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엽게 여김 받고 싶어.
나의 사람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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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난 한결같이
흔들림 없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괜찮아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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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고난과 역경이 오면
자신의 사람들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잖아.
그런데 난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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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류의 말들로
내가 나의 내면과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는
기회들을 빼앗겼던 것 같아.
어쩌면 내 자리가 그런 자리이기도 했던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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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타당하든 아니든
그렇게 난,
그렇게 나의 삶의 자리에서,
그런 모습으로 서 있기를 강요당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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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오래되니까,
영혼이 아파.
힘들면 힘들다 말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냥 이런 표현만으로도 정서적 치유의 과정이
시작이 되는데.
이것 없이 참 오랜 시간을 지내오다 보니,
이런 표현 자체가 어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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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어려움에서부터 별거 아닌 상황에 이르기까지
가엽게 여김 받는 건 챙피한 게 아냐 자연스러운 거야.
인간에게 완벽이란 가당치 않은 표현이며
그래서 제한적인 존재에게 불쌍한 상황은
당연히 연출될 수 있는 일이니까.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는 거지.
그렇게 자연스레 낙심의 자리를
정돈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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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몇 해 전부터 나는
나의 사람들로부터 가엽게 여김 받고 싶나 봐.
그런데 있잖아.
내 자식들 조차 나를 불쌍히 여겨주지 않아.
불쌍히 여김 받고 싶은데 말야.
옆에 와 재잘재잘 하루의 소소함을 나누며
친구의 상황으로 인해 마음 아팠다는 딸에게
아빠는 가엽지 않냐 물었어.
그런데 아빠가 왜? 그리고 뭐가 불쌍하냐고 반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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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람들이 나를 가엾이 여겨주면
마음에 따스함이 스밀 것 같아.
나를 불쌍히 바라봐 주는
내 사람들의 진심 어린 그 위로와 사랑의 눈빛
혹은 포옹 또는 실제적인 액션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들로 불쌍히 여김 받기를 원해.
그것도 행복의 또 다른 얼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