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시간
아무리 꾀를 내고 전략을 짜봐도
절대적 시간을 요구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세상만사 모두가 그런 것일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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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독일어시험을(DSH) 준비할 때 그랬어요.
읽기, 문법, 작문, 듣기로 구성된 1차 시험,
1차 합격 후 구술시험.
문법이야 수월했지만,
90분 내에 A4 2장 반 분량의 학술적 기사를 읽고
모두 서술형으로 풀어내야 하는 읽기와
주제와 기술포인트에 맞게 1500자 내외로
논술문을 작성해야 하는 작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10여 분간 논평을 들은 후
마찬가지로 서술형으로 답안을 작성해야 하는 듣기 시험은,
지금도 수학능력시험, 군대생활과 더불어 꿈에 나올 만큼,
나를 질리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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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단어를 500개씩 외우고,
들리지도 않는 라디오를 듣고,
지속적으로 뭔가를 써 보아도.
암기한 단어는 망각 속으로,
라디오 소리는 꿈결로 나를 인도하고,
작성한 글의 표현들은 한국식 독일어로 이어지곤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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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미 시험에 통과한 선배들의 경험담들에는
여러 가지 극적요소들이 더해져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진 부분들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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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DSH를 합격하고 나서 알았어요.
한 민족의 얼이 담긴 한 언어의 어감을 감잡고,
그것을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그 절대적 시간을 통해 기본기가
갖춰진 후에야 비로소 전략도 통한다는 것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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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언어뿐일까요?
헤어짐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빨리 그 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탈출하여
일상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다양한 도전들을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원점.
절대적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일상으로 회귀할 수 있었음은
대부분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 같아요.
어제의 가을
어제는 모처럼 깊은 잠을 잤어요.
그리고 주어진 오늘의 일상에서
어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과
오늘 또 새로이 부과될 일들에
닿아 있음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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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려 해요.
어차피 있어야 할 절대적 시간의 자리를 인정하며,
달려와 내 옆에 자리한 가을의 공활함과 청명함.
다리 찢기를 위한 개구리 스트레칭.
그리고 오늘, 지금만이 줄 수 있는 가치들을 발견하는 것에
저의 시선과 관심을 두려 합니다.
그렇게 실존 안에 자리한 절대적 시간과 대척점에 서지 않으려 합니다.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이 아름답게 자리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