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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Oct 24. 2020

나의 퇴사 트리거 세 가지

소원이기도 한...

"You should see these places. I mean there’s a whole world outside of books and maps.

영화 <알라딘>(1992),  알라딘이 자스민 공주에게 했던 말




나의 퇴사 트리거(trigger)이자 소원 세 가지

 

첫 번째로 나는 내가 쏟은 시간, 열정, 노력, 에너지에 대한 보상이 오롯이 나에게 주어지고, 그에 대한 책임 또한 기꺼이 나에게 주어지기를 원한다.


한 임원이 다른 계열사로 영전(榮轉)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소속 부서의 직원들과 인사를 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면서 그때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여러분들 덕분에 제가 집에 가지 않고, 이렇게 계속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씁쓸했다. 내가 쓴 보고서는 숨이 곧 멎을 것 같았던 그의 조직 생활의 생명을 연장시킨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준 것이고, 그는 CEO에게 광(光)을 판 것이다. 아, 물론 나 외에도 많은 부서원들의 보고서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당연한 거라고 하자. 직급의 차이도 있고, 보고 단계라는 게 있는데 뭐….


그런데 나는 그게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이렇다. 물론, 직원이 광을 팔게 되어 실제로 수혜를 받는 경우가 있다. 정말 승진을 시켜야 하는데 마땅한 구실이 없는 경우, 불가피하게 이름을 판 뒤에 승진 고과에 결정적인 점수를 얻게 하고 승진을 시킨다. 현실이 그렇다 보니 본인이 승진 때가 아니면 사실상 성과를 내기가 쉽지가 않다. 일을 잘 안 한다. 그렇게 되면 윗선에서는 나머지 직원들에게 업무 결과들이 누적된다는 말을 하면서 일을 하도록 강제한다. 진짜로 결과물들을 누적시킬지는 모르겠지만, 수혜 받을 대상(일반 직원이든, 중간 관리자든, 심지어 임원이든 간에)이 아니면 사실상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한 보상은 내게 오지 않는다.


또한, 하나의 산출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은 사실상 무시된다.

내가 있던 곳은 정보의 외부 유출 등을 이유로 인터넷 검색을 차단했었다. 인터넷이 차단된 상태에서 보고서의 내용은 밖의 세상, 나아가 글로벌한 세계의 내용을 첨부해주기를 원했다. 시쳇말로 ‘웃픈’ 얘기지만, 보고서를 쓰기 위해 태평양 같은 넓은 모니터 화면을 내 앞에 둔 채, 내 머리는 고개를 거의 파묻다시피 하며 책상 위 작은 휴대폰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런저런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만든 보고서를 퇴고하고 나면, 팀장이 자기 색깔에 안 맞으니 다시 되돌려 보내고, 난 또 고민하고, 퇴고하기를 수 차례 반복해서 만들어낸 그 결과물에 대한 과정은? 그렇다. 과정은 중요치 않게 된다. 결국엔 ‘결과물을 누가 가졌느냐.’다. 물론, 세상일이라는 게 거의 그럴 것이다.


업무의 책임 소재는 또 어떤가. 한 예로 기업 대출 심사과정에서 전결권이 윗선 본인에게 있었음에도 업체 부실 등이 발생하면 대출을 처음 핸들링하는 아래 직원선에서 주로 징계를 받는 것을 보았다. 권한은 가졌으면서 책임은 안 지고, 좋은 결과물은 가져가고. 이런 광경을 언제까지 봐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었다.


그럼 진작 나가지 그랬냐고 누가 묻는다면, “회사 내에선 이렇게 지내는 게 어쩔 수 없고, 당연한 것으로 그렇게 나도 세습되었기 때문에 나간다는 생각은 솔직히 못했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부끄럽기도 하고, 내 자신이 안타깝다. 더 일찍 나갔어야 했는데...



두 번째로 내 생각과 행동, 시간에 대한 자유함을 가진, 즉 내 인생을 살고 싶다.

 

먼저 내 회사생활 최악의 에피소드를 하나 말하고자 한다. 당시는 ‘워라밸’이 없어서 무제한 야근 시절이었다. 내가 합류한 팀은 보통 저녁 8~9시까지 눈치를 보고 아무도 퇴근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 9시가 지나서 업무가 마무리가 될 때쯤이면 팀장부터 다들 집엘 가야 하는데 안 간다. 그것은 부장과의 술자리를 위해, 혹시 모를 호출에 대비해 부장 직속 기획팀원들은 대기상태로 있는 것이었다. 이미 부장은 자신의 저녁 약속을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다. 잠시 후, 팀장에게 전화가 온다. 그러면 짐을 챙겨서 호프집으로 향한다. 9시 넘어서 호출을 받고 나가서 5~6명이 부장과 맥주, 소주 등을 마신다. 그곳에서는 부장 본인만의 입담이 시작된다.


