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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Jul 11. 2024

사랑하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언제나 나와 함께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있어서 특히 인간관계에서 오가는 사랑은 너무 어렵다.


정말, 너무 어렵다.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와의 사랑

사랑하는 연인과의 사랑

친구나 직장동료, 이웃 간의 우정


어떤 관계에서의 사랑이던지 사람 사이에 오가는 사랑을 할 때면 지치는 순간이 왔다.

주기만 하는 것으로는, 또는 받기만 하는 것으로는 곤란한 상황이 올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함께 다가오는 서운함과 미안함. 당황스러움 또는 불쾌함.

나에게는 그것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냥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날 더 힘들게 할 뿐이었다. 



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고, 주변에 관심이 많다.

칭찬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칭찬을 하고 그 칭찬에 기뻐하는 상대를 보는 것 또한 나에겐 행복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주기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좋은 사람에서 편한 사람이 되고, 편한 사람에서 만만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어떻게든 해도 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사실 내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된 것은, 그만큼 나 또한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내가 준 사랑이 그 사람에게 잘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랑을 주는 것은 내 마음이지만, 그 사랑을 받을지 말지는 상대방의 마음이다. 또한 사람과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은행과 돈을 주고받는 것처럼 명확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이 내 사랑을 실컷 받고서, 그 사랑을 나에게 되돌려주지 않아도 아무런 탓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난 내가 사랑하는 타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대를 하며 마음껏 사랑을 준다. 이것은 내가 나의 마음을 지키는 방법이다. 



얼마나 최소한의 기대를 하고 사냐면, 나는 누군가 내 눈을 바라보며 웃는 것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이다. 나한테 상처될 언행만 안 하면 된다. 그래서 난 내가 타인에게 잘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타인을 돕고, 응원하며, 칭찬해 줄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있다는 증명이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사람을 때면 '저분은 지금 행복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웃음이 나로 인한 것이라면 '나는 행복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다른 이유라면 '나도 함께 행복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니 충분히 행복하다.



왜 겨우 그런 것으로 충분하다고 할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단한 정신승리일지도 모른다. 그저 조금이나마 마음 편히 살아가고 싶은 한 사람의 방식이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나는 실망할 때 드는 기분이 너무 싫다. 상처받을 일이 아닌데 상처받을 때도 있다. 허탈하고,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짜증 나고 눈물이 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대체 왜?'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며 마음은 엉망이 되고, 다시 평온함을 되찾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괜찮아졌다가도 다시, 또다시 울컥 혼란스러워지는 내가 싫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을 만든 것은 사실 내 탓이다. 내 마음대로 기대하고 상상하며 무엇인가를 바랐기 때문에 실망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을 싫어한다. 실망하기 싫으니 애초에 바라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기대는 마음껏 하는 편이다. 자신의 노력에 따라 스스로 얼마든 본인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실망스러울 때도 자책은 언제나 재도전의 거름이 되었다. 이쯤 되면 나는 삶의 전반에 있어 언제나 안정감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상처받고 실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함께하는 무서운 일이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마음껏 내 사랑을 주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 준다면, 그땐 그저 감사히 여기면 된다.




나는 화내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평소에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장난치며 웃어넘기거나 상대방에게 장난식으로 말하며 경고하곤 했었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의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 있는 정도에서 이야기했을 뿐이다. 화내는 그 순간도 나의 삶이기 때문에 화내고 싶지 않았고, 화내는 순간 느껴지는 분노와 두근거림, 긴장되는 공기와 내 눈치를 보는 상대방의 표정을 보기 싫기 때문에 화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는 한번 화가 나면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 나의 감정과 에너지가 불쾌한 일에 소비되는 것도 너무 아깝다.




사실 살아가며 이상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쉽게 화가 나지 않기도 한다. 조금 이상한 사람들 정도는 귀엽게 봐주며 넘어갈 수 있는 정도다. 나는 자신의 입장을 전달할지 말지의 유무를 다음의 질문으로 결정한다. '해당 사건이 앞으로의 관계에 계속 영향을 줄 것인가?'에 따라 앞으로 영향이 계속 있을 것 같다면 그 사건에 대해 상대방과 대화를 한다. 처음에는 좋은 단어를 사용하여 웃으며 돌려 말하거나, 장난치듯 경고하는데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과의 대화는 잘 해결되는 것으로 끝닌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내 말의 본질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알아들었어도 무시했다. 때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하고 난 뒤로도 무례한 행동을 계속 반복하거나 오히려 더 무례해지기도 했는데, 그때쯤 되면 나도 진심을 담아 화를 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 반평생도 살지 않았음에도 삶에 지쳐버린 지금의 나는 굵고 짧게 몇 마디하고 끝낸다. 화를 내서 내가 얻는 것도 없는데 무엇하러 화를 내나 싶기도 하다. 상대에게 잘해주었으나 나를 만만하게 여겨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무례한 사람은 인생에서 차단하면 된다. 그냥 그뿐이다. 나는 부처도 아니고, 신도 아니며, 종교인도 아니고 단지 명의 인간일 뿐이기에, 모두를 사랑할 필요가 없다. 또한, 신들도 그들배척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모두가 좋아하고 사랑할 수도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20대 초반까지의 나는 사람들을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언제나 사랑은 받고 싶은데,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람한테 상처받기 싫어서' 내가 고양이 3마리와 강아지 1마리를 키우게 된 것은 아니다. 

사람한테 상처받기 싫으면 사람을 안 만나면 된다. 

무례한 사람은 차단하고, 좋은 사람만 남겨두면 된다. 


동물을 키우는 것과 사람의 관계는 별개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해두고 싶다. 

