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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Nov 06. 2022

161115-09

오늘 점심으로 카레를 먹을 수 있을까?



저기요.


벨 소리도 아니고 저기요? 그리고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라기에는 너무 가까운 소리다.


네? 누구세요?

아 안에 있었어요? 잠시 들어갈게요.


고개를 드니 경비아저씨가 박스 두 개를 들고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시뻘게진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아,, 안녕하세요.

조금 전에 지나가던 사람이구나. 박스나 좀 들어주지 그냥 가면 어떡해요.

네?

이거 택배요. 뭐기에 보기보다 무겁네.


식탁 위에 박스 두 개를 툭 내려놓았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 가스레인지 불을 꺼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택배까지 챙겨 오는 건 친절한 건가 지나친 건가. 그래도 뭐 엘리베이터도 고장 난 상황에 저걸 들고 올라오느라 매우 힘드셨을 것 같다.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은 분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11층을 아무것도 들지 않고 올라온 나도 다리가 후들거려서 일어나지 못할 지경인데 17층을 무거운 박스 두 개를 들고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저기, 물이라도 드릴게요. 잠시만요.

그래요, 물 한잔 마십시다.


여전히 17층 높이에 떠있다는 생각으로 발을 떼기가 두려웠지만 그렇다고 계속 앉아있을 수는 없었기에 두 눈 꼭 감고 발에 힘을 주어 일어나 냉장고로 갔다.


냄비만 좀 탔나 보네. 이만하길 다행이네요.

네,, 그러게요.

아니 젊은 사람이 왜 불을 켜놓고 나와요. 진짜 불이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어요.


아저씨가 하도 택배 찾아가라고 성화를 하셔서 그랬잖아요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냥 컵에 물을 따라 건네 드렸다. 아저씨는 정말 목이 타긴 했나 보다. 조금 큰 머그잔에 따른 물을 쉬지도 않고 벌컥벌컥 한 번에 들이켰다.


아 물이 참 맛있네. 보리차요?

네? 아 옥수수차요.

한 잔만 더 줘요.


두 번째 잔은 반 정도 마시고 잔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아 이제 좀 살겠네. 나 잠시만 앉았다가 가도 될까요? 다시 걸어 내려가야 되는데 좀 힘들어서.


잠시만이 얼마만을 말하는 것일까? 나도 물도 마시고 싶고 배고 고픈데. 엄마가 보낸 김치랑 지금 먹으면 딱 좋을 카레랑 빨리 먹고 싶은데. 얼마나 있을 생각이지?


네, 그러세요.


경비 아저씨가 식탁 한쪽에 앉았고 나는 여전히 냉장고와 개수대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 이사와 사는 5년 동안 누군가가 그것도 남자가 이 식탁에 앉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이 집에 왔던 사람은 이사하는 날 엄마 이후에는 택배 기사, 도시가스 검침원, 정수기 필터 교체원, 아파트 주민대표뿐이었다. 엄마 말고 다른 사람들은 엄밀히 말하면 집에 왔던 사람들이 아니라 현관 밖에서 나에게 무엇을 건네주었거나 잠시 들어와 5분 이내에 용무를 마치고 돌아갔던 사람들이다.


엘리베이터는 어떻게 됐어요?

네? 아, 모르겠어요. 저는 나오자마자 올라오느라.

전기기사가 문을 열어줬어요?

아뇨, 천장에 작은 문을 위에서 열어줘서 거기로 빠져나왔어요.

아가씨였으니 거기로 빠져나왔지, 전기기사 같은 사람이 갇혔더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네. 내가 진작부터 엘리베이터 교체해야 된다고 했는데 예산 핑계대면서 미루더니 큰 사고 날 뻔했네.

아,, 그렇군요.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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