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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Oct 23. 2020

정말로 주인의식을 갖고 싶었다.

나의 페르소나를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너무 신경 쓴다면 당신은 그들의 노예가 될 것이다.
<노자>



페르소나(persona, 가면)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 집단 무의식을 구성하는 심리적 복합체 중 하나로써 ‘페르소나(가면)’라는 것이 있다. 이는 간단히 말해 어떤 특정 문화가 그 소속된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규범, 도리 등(주입된 가치관)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생의 본분, 남자 또는 여자의 도리 그리고 직원으로서의 본분 등이 있겠다.


우리는 직원으로서의 페르소나를 갖기 이전에 한 가정의 자녀로서, 배우자로서, 사회 구성원인 개인으로서의 페르소나가 있다. 우리가 회사에 들어가면 그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필요한 가면(페르소나)을 쓰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잘못되면 회사에서의 ‘나’를 진짜 ‘나’로 착각 또는 동일시하게 된다.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 페르소나는 해당 환경,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그것에 절대적 중요성을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의 일이 진짜 ‘나’의 일이 되고, 회사에서의 인생이 진짜 ‘나’의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 진정한 개인으로서의 ‘나’는 혼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 모든 짐들이 내 어깨에 올라오게 되고, 더 나아가 우울증, 공황장애 등의 증세를 얻게 된다.



나 역시 회사 재직 시절에 그런 유사 증세를 느꼈었다. 밀려드는 업무적 중압감에 회사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눈 앞이 캄캄해지는…. 내일 있을 일 때문에 오늘의 나를 너무도 혹사시키고 자책하게도 만들었었다. 그래서 심리 상담센터를 알아보던 중 오히려 심리학 공부를 통해 나를 더 알고 싶어 져서 상담심리학 학사 공부를 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몸이 좋지 않아 필라테스를 배우다가 필라테스 강사가 되는 것처럼.

도움이 많이 되었다. 부부 및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배웠고, 심리 상담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소양, 그리고 심리학에서 말하는 여러 정신증적 증세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사실상 퇴사하기 1년 반 전부터 수강을 했기 때문에 회사 생활에서 크게 활용하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심리적으로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도록 순간순간 비타민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페르소나의 부작용


회사에는 소위 힘 있는 부서들이 몇몇 있다. 인사, 전략 등(또 뭐가 있나….) 직원들의 채용, 배치, 평가, 그리고 회사 조직의 틀을 흔들 수 있는 그런 부서들이 있다. 그런데 거기에 있는 직원들은 마치 자신이 회사의 그 부서 자체 인양 업무를 연락하거나 협조 등을 논의할 때 거들먹거리는 경우가 있다. 더 나아가 누군가를 소개받거나, 모임에 참여했을 때 알 수 없는 어깨뽕이 잔뜩 들어가 있다. 왠지 그 조직에 소속되어 있으면 그게 자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물론 착각은 자유다. 그러나 회사가 내가 아닌 것처럼 나도 회사가 아니다. 그런 직원들이 조직 내 있는 것은 페르소나에 대한 잘못된 개념 정립이 큰 이유이겠지만, 회사에서 늘 말하는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세뇌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탓은 아닐까 하는 우스갯소리를 한번 해본다(설마, 그 조직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주인이 아닌데 주인의식을??


부장급 혹은 그 이상 직급자들과 미팅을 하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일에 열정을 가지세요, 그리고 내 일이다 생각하고 주인의식을 가지세요.”


하아… 이 말을 쓰면서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 궁금한 것은 저 말은 본인들이 사회초년생 때부터 생각했던 말일까 아니면 그 자리까지 올라가 보니 아래 직원들 통솔하기 위해 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 된 것일까. 저들 말로는 자신이 그 위치까지 가게 된 것이 사회 초년생일 때부터 주인의식을 가졌다고 말을…. (아, 답답해서 더 쓸 수가 없다.)

회사 이야기의 단골손님인 주인의식 얘기를 꺼낸 이유는 내가 퇴사를 하게 된 여러 요인 중, 주인의식이 상당히 큰 이유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인의식을 갖고 싶었다. 나의 일에 있어서 내가 주인이고 싶었다. 회사 일은 나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열정을 가지고 나의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싶어서 퇴사한 것이다. 나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일 자체에 혼을 불어넣을 수 있는 그런 내 일들에 말이다. 

혹자는 자신이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이 나의 일이 되는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관점에서는 내가 열정을 쏟고 에너지를 쏟은 그 일에 대한 결과물(공로)이 전적으로 나에게 돌아오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직원은 절대 주인이 될 수 없다. 주인이 될 수 없는 자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요즘 돌아다니는 한 컷 만화에서 처럼 경영자 마인드를 가지라고 할 거라면 경영자 수준의 급여를 주고 나서 말하는 것이 맞겠다.


주인의식을 운운하는 자들의 상당수는 국가의 가파른 성장에 발맞춰 기업도 정신없이 고성장을 할 때 대학을 다니고 취업을 했다. 본인들은 40살 초반에 은행 지점장을 했었다고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천수를 누렸다. 지금 세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승진을 하고, 더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얻은 지금은 다음 세대를 통제하고 착취하고자 하는 욕망을 계속 발산중이다.

‘열정 페이와 주인의식’

고용되어 급여를 받는 만큼의 권한과 책임만을 가지는 직원들을 향한 저런 ‘어불성설(語不成說)’인 용어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차라리 철저한 직원의식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일을 하도록 하고 싶다면 주인의식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직원의식을 강조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직원의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1. 정시 출근, 무조건 정시 퇴근.

이것 이상, 이것 이하도 없도록 말이다. 주인은 눈치 보며 퇴근하지 않는다.


2. 받은 만큼만 일하자.

누구도 예외 없이 철저하게 받은 만큼만 일하는 문화를 형성하자. 단, 승진과 보수라는 미끼 앞에서 직원들 스스로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3. 권한이라도 주고 나서 책임을 묻자.

일반 직원들에게 권한은 없이 책임만 묻는다. 그런데 정작 권한을 가진 자들은 중요한 순간에는 쏙 빠져나가더라. 권한이 없는데 주인 수준의 생각, 의견 제시, 그리고 행동을 요구한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교전을 앞둔 군인들에게 총은 안 주면서 나가서 싸우라고 하는 것과 같다.





회사는 인생에서 잠시 들렀다 가는 곳


회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잠시 렌트해서 머무르는 곳이다. ‘에어비앤비(airbnb)’를 통해서 렌트한 곳 이라고나 할까. 즉, 언젠가는 진짜 집주인에게 방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간 비어 있는 주인 있는 집에 누군가는 좀 먼저 렌트해서 들어온 것이고, 누군가는 좀 늦게 들어온 것뿐이다. 그 집은 상사나 임원들의 집이 아니다. 집 앞마당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처지가 아니다. 다들 인생길에 잠시 들렀다 가는 거처일 뿐이다. 그리고 임직원은 험한 인생길을 걷는 동행으로서 오히려 서로간에 격려가 필요한 관계인 것이다.

주인행세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주인의식을 운운하는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서, (본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10,20대를 보낸) 직원들이 10대 시절 대학 가려고 고생하고, 20대 시절 취업하려고 고생해서 회사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그런 만큼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일을 잘 알려주고, 그들의 미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인생선배 역할을 하는 것이 같은 ‘인생 나그네’ 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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