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우히어 Apr 20. 2023

딸 학교 담임샘의 모닝콜에 눈을 떴다

13년 인생 첫(?) 지각


      

드르륵드르륵 진동 소리. 화들짝 놀라 폰을 보니 ‘00초6-9반교실’에서 전화가 오는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고 시계를 확인하니 8시 58분. 오마이갓. 우째 이런 일이. 급히 딸을 깨우는데 다시 전화가 와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받아보니 딸의 담임 선생님.    

  

“아 죄송해요, 제가 어제 알람을 안 맞추고 잤더니... 빨리 보낼게요.”

“네, 어디 아픈 건 아니죠?”

“네, 괜찮아요~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어머님”     


뭐 대충 이런 대화가 오고 갔더랬다.      


오늘 1교시에 사회 수행평가여서 아침에 학교 가서 공부해야 한다고 했는데 기본 실력으로 수행평가 봐야겠구나. 딸은 막 티는 안 냈지만 알람을 맞추지 않아 자신을 지각하게 만든 나에게 조금은 화가 난 듯했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빨리 보내기 위해 차로 데려다주면서 카스테라를 한 조각이라도 더 먹이는 동안 딸은 계속 뾰루퉁한 표정이었다.      



어려서부터 시간관념이 철저한 것은 우리 모녀의 공통점이다. 나는 6살 무렵 친구집에 가서 놀고 6시까지 집으로 오라는 엄마의 말에 6시 땡 할 때 집에 도착해 엄마를 놀래켰던 이후로 지금까지 지각이라는 것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만에 하나 지각을 할 것 같으면 아예 결석이나 불참을 해버리는 방법을 택할 정도로 내 인생에서 지각은 거의 없는 단어였다.     


딸 역시 4살 무렵, 당시 함께 살던 외할머니(나의 엄마)와 택시를 타고 내가 일하던 곳으로 와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이 없으니 조금 서두르자던 외할머니의 말을 몸소 실천하느라 택시 문이 열리자마자 그 조그만 몸을 잽싸게 안으로 쏙 집어넣어 외할머니와 택시기사를 모두 웃음 짓게 했던 이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학교나 학원에 늦은 적은 내 기억으로는 거의 없다.      



최근에도 학원 가기 전 시간이 남아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갔는데,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스스로 시간을 체크하는 걸 보며, 속으로 내 딸이 맞구나 했었다. 또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하면 꼭 늦는 애가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걸 들을 때도 저런 성향은 유전일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랬던 딸의 13년 인생에 다른 곳도 아니고 학교에 늦게 가는 사건이 생겨버린 것이다.     

 

나는 왜 어젯밤에 알람을 맞추는 것을 새까맣게 잊었을까?     


어제 오전에 줌회의가 있었다. 중간고사 이후 5월 첫째 주에 학생들을 위한 이벤트 관련 논의를 위해 예정에 없던 회의가 잡힌 것이었다. 회의는 예상을 했지만 2시간 조금 넘게 이어졌다. 결론만 말하자면 내 기준에서는 2시간 동안이나 회의할 꺼리가 아니었다.      


지금 나의 상사(센터장)는 뭐랄까 너무 사소한 것까지 팀원들의 동의를 구하고 진행하려고 하는 면이 있다. 사실 다음 주에 중간고사라 안 그래도 바쁘고 주말에도 돌아가며 자습실 운영을 위해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럴 때는 좀 세세한 부분들은 본인선에서 결정해서 진행해 주시고 굵직한 것들만 논의를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는 분인 것 같다.      


그리고 다른 팀원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제 회의 중에 아주 불편한 포인트가 있었다. 행사(일명 코칭데이)를 이틀 진행하느냐 하루만 하느냐를 놓고(센터에 매일 나오는 아이들보다는 월수금, 화목으로 나누어 나오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 설왕설래를 하던 중, “이틀을 하게 되면 나만 힘들지~”라는 멘트는 하는 것이었다. 아, 그 멘트는 좀 실수였던 것 같다.      


센터장의 역할이 있고 각 과목 선생님들의 역할이 있는 것인데, 각 과목 선생님들은 담당 학생들 수업 및 관리가 가장 우선순위의 역할이고, 센터장님은 전반적인 센터 운영 및 학생의 수업 외적인 부분에 대한 관리 및 학부모 관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 담당 선생님들은 각자 수업을 하면서 또 행사도 준비하고 진행해야 하는 건데, 거기서 마치 자기가 제일 힘들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면 어쩌자는 건가요?     


그래서일까, 그런 불편한 부분들이 비단 어제 회의에서만은 아니고 3월 초부터 조금씩 쌓였던 것 같다. 센터 운영방안을 2개월에 한 번씩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데 지난번 회의에서 그 PPT를 띄워놓고 칸에 들어갈 문구를 하나하나씩 다 동의를 구하면서 기입(그것도 자신이 타자가 느리다는 이유로 다른 팀원을 시켜)하느라 또 회의가 쓸데없이 길어졌던 날이 있었다. 아무튼 그런 시간들이 2개월여 쌓이다 보니 어제 오전에는 내 몸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오는 것이었다.               



약간의 미열과 함께 온몸이 살살 쑤시는 일명 몸살 증세. 아 이 지겨운 회의가 끝나자마자 나는 센터로 가서 수업준비하고 저녁 9시까지 저녁을 챙겨먹기는커녕 잠깐 앉을 새, 화장실 갈 새도 없이 바쁠 텐데. 안 되겠다 싶어 회의가 끝나자마자 센터로 가서 약국에 들러 약을 사고 약을 먹기 위해 김밥을 한 줄 사서 우적우적 먹고 약을 먹고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5명의 학생들에게 다양한 난이도의 수학 문제를 설명해 주고 힙합 음악을 크게 들으며 올림픽 대로를 달려 집으로 왔었다.  


집에 와서는 말 그대로 옷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바로 침대로 직행. 그 길로 거의 기절. 그래서 알람을 못 맞추었던 것이다. 잠깐 새벽 6시에 잠을 깼었다. 그런데 또 잠이 깊이 들어버려 8시 58분에 딸아이의 담임샘이 전화하기 전까지 나름 꿀잠을 더 잔 것이다.      


딸은 물론 지각을 했지만 나는 6시~9시까지의 그 단잠 덕분인지 그래도 몸상태가 다행히 더 악화되지는 않은 것 같다. 잠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만 올리고 딸이 오기 전까지 조금 더 쉬어야 다음 주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http://kko.to/YFn9OUxjdD


오늘은 눈 좀 붙이고 쉬어

굳어진 몸을 풀어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동네에 비오가 온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