말 많은 상사에 대한 기억은 늘 안 좋다. 나는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 갈수록 입을 다무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다같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부하 직원들 간에 서로 얘기도 하고 그렇게 지내야 하는데 아직도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상사들이 많다.


혹시 왜 회식 때는 돼지갈비가 아닌 삼겹살을 주로 먹는지 그 이유를 아는가? 아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이유는 돼지갈비가 양념으로 인해 금방 타기 때문에 삼겹살을 선호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회식에 참석한 직원들이 누군가를 향해 주목한 상태로 경청을 할 일이 많은데, 돼지갈비를 자꾸 뒤집어 주는 행동으로 시선을 분산시키는 게 보기에 안 좋기 때문이다(억지 같지만 실제로 미들급 관리자들은 그런 식으로 말들을 하고, 내가 봐도 그래 보였다.). 안타깝지 않은가. 얼마나 말이 많으면 그러겠는가.


아까 호프집에서 말 많은 부장 이야기를 이어서 하자면,

그는 불러놓고선 자기에게 잘 보이라는 것(고과권자 이니깐)과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내 그 호프집에서는 거짓 웃음에 아부성 발언, 그와 더불어 흥겨운 자화자찬의 향연이 펼쳐진다. 거짓말 안 보태고 일주일에 4일 정도 이렇게 밤 시간을 보냈다. 내가 이 팀에서 있었던 게 6개월 정도니…(그 후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서 다른 팀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 그런데도 팀장부터 그 아래 누구도 이건 아니다 라고 말을 안 했다. 아니 못했을 것이다. 마치 그 부장에게 인생을 건 것 같았다. 정말이지 너무나 보기 안쓰러웠다.


이 팀에 들어간 지 한 달쯤 되었을까 내가 정말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8시쯤 퇴근을 했는데 부장은 다음날 나를 불렀다. “어젯밤에 맥주집에서 안 보이더라.”라는 말 한마디를 했다. 그다음부터는 약속을 잡지 않았다. 나는 당시에 미혼이고 사람도 만나야 했는데 정말 괴로웠다. 더 안타까운 건 나보고 순응하라는 팀원들이다. 다들 승진하고 싶단다. 그래서 이러고 있단다.

이때부터 처음으로 이 부서를, 아니 이 회사를 나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용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세 번째로,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타인에게 유익을 제공함에 기쁨을 느끼고 싶다.

 

요리사는 자신이 최선을 다해 준비한 맛있는 요리를 손님에게 제공한다. 그 손님은 그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이에 합당한 금액을 지불하면서 음식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준 요리사에게 감사함을 표시한다. 맞는 말을 다소 오글거리게 표현했는가?


퇴사를 하게 되면서 내가 어떤 일을 함으로써 타인에게 유익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팔고 싶었다. 거짓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재직 시절을 떠올리자면, 내가 가입하지 않을 금융상품은 팔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실적에 쫓겨 내가 가입하고 싶지 않은 상품을 팔았다.

입사 후 2년 차 무렵이었다. 어느 날 담당 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 팀장님 같으면 이 상품 가입하시겠어요?”

“아니” 단호했다.

“근데 이걸 팔아야 하고 이걸로 실적 줄 세우기를 하는 거네요….”

“이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저~기 지점장에게 잘 보여서 승진하려면, 팔아야 하지 않을까?”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내가 수용을 못할 뿐이다.


회사를 다니며 알게 된 것은 나는 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지식을 팔던, 상품 혹은 제품을 팔던 내가 누군가에게 유익을 준다는 판단이 드는 것을 거래하고 싶었다.





회사 내에서 실적이든, 어떤 업무든 제대로 못하면 이 조직에서 승진도 힘들고, 너의 인생은 조직 내에서 끝이야라고 외치던 자들의 말들이 귀에 맴돈다. 그런 말에 전전긍긍하며 보냈던 시간들… 생각해 보면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잃고 있었다. 이제 자리를 떠나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중요하지도 않은 말들에 나 자신을 너무 힘들게 놔두었다는 게 느껴졌다.


지금도 현업에서 고생하는 직장인들이 자기 자신을 더 알기 위해 자신에게 집중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나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너무 없다. 반드시 그 시간을 가져야 한다. 출근 시간도 좋고, 퇴근 시간도 좋다. 반드시 나 자신과의 대화를 열어 두었으면 한다.

내가 경험한 퇴사 ‘트리거’ 보다 훨씬 더 확실한 이유가 있어도 참고 견디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격려하고 싶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나’라는 존재가 쉼을 얻고,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말이다.


글을 마치며 노래 한 곡을 추천해본다.

‘GOD <길>’




배경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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