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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Jun 06. 2019

5월, 큰 세상을 여행하고 내 인생이 달라질까

2019년 5월의 월말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5월에 읽은 책과 잡지

• 잡지 <톱클래스> 2019년 4월호

- 연예인 인터뷰부터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브랜드 전문가, 청년 농부 등 다양한 직업군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넓은 의미의 '문화' 전반을 알차게 다뤘다. 이번 호 스페셜 이슈로 '뉴트로'를 다루며 익선동을 취재했는데, 맨 마지막 장 편집장의 글에서 핫플레이스가 된 익선동의 명과 암을 짚어준 점이 인상 깊었다. 막무가내로 트렌드만 좇는 방향은 아닌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이 잡지 왜 이제 알았지.


• 책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뉴욕 여행 준비하며 읽은

• 책 <뉴욕규림일기> - 김규림

- "진짜 뉴욕의 차별점은 뉴요커들이라 생각해. 뉴요커들이 진짜 멋있거든. (중략) 어쨌든 뭔가 하나쯤은 검증이 되는 사람이란 거지."

- "이곳에서는 예술가가 되지 않는 게 더 힘들 것 같다"

• 책 <뉴욕에게 묻다> - 최이안

• 책 <다녀왔습니다 뉴욕 독립서점> - 안유정

• 책 <프렌즈 뉴욕> - 제이민, 이주은


5월에 즐겨들은 음악

• 챈슬러 'Angel' (feat.태연)

-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좋아서, 이번 달 내내 나의 자장가가 되어주고 있는 노래. 챈슬러의 감미로운 음색 사이로 훅 치고 들어오는 태연의 저음에 심장이 쿵한다. "내게 돌아와요 그대의 자리로 오늘은 잠들 수 있게" 킬링파트.


• 오마이걸 정규앨범 <The Fifth Season>

- 걸그룹 노래를 듣다 보면 어쩌면 지금의 나는 잊고 사는, 소녀의 예쁜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듯하다. 오마이걸은 그중에서도 가장 아기자기한 감성을 가진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이들만의 몽환적인 신비로움은 가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번 앨범 9곡 중 무려 6곡 작사에 참여한 서지음 작사가는 대체 어떻게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꾸는 꿈" 같은 가사를 쓰는 걸까. 멤버들 대부분이 노래를 잘하는 편이라 표현력도 참 좋다. 서지음 작사가와 오마이걸 조합은 믿고 듣는 환상의 찰떡. 타이틀곡 외 추천곡은 '소나기', 'Vogue'.


5월에 즐긴 문화생활

• 공연 페스티벌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9'

- 사실 데이식스 보러 간 거였는데 시원한 여름밤 날씨와 laid-back한 분위기 덕에 이 날의 '뷰민라' 자체에 대한 여운이 오래갔다. 헤드라이너 윤하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윤하라는 가수를 특별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듣다 보니 다 내가 듣고 자라온 노래들이었고 다 따라 부르고 있었다. 특히 '오늘 서울은 하루 종일 맑음'은 내 18살 시절의 OST 같은 존재였는데, 거의 10년 동안 잊고 살던 노래를 오랜만에 듣고 문득 그 시절이 떠올라 뭉클했다. 역시 음악은 잠든 추억을 불러 깨우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다.


뉴욕에서 본,

• 뮤지컬 <Wicked>

- 이래서 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 하는구나. 가창력, 연기력, 연출, 세트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이 완벽한, 프로 중의 프로들이 모여 만든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을 본 걸 실감했다. 공연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본 게 참으로 오랜만이다. 특히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을 노래한, 가장 인상 깊었던 넘버 'For Good'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 체험형 연극 <Sleep No More>

- 가면 쓰고 배우들 따라 6층짜리 건물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보는 연극. 무섭고 잔인한 거 절대 못 보는 쫄보는 기절 직전에 트라우마 얻고 악몽까지 꿨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직접 경험해보길 잘했다 싶은 '미친 기획'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들, 영원히 모를 것들, 이런 문화충격을 받으러 뉴욕에 간 거다.


