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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Oct 14. 2020

나는 아마추어 퇴사러다.

퇴사일에 대한 소회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은 다르다.

영화 <매트릭스> '모피어스' 대사 중에서


퇴사라는 것을 처음 해보았다.


12년 7개월 기간 동안 몸담았던 회사로 가는 마지막 출근 날을 떠올려 본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 루틴(양치 후 세수, 면도하기, 샤워하기, 로션 및 선크림 바르기, 머리 말리기, 외출복 입기, 간단한 아침거리를 챙기며 가방 메고 현관문 나서기)을 이행하고 집을 나섰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비좁은 지하철을 한번 타고, 또 갈아타고 도착역에 내려서 10여분을 걸었다. 어제도 가고 그저께도 갔던 이 길이 이제는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건물로 들어가기 전 주위를 한번 쓰윽 둘러보기도 하고, 건물 앞 공기도 힘껏 마셔보았다. 매캐한 공기의 맛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지만 이 날 만큼은 내 안에 잠시 머무르게 하고 싶었다.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다른 뭔가를 느낄 수 있을까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출근을 서두르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소곳이 기다리는 사람들. 모든 것이 그대로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인데 나는 달라진다는 사실에 내 심장이 간질거렸다.


‘저 직원들 중에서도 나처럼 오늘이 마지막 출근인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라는 사실을 저 사람들이 알면 부러워할까 아니면 오히려 나를 안타깝게 여길까 하는 쓸데(?) 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무실 층으로 올라왔지만, 분위기는 차분하며 조용했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 일이 없는 것이 다행스러웠겠지만, 오늘만큼은 차분한 일상마저 아쉬움을 남겼다.

다 그대로인데, 나만 달라지는 것 같은 그 느낌. 좋아하는 느낌은 아니다.




마지막 출근길에는 곧 있을 아버지의 칠순 행사 때 사용할 진행 멘트를 생각하며 왔는데(직계 친척 몇 분들만 모시고 하는 식사 자리라 내가 직접하기로 했다), 아버지와의 지난날들이 잠시 떠올라 지하철 안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이젠 진정 효도할 때가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얘기를 갑자기 하는 이유는, 마지막 근무를 한 이 회사에 합격했던 그날 눈물을 흘리시며 원하는 어학연수 한번 못 보내주고, 잘해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좋은 곳에 취업해줘서 고맙다고 하신 아버지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40여 군데 서류 접수를 하고 면접도 보러 다니고 취업스터디도 하면서 다른 취준생들처럼 괴로워하고 고민하며 취업을 한 회사였다. 아직도 합격통지 메일을 확인 한 순간 집에 계던 어머니와 눈물로 상봉하던 게 엊그제 같다.

그렇다. 그렇게 들어갔던 회사다.


사실 퇴사를 하고 싶어도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3년 전부터 이 회사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꾸준히 보여왔다. 그 때문인지 나의 퇴사 소식이 부모님마음에 연착륙 수 있었던 것 같다.




자, 어찌 되었든 퇴사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사실 평소에도 매일 회사 건물로 들어가는 그 길을 걸으며, 늘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간 터라 사실 마지막 출근 일임에도 뭔가 시원 섭섭함이 느껴지는 그런 미묘한 생각보다는 드디어 마지막이구나, 이날이 오긴 오는구나 하는 반가움이 더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마지막 근무일이라서 인지 주위에서 사내 메신저로 마지막 근무의 기분은 어떠냐는 질문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차분해. 이날이 오긴 오는구나.”라고 답해주었다.

정말 차분한 건지, 차분하고 싶은 건지…. 내 심장의 간질거림은 그대로인데 말이다.


나는 마지막 나가는 순간까지도 내가 했던 업무의 마무리와 인계를 하고 나가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나야 처음 하는 퇴사이지만(물론,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만), 회사에 질리고, 억울하고, 힘들었던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퇴사 시 회사에 소심한(?) 폐를 끼치고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는 일인 것 같았다. 나 역시 회사에 좋은 마음만 가득 채우고 퇴사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가는 마당에 내 맘대로 할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하지만, 마지막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드디어, 퇴근 전에 부서 직원들과 일일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내 코끝이 찡해짐을 느꼈다. 마냥 웃으며 나가리라 마음먹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았다. 나와의 마지막을 위해 같이 악수해주고 눈 마주쳐 주는 모습 때문에 마냥 웃기만은 어려웠던 것이다. 이 기억은 상당히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았었다.


마지막으로 사무실 문을 나서면서 선배들에게는 꼭 행복하시라고 말해주었고, 후배들에게는 이렇게 말을 해주고 문을 나섰다.


인생은 한 번 사는 거고, 반드시 죽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지금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고 그걸 안다면 알고만 있지 말고 너의 길을 걸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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