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이 Oct 27. 2020

내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을 사는 법

당신의 삶은 한정적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당신의 시간을 낭비하지는 말아라.
<스티브 잡스>



내 인생은 안녕하신가요?


누구나 나 자신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남의 삶을 산다는 것을 모른 채 세월을 보내고 있다. 오히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 내 인생이지 누구 인생이냐고 묻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음의 항목을 통해 스스로 한번 체크해보자.


□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거기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하고, 고생한 성과에 대한 보상이 타인이 아닌 나에게 주어지길 원한다.


□ 일을 할 때나, 가정에서나 내가 펼치고자 하는 꿈과 비전, 그리고 의견이나 생각 (직업 및 회사 선택이나 배우자 선택 등 포함) 등에 대해 내가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결과를 책임을 질 수 있으며, 앞으로 내 삶에 대해 타인이 ‘좌지우지’하려는 것을 더 이상 묵인(默認) 하지 않을 것이다.


□ 휴식을 내가 원할 때 취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나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일에 우선인 삶을 살아가고 싶다.


만약, 체크할 것이 없다면, 내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살이’를 계속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 있다.

반면, 이 세 가지 항목에 하나라도 체크가 된다면,

적어도 남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을 살고 싶은 의지는 있다는 것이다.

세 항목 모두에 체크가 된다면, 그건 ‘내 인생’을 살고 싶은 강렬한 의지를 가진 것이다.


나는 저 세 가지 항목에 체크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가만히 있거나 적극적으로 내 인생을 취하고자 하지 않으면 남의 인생을 계속 살게 된다. 남의 인생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하고, 퇴사를 준비하며 생각이 바뀌고 나서야 저 항목에 진심을 담아 체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왜 몰랐을까?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사실 우리는 내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살아오는 과정을 보자. 초등, 중등,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진학, 졸업 후 취업 또는 고교 졸업 후 직업 전선으로 바로 뛰어든다. 동일한 틀 안에서 생각의 확장은 하기 힘든 주입식 교육을 통해 교육을 받고, 대학이란 관문을 통과해야만 고퀄리티 인력으로 인정받도록 사회적으로 시스템화 되어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보면, 그 어느 단계에서도 창의적이고 새로운 생각의 장을 열 수 있는 기간 또는 환경은 주어진 적이 없다. 생각할 시간조차 없이 ‘바쁘다 바빠’ 초•중•고교 시절을 보냈고, 진정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고 내 인생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이나 여지를 남기지 않고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게 된다. 내가 무엇을 어찌할지를 모르니 보호자에게 내 삶을 위임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가야 할 대학교, 학과, (남자는) 언제 군대를 갈지, 어떤 이성친구를 사귀어야 할지, 취업은 어디로 해야 할지, 결혼은 누구와 언제 해야 할지 등등 무수히 많은 부분을 내 인생이 아닌 부모님이 원하는, 부모님의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정작 본인들은 위임하지 않았다고 하나, 암묵적 위임장을 쓴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우린 부모님의 요구대로, 사회가 바라는 인재상대로 맞게 살고자 최선을 다했건만, 왜 아까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허탈하고, 나 자신이 내가 아닌 것만 같고, 맞지 않 옷을 계속 입는 것 같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일까? 


부모님께 의존적인 삶을 살다 보니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에 대한 타성에 젖은 탓인지, 혹은 어렵게 취업을 하고 난 뒤 회사에 의존하면서 때 되면 받는 급여에 대한 타성에 젖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인지 아닌지 도 모른 채 그저 돈을 벌면서 부모님이 원하시는 바를 이뤄드렸다고 생각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차피 나가도 고생이고, 생각하기 힘든 삶인 탓에 그냥 있게 되는….


자, ‘이건 아닌데….’라는 마음이 생기고 있다면, 이제부터 라도 내가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부터라도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나를 잡고자 하는 무리들이 쫓아온다. 이제는 막다른 절벽 끝. 두렵다. 게다가 절벽 아래 끝이 보이지가 않는다.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보일 듯 말 듯. 답답하기만 하다. 뒤에서는 바짝 쫓아왔다. 나는 뛰어내리거나, 잡혀서 다시 저들의 노예가 되어 살아야 한다.


선택해야 한다. 내가 저들을 피해 벗어나려면 뛰어내려야만 하는데 뛸 용기가 사실 없다. 결국 싫으면서도 붙잡혀 사는 길을 택한다. 어찌 될지 모르는 건 두려우니까….


사실 뛰어내렸으면 1m 아래에 땅이 이어져 있었다…. 절벽으로 보였던 그 안개 속은 1m 높이였다는 말이다. 그 땅은 잠시 내리막길이 이어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새로운 길을 통해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헉!!!  다행히 꿈이었다.


사실 이와 비슷한 류의 이야기들이 몇몇 있다. 퇴사 전 자유에 대한 나의 갈급함을 더해 나만의 내용으로 조금 바꿔본 것이다. 여기서 ‘무리들’은 ‘남의 인생’이다.

나는 남의 인생을 더는 살고 싶지 않아서 용기를 내어 죽을 각오로 뛰어내린 것이다. 실제로 뛰어내려보니 1m 정도이다. 물론 아직 더 높은 곳을 오를 수 있는 땅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나는 살아있다.


웃지도, 삶을 즐기지도 않는 어떤 남자가 있었다. 그는 모험도, 어떤 새로운 시도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의 삶이 끝났을 때 그는 보험금 지불을 거부당했다. 보험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살았던 적이 없기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도 없다.” <작자 미상>

- 버크 헤지스, 『1루에 발을 붙이고는 2루로 도루할 수 없다.』(2017) 중에서


퇴사 후 잘 될까? 지금 받는 급여보다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을까? 더 만족스러운 나만의 일을 할 수 있을까? 더 행복할 수 있을까?

결과는 시도해봐야 아는 것이다.

주위에 가까운 많은 사람들이 그 시도조차 못하게 붙잡는다.


우연히 다가올 행운의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지 말고,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내 인생을 살지 말지는 내 선택에 달려있다.

우리 인생은 짧다. 이제는 남은 시간 동안 용기를 내서 우리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자.





내가 직장에서의 삶을 통해 나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내가 보내는 시간들이 아깝지가 않고 희망과 열정이 샘솟았다면 나는 퇴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지금의 일, 그리고 그 일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직장 또는 사업장에서의 삶을 통해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나처럼 직장을 통해 자아성취를 해보고자 호기롭게 취업하여 일단 꿈을 꿔본 사람, 그 안에서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회사 생활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고 계속 느껴지는 사람, 직장 생활을 통해서는 자유 속에서 이루고 싶은 나의 꿈과 비전, 내 안에서 꿈틀대는 자아실현을 도무지 이룰 수가 없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전하고 싶다.

이전 09화 직장에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