• 전시 @ MoMA

- 고흐 <별이 빛나는 밤>, 모네 <수련>,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등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지만 유명한 작품 앞에는 인파가 몰리는 법이기에 제대로 감상하기는 힘들다. '네 맘에 드는 작품 하나쯤은 있겠지' 수준의 컬렉션을 자랑하기에, 마음 비우고 보다가 우연히 꽂히는 작품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Josh Kline의 <Skittles>라는 냉장고 모양의 작품과  <The Value of Good Design> 전시가 인상 깊었다.


비행기에서 본,

• 영화 <A Star Is Born>

- 아티스트들은 왜 이렇게 아파야 할까. 끊임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생긴 고뇌와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사랑도 역부족인가 보다. 음악영화답게 듣는 재미가 있었다. 레이디가가 노래 잘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생긴 거 처음 알았고, 이렇게 연기 잘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 영화 <내 안의 그놈>

- 이거 보고 펑펑 울다니, 나도 참 노답인 것 같아서 현타 왔다. 처음으로 진영 멋있다고 생각해서 약간 입덕할 뻔.


• 영화 <Second Act>

- 말도 안 되는 얘기에 억지 감동 코드를 끼얹었지만, 뉴욕의 주요 명소들이 배경으로 등장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타임 킬링용으로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책 속의 지혜와 삶의 지혜가 같은 세상을 소망한다"는 말은 울림이 있었다.


5월에 즐겨본 콘텐츠

• Mnet <프로듀스X101>

- 4년 차 국민 프로듀서로서 이번 시즌도 당연히 챙겨볼 수밖에. '프듀' 이후로 우후죽순 생겨난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다 성공을 거두질 못한 걸 보면, 확실히 '프듀' 특유의 msg 팍팍 친 편집과 연습생들의 숨은 매력을 조명해주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내 픽은 남도현&조승연. 둘이 손 잡고 절대 데뷔해!


해그린달, 온도, 오눅 등 일상 유튜버

-  남의 일상을 왜 보나 싶었는데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조용히 집에서 혼자 요리해 먹고, 살림하고, 취미 활동하는 유튜버가 취향에 맞는다. 온도님 영상은 나의 자취 로망, 오눅님 영상은 해외에서 직장 다니며 살고 싶은 로망을 대리만족시켜준다. 보면서 나도 혼자 살면 저렇게 알차게 잘 살 텐데 생각해 본다. 반면에 주부 유튜버 해그린달님 영상은 짧은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영상미로 엄마 또는 아내로서 느낄 수 있는 사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싱글라이프든 주부라이프든, 어쨌든 지금의 나는 알 수도, 할 수도 없는 것이기에 화면 속으로나마 엿본다.


5월에 잘한 소비

• 뉴욕에서 득템한 모든 것

- 빈티지랑 예쁜 쓰레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뉴욕, 특히 브루클린은 너무나 위험한 동네다. 브루클린 플리, 아티스트&플리, MoMA 기념품샵, 그리고 각종 빈티지샵과 서점에서 사냥하듯 매의 눈으로 내 취향의 사물들을 골라 쓸어 담아왔다. 핀뱃지, 포스터, 엽서, 카메라, 스티커, 컵, 팔찌 등.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진다.


• LASH HOPE II MG20 선글라스

- 출발 전 면세점에서 질렀다. 실내에서는 옐로우 틴트 렌즈라 거의 도수 없는 안경처럼 쓸 수 있고, 햇볕 아래선 그린 섞인 블랙으로 변색되어 자외선 차단도 잘 되고 생눈이 드러나는 부담도 없다. 무엇보다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나는 생각해서..! 아주 마음에 든다. 올여름엔 이것만 쓸 듯.


