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고을 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부유한 김 대감은 수 백명의 노비들을 거느리며 살고 있었다. 일찍이 그는 길거리를 헤매던 젊은 청년들 중 영리해 보이고, 건강해 보이는 자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그들에게 집안 구석구석을 일하게 하는 대신 매달 금전적 보상을 해 주었다. 난생처음으로 일자리를 얻은 청년들은 자신들이 당대 최고 부자인 김 대감집에서 일한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고 어린 시절 제기도 차고 땅따먹기도 하면서 함께 놀던 친구들의 소식이 김 대감집 담장 안으로넘어왔다. 중국과 비단 물품 교역을 한다는 친구, 이 나라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토지를 매매 한다는 친구, 자신이 빚은 도자기를 내다 파는 친구 등 각양각색의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의 소식을 노비들은 듣게 되었다. 이에 노비들은 햄스터 쳇바퀴 돌리듯 항상 같은 공간에서 한정된 일을 하는 자신들의 삶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쉬는 시간에 삼삼오오 모인 노비들의 입에서는 담장 밖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고, 노비 생활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노비들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지난날 노비들이 김 대감 집을 나가는 방법은 3가지였다. 기력이 쇠할 때까지 일하다가 지게를 지고 다닐 힘조차 사라질 때쯤 쫓겨나거나, 어딘가 다쳐서 나가거나, 스스로 나가는 방법이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기력이 쇠하고 나이가 들어 백발이 될 때쯤 내보냈으나 지금 김 대감 후손들은 노비가 50세만 돼도 내쫓는 일이 허다했다. 대부분의 노비들이 그렇듯 다들 이곳에서 평생 일할 생각으로 왔기 때문에 막상 대감집 문을 나서게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 예전보다 더 김 대감 후손들에게 잘 보여서 오래 종노릇 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여보게, 우리도 더 늦기 전에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게 어떤가? 언제까지나 이렇게 매여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정해진 휴가도 제때 못쓰고, 윗선의 노비 잘못 만나면 술 주전자 노릇도 해야 하고, 그렇다고 회의 때 의견을 맘껏 얘기할 수 있길 하나… 이미 정해진 답이 있고 그걸 듣고 싶어 하는 것뿐인데….”
“허허, 이 사람 보게나, 노비가 말이 많네 그려. 담장 너머 세상이 어떤 곳인 지는 알고 있는가?”
“출퇴근할 때 보니 뭐…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 것 같소이다만, 뭐 특별한 게 있소?”
“거 못들었오? 지난번에 통닭집 한다고 스스로 나간 노비 있잖소. 나가자마자 이 나라에 역병 드는 바람에 6개월 만에 망했잖소. 쯧쯧쯧…. 우리 같은 노비는 그냥 주는 거 감사히 여기고 사는 게 맞소이다. 딴생각 마시고 쓰러질 때까지 열심히 일이나 하시오. 그러다가 잘 보이면 승진시켜 줄 수도 있지 않겠소?하하하”
‘하아…. 한 번뿐인 인생인데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그로부터 3년 후
그중 생각이 남들과 다른 노비가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이재이(李在利)였다.
그는 12년 넘게 노비 생활을 하며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노비 조직 내에서는 자신의 시간과 생각, 경제적 독립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이대로 살다가 죽을 수는 없고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이 가고,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일 들이 분명 있다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용기를 냈고, 스스로 나가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 이재이 노비는 선임 노비와 그 결단의 내용에 대해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고, 마침내 3년간의 고민을 끝으로 대감집 문을 마지막으로 열고 나서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 순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턴 내 인생 살아봐도 되지 않겠소? 허허허”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 밖을 걸어 나가 유유히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이재이(李在利)입니다.
저는 12년 이상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저 자신을 위한 시간의 자유와 생각의 자유, 그리고 경제적인 자유를 얻는 인생을 살고자 정말 큰~~~ 용기! 용기! 용기! 를 내었습니다.(직장다니시는 분들은 이게 왜 용기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