'사람한테 상처받은 사람들이 동물들을 많이 키우더라'라는 지긋지긋한 말은 그만 듣고 싶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동물을 키우는 것이고, 세상에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나에게 있어 동물에 대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단지 '사랑'만 생각난다. 

귀엽고, 예쁘다, 따뜻하고, 말랑하고, 부드럽다. 

멋있는 순간들, 바보 같은 순간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순간들도 많고, 나를 울컥하게 만드는 순간들도 많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동물은 사랑스럽다. 

그리고 언제나, 나 자신만 진정하면 우리의 관계는 항상 평화롭고 행복하다. 


사람 간의 사랑을 생각할 때와는 다르다. 

동물에 대해 생각할 때는 복잡한 고민이나 여러 가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너는 오늘도 귀엽구나', '넌 안 씻었는데도 예쁘구나'

내 마음은 단지 평화롭다. 

쓰다듬어 달라며 다가와 애교를 부릴 때면 나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와 몸짓에서 사랑을 느낀다. 행복하다.



물론, 동물이 아플 때 동물병원에 가서 쓸 병원비를 생각한다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겠지만, 그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매한가지다. 나와 함께 살며 동거동락하는 동물은 이미 나의 가족이다. 그리고, 동물들이 쓴 병원비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며 쓴 병원비와 약값이 더 많이 들었고, 나를 먹이고 키우는데 드는 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 어디서 사람과 동물을 비교하냐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나에겐 나도 동물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외출하고 집에 돌아와서 등 나의 일상 중 동물들을 마주할 때마다 머릿속에는 예쁜 단어들이 떠오른다. '귀여워, 반가워, 잘 잤니, 사랑해, 예쁘다'. 강아지가 나를 보며 신나게 꼬리를 흔들 때나, 고양이들이 옆에 와서 골골송을 부를 때면, '나는 지금 너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넌 내가 네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노래를 부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행복해진다. 서로가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을 매일 실감하고 있다. 




내가 동물들에게 사랑을 줄 때는 바라는 것이 없다. 그냥 예뻐하고, 귀여워하면 돼서 마음이 편하다. 

사람에게 사랑을 줄 때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기대를 품게 되거나, 때로는 관계에서 오가는 손익을 계산하게 된다. '생일 선물 뭐 주지? 얼마짜리를 줘야 하지? 난 뭘 받았었지?'와 같은 고민이 대표적인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인간관계는 생각할게 많아서 피곤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서운하거나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니 어렵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재밌고 즐겁고 행복하긴 하지만, 피곤함 또한 크다. 


서로 사랑하기만 해도 충분한 연인관계에서도 머릿속이 쉬지 못한다.

평소엔 마냥 좋다가도, 가끔 다투기라도 할 때면 온갖 생각이 오간다.

'이렇게 많이 좋아해도 되는 것일까?, 상대방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너무 잘해주나?, 너무 익숙해졌나?'

'한쪽만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동물들과의 관계에서 그런 것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동물들의 행동과 반응은 본능적이고 솔직하다. 

동물은 말을 못 해서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도 않고, 나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지도 못한다.  

쉬고 싶으면 쉬고, 나랑 놀고 싶으면 옆으로 다가와 놀자는 몸짓을 한다.  

좋아하면 그냥 좋아하고, 예쁘면 예뻐하면 된다.  


내가 어떻게 하던지 동물들은 항상 나를 사랑하며, 내 곁에 머무를 것이다. 

속임 없이, 그저 내 곁에서 함께 행복을 느끼는 동물들을 보며 나는 안정감을 느낀다. 

지친 삶에서 여유를 찾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다시 회복한다. 


보기만 해도 예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

내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주는 존재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

그 존재들이 언제나 내 곁에서 날 사랑해 준다는 것. 

정말 멋지고 행복한 일이다. 


난 몸이 편한 것보다는 마음이 편한 것이 더 좋고, 

동물들과 함께하며 매일 행복을 느낀다. 

그럼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동물이 너무 많지 않니?'라는 걱정을 앞세운 편견 섞인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이미 나의 가족으로 여러 해를 함께 살아가는 중인데, 누군가 갑자기 '가족이 너무 많지 않니?'라는 말을 한다면 나로선 할 말이 없다. 


'동물들은 동물일 뿐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곁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사람들을 등지고 동물들만 키우며 사는 것도 아닐뿐더러,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처럼, 동물들 또한 사람이 할 수 없는 동물들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은 해 준다. 


내가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에도, 새벽 3시에 일어나 저녁 9시에 잠드는 나의 생활패턴에 맞춰 함께 생활해 준 것은 고양이들이었고, 우울증이 심했을 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도 동물들이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밥조차 차려 먹지를 못하는 동물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나는 움직여야만 했다. 우울증 환자에게 일상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눈을 뜰 때마다 내 곁에서 나를 기다리는 고양이들을 보며 억지로나마 움직였었던 그 순간들을 생각하면 고양이들을 살리려고 내가 숨 쉬고 있던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물들을 키우기 때문에, 사료값, 모래값, 병원비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어야 하고, 강아지가 없는 사람도 산책은 매일 다니고, 동물들을 돌보는데 드는 시간과 노동력이 들어 나의 휴식시간이 줄어든다고 하여도, 동물들과 함께하는 나의 여가시간의 질은 훨씬 높아졌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 

동물들이 많아도 행복하다. 



그러니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는 고양이 3마리와 강아지 1마리를 키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에게 '행복하겠다'라고 말해주면 고마울 것 같다. 다수의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만큼, 동물을 키우는 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동물들 때문이라면, 나를 걱정하지 않아 주어도 괜찮다. 나는 동물들로 인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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