5월에 탐험해본 동네

• 방배 - 연남 - 오금, 그리고 8박 9일 뉴욕 여행


5월에 마신 카페

and '뉴욕에서 마신 n개의 카페' coming soon


5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 내가 만든 골뱅이 파스타

-  유튜브 보다가 나도 요리하고 싶어 져서 다음 날 오전 반반차를 내고, 여유롭게 브런치를 만들었다. 집에서 혼자 종종 해 먹는 나만의 레시피 '골뱅이 파스타'. 올리브유에 다진 마늘과 각종 야채를 넣고 볶다가, 골뱅이 작은 캔 하나와 약간의 국물을 넣는다. 삶아놓은 면을 넣고 허브맛 솔트로 간을 맞추고, 완성되면 신선한 채소를 얹어 데코 해준다. 내가 했지만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은 맛이어서 혼자 감동 먹고 인스타에 요리 태그를 하나 팠다. #jc__kitchen 


• 짝태&노가리의 즉석 떡볶이

 - 요즘 판교인들 사이에서 핫한 점심 메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센스 있는 엄마가 해주는 떡볶이 맛. 전반적으로 건강한 맛인 데다 야채도 많이 들어있는데, 신기하게 딱 알맞게 달고 짜고 맵다. 판교에서 제일 맛있는 떡볶이로 임명합니다.


• Tomijazz의 명란 파스타와 오므라이스

 - 뉴욕까지 가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던 게 명란 파스타와 오므라이스라니. 1) 역시 아는 맛이 무섭다. 2) 여행 중에는 음식 자체의 객관적인 맛보다는 누구와 어디서 뭘 하며 먹었는지, 당시 상황과 분위기로 맛을 기억한다.


5월에 아쉬웠던 일

독서 모임 5~8월 시즌을 시작했는데 글쎄, 아직 잘 모르겠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어울린다는 게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이었구나라는 걸 새삼 오랜만에 느꼈다. 하필 첫 책이 두껍고 잔인한 소설이었는데, 픽션을 못 읽는 병에 걸린 사람이라 책 얘기도 힘들었다. 왜 내 돈 내고 굳이 이런 고민(?)을 하나 싶었지만 아직 환불하지는 않았다. 우선 부딪혀보자. 


5월에 잘한 일

더 바랄 게 없는 완벽한 여행이었다. 좋은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예쁜 거 사고, 뭐 그 정도만 해도 휴가를 잘 보냈다고 할 만한데. 이번 뉴욕 여행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만족감을 안겨줬다.


편한 틀 안에 갇혀 몇 년째 제자리에 머무는 것 같아 답답했다. 그래서 큰 세상을 보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뉴욕만 한 곳이 없었다. 최고가 되기 위한 욕망, 치열한 생활력과 도전의식을 갖고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도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세상에 이렇게 할 일이 많구나.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확실한 자극을 받았다. 직장인이 되고부터 잊고 살아온 꿈을 다시 한번 꿔보는 계기도 되었고.


삶이 메말랐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나름 틈틈이 문화생활을 챙기려 노력해봐도 해소되지 않는 이 갈증. 제대로 한번 푹 적시고 오고 싶었다. 문화 끝판왕의 도시 역시 뉴욕이었다. 일주일 남짓 되는 기간에 이렇게 많은 전시와 공연을 본 적이 또 있었나. 세계 최고 수준의 뮤지컬, 연극, 미술을 감상하고 왔다. 뿐만 아니라, 작은 재즈바의 공연, 지하철 버스커, 거리의 광고판, 다리 위에서 발견한 낙서 등 예상치 못한 순간에 수준급의 예술을 만나기도 했다. 일상생활 곳곳에서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환경과 누구든 자기 얘기를 하고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부럽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혼자 하는 여행이 진리라고 믿어왔는데, 이 여행을 함께하는 동행이 있음에 감사했다. 혼자였으면 절대 시도해보지도 않았을 것들을 경험하고, 순간순간의 생각과 감상을 나눌 수 있었기에 이번 여행이 더욱 풍족해졌다.


답답하고 메마르고 외롭다면, 젊을 때 한 번쯤은 뉴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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