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서 석사 논문을 쓰던 시절,
부탁을 드리지 않았음에도 지도교수님께서는,
연구주제들을 몇 가지로 추려 제시하셨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그러한 노력에도,
나는 내가 선택한 연구주제를 고집했다.
이렇게 선생님께는 다소 곤란한 상황에서도
계획한 논문 목차들을 보시며,
여러 가지 옵션들을 제시하시곤 하셨었다.
.
그런데 내가 경험한 지난 9년의 `절대` 안에 그런 건 없었다.
철저하게 내 사유와 의지에 기반한 시작과 과정 그리고 끝이 있었을 뿐.
그렇게 학위 논문의 전체 개요와 대주제와 소주제들로 짜여진
프로포잘은(연구계획) 교수위원회에 제출됐고, 통과 됐다.
그래서 알았다.
철저히 나로부터 계획된 학위논문의 명제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짜여진 도구들이 학위 논문으로 인정받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
이후,
매 챕터 작성이 끝날 때마다
지도 교수님께 컴펌을 받을 때면,
꽤나 거창한 표현들로 평가되곤 했다.
그리고 평가의 마지막에는
결과적으로 사유의 확장을 돕는
관련 도서목록들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 참고 도서들은 매번,
나의 사유의 본질을 흔들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들을 했다.
.
이것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의 카오스를
질서 정연함으로 바꿔놓았고,
그렇게 나의 방향과 내용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케 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
총 8 챕터를 쓰는 동안 6 챕터까지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니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나는 표류하거나 좌초하지 않고 순항하는 것인가?
그런 의구심이 들 무렵,
7 챕터와 8 챕터라는 산은 무척이나 거대하게 우뚝 섰다.
거의 정상에 이르러서 끝이 보임에도 그곳에 다다를 수 없는
아주 답답한 느낌.
마치 용을 쓰고 오르려 하나 무척 탄성이 강한 고무막이 머리 위에 있어,
숨을 고르는 순간 원위치로 되돌아오고야 마는 뭐 그런 느낌.
.
그래서 알았다.
지난 6 챕터를 내가 매우 잘 작성했던 것임을.
절대 평가를 위해 지정된 나의 평가자는
사소한 것 하나 용납할 수 없는 분이었음을.
그렇게 그렇게,
정상에 거의 다다랐음에도
산소가 거의 없어 숨이 차,
살 수 없을 것 같던 지점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내 몸을 적응시켰고,
그래서 무척 더뎠으나,
정상에 깃발을 꽂을 수 있었다.
.
이렇게 나는 9년간의 절대 평가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학자로서 나의 역량과 근성은
객관화되어졌다.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혼자였음에도,
아이러니하게 객관화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