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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Oct 29. 2020

내 인생 살기와 행복하기 그 어디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헤르만 헤세>



행복할 자격


우리는 얼마나 살 수 있을까? 100세 시대라고 말들은 하지만 요즘같이 전염병이 만연하다면 100세까지 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살아도 문제다. 행복함을 누리고 만끽하며 살만큼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렇다면, 결국 세상을 떠나기 전에 후회 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아프고 삶과 죽음의 강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평가하고 깨닫는다. 


우리는 죽기 직전에 지난날을 회상하며 “행복했었지….”가 아니라, 오늘 하루가 행복한 날이 되고 싶은 것이다. 결국 “또 행복을 이야기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그렇다면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상위의 것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내가 꿈을 이루려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나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함이고, 좋은 관계를 원하는 것도 결국은 행복을 위함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조금이라도 빨리 행복해지고 그 행복을 죽기 전까지 유지하고 싶을 것이다. 한정된 시간이다 보니 마음은 급해지고 성취감은 빨리 느끼고 싶은 게 인간이다. 그렇다 보니,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그 안에서 계획적으로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그 순간순간의 성취감을 맛보라는 얘기들이 들린다.


우리는 지금까지 충분히 ‘성취 주의자’였다. 무언가를 달성하고 또 그다음을 향해 가는. 그런데 인간의 본질상 성취의 끝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욕망의 끝이 없기 때문에 절대로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학교, 직장, 능력(자격), 만남, 관계 등에 대한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달성하고 늘 행복했는지 돌이켜보자. 아, 물론 그 순간은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순간순간의 좋음이 지금까지 이어졌는지를 돌이켜 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떠올려보면 욕망 앞에서 행복은 늘 패배자다. 뒷전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의 행복이 아닌 실질적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일 적인 부분만 놓고 봤을 때, 스스로 선택한 일에서 가치와 의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그 일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하는 은행일에서 가치와 의미, 즐거움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에 퇴사한 것이다. 물론 퇴사를 해서 자신의 일을 한다고 항상 즐겁고, 의미가 있고, 잘 풀리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 힘들고 어려워도 내가 할 의지가 있고, 열정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밤을 새우며 힘이 들어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가치와 의미, 즐거움이 있는 그 일, 그 상황과 만나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지속성 있는 실질적 행복의 길로 안내할 것이다.




정녕 직장에서 회사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동반한 가치가 부여된 행복을 만날 수는 없는 것일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직장이 노는 곳이야? 거기서 그냥 일하는 곳이지.”라고.

그렇다면 그자는 행복하지는 않은 것이다. 적어도 회사에서는. 


그런데 내 인생, 내 시간을 쓰고, 게다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일을 통해 소비하는 만큼, 일을 하는 행위 자체가 행복해야 하고, 그러한 행복을 추구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면서도 그 속에서 의미와 즐거움 또한 얻을 수 있고 얻을 자격이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만일 누군가 월급 받는 것 외에 회사 내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면,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도전을 주고자 한다. 물론, 그 도전 앞에서 두려움이 엄습할 것이다. 그래서 자기 성찰이 필요하고, 끝내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찐’ 행복은 가까이 있다.


행복을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행동들을 얘기해보자.

「매일 소소한 감사 내용을 3가지씩 메모하기」

너무 많이 들어왔을 테니 나는 다른 것을 추천해보겠다.


『매일 최소 한 사람 이상을 칭찬 또는 격려하기』

관계 관리도 되고, 칭찬과 격려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말로 직접 할 수도 있고, 문자를 보내 볼 수도 있겠다. 정말 소소한 행동이다.

퇴사 이후 나는 출근이나 어떤 커뮤니티에 나갈 일이 없어서 저 미션을 하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집에서 아내에게 하기도 하고(자주 할수록 좋겠…), 미용실 가면 머리 해주시는 실장님에게 하기도 하고, 어디 콜센터와 통화할 때도 통화 시작할 때 수고 많으시다고 또는 고생 많으시다고 인사말을 먼저 하기도 한다. 톡이나 문자 등을 통해 지인과 얘기할 때도 하고 있다. 

사소하지만 힘이 있을 수 있는 긍정의 행동이기에 추천해본다.



한 초등학교 시험문제에 ‘사촌이 땅을 사면 ____________.’ 라는 속담의 빈칸을 채우라는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정답을 안다. 하지만, 한 초등학생이 적어낸 답안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보러 간다.’라고 적혀 있었다.


아…. 난 처음에 그 생각을 못했었다. 정말 못했었다. 나에겐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답안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내 안에서 느끼고 있을 상대의 긍정적 부분에 대해서 더 이상 마음속에 묻어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상대의 부정적인 것은 드러내고 집어 내지만, 작은 긍정의 사건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여기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내 안에서 행복의 기운이 돌고 그것이 밖으로 나올 때 내가 행복해지고 있음을 더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과 비교한 행복감이 아닌 나 자체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대적 행복이 아닌 절대적 행복 말이다.


퇴사를 하면서 나는 분명 변하고 있다. 이전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고 있다. 내 인생을 살기로 하니 ‘나 자체’ 로서의 행복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독자 여러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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