
금요일이나 토요일
이 차례가 돌아올 때가 있어요.
그럼 여유롭게 앉아 여러 가지 일품요리들,
그 각자가 가진 풍미를 마주하며,
음식을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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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재료들이 하모니를 이루어 빚어낸 맛에는
박수갈채를~
부족함이 느껴지는 일품들은
나름의 수정보완을 통해
다음번 조리 시에는 맛나도록 레시피를
뇌리 속에서 조정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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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는 시간일 수도 있겠으나,
그리고 나의 지나온, 며 칠의 행적을 되짚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오늘에서만 부여할 수 있는 의미들을 담아, 나의 역사로 바꾸어 봅니다.
E. H. Carr가 했던 말처럼,
역사란 단순히 서사의 흐름 자체가 갖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에 첨가된 역사가의 주관적 관점이 담길 때,
비로소 역사가 될 테니까 말이죠.
그렇게 나의 일상에 의미를 불어넣어 생명체가 되게 합니다.
그 생명체가 어느 날, 어떤 시에 나를 일으키고 지지할 강력한 무기임을 알기에 말이죠.
프라하 모처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화실 쇼윈도에 걸려있던 작품
저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연히 던져진 존재라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던져진 존재 안에
의미가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죠.
오히려 창조주의 계획 아래 보내진 존재이며,
그렇기에 나의 매 순간이 특별한 것임을 인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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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저와 가족을 위한 한 주간의 식사 플랜을 짜는 날이네요.
오는 한 주가 또 다른 의미와 특별함으로 풍성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