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
<에이브러햄 링컨>
"아, 뭐지? 평일 오후 2신데 웬 차가 도로에 이렇게 많아?"
올림픽대로 위에서 누가 돈이라도 뿌리고 있는지 차량들이 빈틈없이 모여들었다. 다들 어디를 저렇게 가는가 싶었다. 나만 몰랐던 평일 낮의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퇴사 후 첫 오전
마지막 출근 후 8 영업일(토, 일 제외한 평일)이 지나고 퇴사 당일이다(사실 마지막 출근 후 8 영업일 간 휴가를 썼고 비로소 완전한 퇴사일을 맞이하게 됐다. 8일간의 휴가는 유급휴가에 해당되지 않는 안식년 휴가와 더는 회사에 가고 싶지 않은 나의 의지가 담긴 유급휴가를 일부 사용했다.). 더 이상의 출근이 없음에도 이날 아침에도 오전 8시 정도에 일어났다(물론 회사 다닐 때는 6시 반에 일어났지만).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과 조우하며 자연스럽게 말이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아닌 그저 눈이 뜨이는 대로 일어나는 것. 정말 그래 보고 싶었다. 늘 상상했던 순간이다. 그리고 일어나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거실에 앉아 잠시 명상에 잠긴다. 오늘 나의 하루를 위해서, 그리고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 기운이 솟아나기를 기도하면서…. 퇴사를 하면서부터 가진 나의 루틴이다.
퇴사를 하면 그다음 날 세상은 어떨까? 아침의 햇살은 나의 퇴사를 축하하며 찬란한 미래를 예견하듯 더 강렬하게 비춰줄까? 공기는 더 청량할까?
사실 이 질문을 늘 하면서 출근했었다.
그러나 퇴사를 하고 알게 된 나의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아침 햇살은 동일하게 집안을 비춰주었고, 공기는 늘 그렇듯 미세먼지 ‘나쁨’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가 변한 것이다.
밖의 현실이 평소와 다를 바 없듯이, 내 안의 생체 리듬이 아직은 회사의 일과시간에서 덜 벗어난 듯 보였다. 퇴사한 지 일주일 이상 지났음에도 9시가 되면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아서 8시 전에 자동으로 일어나게 되고, 11시 반이 넘어서면 점심 먹을 생각이 나고, 18시가 넘어서면 퇴근하고 싶어 져서 몸을 비비 꼬던 생각도 나면서 퇴사 전의 하루 일과가 저절로 떠오르곤 했다.
이날 오전에는 연말정산 관련으로 퇴사한 회사 사무실 직원들 몇몇과 잠깐 메시지를 주고받고, 전화를 한 것이 전부였다. 퇴사 후 아침엔 무언가 특별한 일들이 내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던 내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실 특별한 일이 없는 것이 더 다행인지도 모른다.
퇴사 후 첫 오후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드라이브를 했다. 사실 퇴사 전 항상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내가 회사에 있는 일과시간 중에 과연 세상은 돌아가는가’ 하는 것이었다. 출발을 위해 네비게이션 앱을 열고 목적지를 검색하자 가는 길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이게 뭐지? 평일인데?’ 나만 몰랐던 것이다. 모두가 극도로 분주하게 어디론가 다니고 있던 것이다.
‘사람들은 회사에 묶여 있지 않아도 저렇게 바쁘게 삶을 살아가고 있었구나.’
나는 내가 속해 있던 곳이 세상의 전부인양 그렇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 안에서 성장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차량은 계속해서 정체를 보였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서는 이미 저 사람들과 평일 전투 대열에 서게 된 것에 대한 비장한 마음이 들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체 대열에 서있었다.
사실 보편적인 직장인들이 그렇듯 몸이 아플 때 또는 개인이나 가정의 행정업무를 보려 해도 주로 토요일 또는 하루 휴가를 내서 일을 처리하지 않는가(물론 점심시간이나 업무시간 중에도 저 일들을 할 때도 있지만). 또 주말에는 어딜 가도 사람들로 가득해서 휴식과 레저를 즐기려다 오히려 피곤만 쌓고 오지 않았던가.
그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사실상 내 시간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기보다는 월요일이 되면 언제 금요일이 올지 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전부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것 만으로도 내가 찾는 내 인생 살기에 대한 작은 행복의 씨앗은 뿌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