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재처(人命在妻) : 사람의 운명은 아내에게 있다.
<떠돌아다니는 글 중에서>
“나 퇴사하면 바로 나가는 거야. 에메랄드 빛 바다와 짙은 오렌지 색의 노을이 쫘~악 비치는 곳으로~ 어때 좋지?”
생각만 해도 설레는 퇴사 후 계획이었다.
진격의 코로나
으악!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무것도 못했다. 계획한 여행뿐 만 아니라, 외출조차 제대로 못했다. 아마 한 2달 정도? 그것은 중국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이하 코로나19)이 발발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2월 중순 퇴사를 했는데, 올해 1월 구정 이후부터 전염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마스크가 필수 착용이 되었다. 그마저 없어서 약국 앞에서 줄을 서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렇게 코로나19는 나의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TV라도 볼까 해서 틀어 보면 확진자 수, 상황, 예방방법, 그리고 사람 많은 곳에 대한 위험성 등에 대한 코로나 관련 뉴스만 나온다. 그런 가운데 확진자의 동선이라도 나오면 내가 그곳에 없었길 바라면서 맘을 조리게 되었다. 이러니 어디 퇴사 기념으로 해외여행은커녕, 국내 여행 아니 동네 마실 조차 나가는 게 쉽지 않은 시기를 집에서 보냈다. 그렇게 퇴사 전부터 계획했던 베트남 한 달 살기는 “Tạm biệt(땀 비엣)~ 잘 가, 안녕~” 그렇게 내 마음에서 멀리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내 그리고 나
퇴사 후 얼마 안 되어 어느 날 아침에 아내가 물었다.
“여보 퇴사한 기분이 어때?”
“음… 글쎄… 특별한 기분은 없고, 마음이 너무 좋아. 평안해. 내가 12년 7개월이란 시간 동안 매일매일 마음을 졸이며 실적과 사람들에 대해 마음을 쓰고 있던 시간들이 참 힘들었었나 봐. 숨 가쁘게 달리다가 모퉁이를 돌아설 때의 그 느낌 있잖아. 뭐가 확 나올 것 같은 그 긴장감. 그게 매일 아침마다 있었다고 보면 돼. 그래서인지 지금 기분이 너무 좋고, 앞으로도 내 생각을 펼치고, 내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대가 돼.”
나도 이렇게 마음이 후련할 줄은 몰랐다. 퇴사일에 지난날의 회사생활이 막 떠오르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회사생활 동안의 희로애락이 막 떠오르고…. 그럴 것 같았는데 그런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물론, 감사한 분들이 있었고, 그분들에게는 이미 나오기 전에 인사는 드렸다.
이렇게 조금의 미련 없이 후련한 마음을 갖게 된 건, 아마도 3년 전부터 내가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하루 중 가장 많은 대화를 나 자신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하루 중 가장 많은 대화 시간을 가지게 되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퇴사 전 3년 동안은 매일 출퇴근 길과 회사 내 과업을 처리하면서 회사 내에서의 여러 희로애락에 대한 나의 생각을 늘 정리해 왔던 것 같다. 퇴사 후 ‘고민을 더 해볼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으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하면서 감정 정리를 미리 해 두어야 한다.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듣고 나서는 아내가 뜬금없이 숨기고 있던 도라에몽이 그려진 엽서 한 장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앗, 이게 뭐야?”
“내 마음이야. 호호”
내용은 대략 이랬다.
기다리던 날이 왔는데 어디 갈 수 없어서 마음이 아프지만,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고, 앞으로 일들에 대해 감사함으로 지내고, 여보는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였다.
평소 시크하기만 한 아내였기에 깜짝 놀람 그 이상으로 너무… 감동이었고, 진심으로 고마웠다.ㅠㅠ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퇴사한 내게 그 무엇보다도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 편지였다. 아내가 있었기에 퇴사할 용기가 생겼으리라.
아내의 편지 한 통이 뭐 그리 대단했겠는가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부부 또는 자녀가 있다면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대계(大計)를 꿈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퇴사를 위해 내가 낸 용기의 지분에 40% 이상은 아내의 몫이고, 퇴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퇴사는 가족들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내 인생이지만, 함께 살아갈 공동체 내 가족들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가족이 필사적으로 퇴사를 반대한다면, 너무 가슴 아픈 상황이지만, 퇴사로 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으로 고마운 아내를 만났다.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아내는 나의 퇴사에 대해 적극 동의해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해 주었다.
“남편이 회사를 다니면서 고통 속에서 행복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두기보다는, 본인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하도록 도와줘서 남편이 진정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 그러고 나면 우리 부부에게 더 큰 행복이 올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나에게 용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