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일본 온천여행을 포기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대만, 태국 등 외국 온천여행도 기약 없는 언젠가로 미뤄야 했다. 또 코로나 19 때문에 한 달에 세 번,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며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는 말초적 즐거움도 잊은 지 오래이다.
목욕탕 수건이나 바가지에 향정신성 약물을 발라둔 것도 아니건만, 목욕탕이나 찜질방은 마약 못지않게 중독성이 강하다. 하지만 '목욕 후 개운함'을 이긴 '질병에의 두려움'은 그 좋아하던 온천행도잠시접어두게 만들었다. 그러나, 언제고 온천여행을 잠정 중단할 수만은 없었기에 평소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던 '가족탕'을 대안 삼아 찾아다니게 되었다.
가족탕 (가족 온천탕)은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개인적인 휴식공간으로 객실 내에 욕조가 있고 온천수가 공급되어 가족끼리 오붓하게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가족탕은 가족끼리만 가야 되는 거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프런트에서 호적 사항을 확인하는 것은 아니니 반드시 가족끼리만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로맨틱하지 않은 분위기가 다수이니 부러 연인끼리 갈 필요도 없겠고.
집에서 가까워서 자주 가는 곳, 물이 참 좋지만 멀어서 한 번 밖에 가지 못한 곳,물리적 거리를 감수하고도 몇 번 더 다녀온 곳... 최애 온천도 최다 방문 온천도 아니었지만 브런치에 온천여행 다녀온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결심하고 처음으로 향한 곳은 당연히 백암온천! 단지 첫 온천여행을 떠났던 곳이 울진 백암온천이었기 때문이다.
울진군 온정면 온천로 5에 위치한 백암온천지구는 1981년 10월 21일 온천원보호지구 지정, 1988년 11월 3일 개발계획이 승인되었다. 전국 온천 현황(2019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온천공수 41개, 평균굴착심도 241m, 온도 46.5℃, PH농도(수소이온 농도)가 8.9의 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Na-Co3) 형 온천으로 백암고려호텔, 성류파크관광호텔, 스프링스호텔, 태백온천모텔, 피닉스호텔, 백암한화콘도 등의 온천이용시설이 있다. 2년 전에는 한화리조트 백암온천 대온천탕에 다녀왔는데, 올해는 원탕고려온천호텔 가족탕을 이용했다.
사진출처 : 한화리조트 백암온천
처음 백암온천에 갔을 땐 대온천탕보다 리조트 1층에서 파는 울진대게빵에 더 혹했다. 타입캡슐을 타고 시간을 돌린다면 요일별 특별한 이벤트탕이 있는 온천사우나와 콘도 뒤편에 원탕 분수대, 원두막, 온천 학습장, 평탕 등으로 구성된 온천 학습장을 더 꼼꼼히 둘러봤을 것이다.
아쉽게도 한화리조트 백암온천은 가족탕을 운영하지 않는다. 검색 끝에 찾은 곳이 첫 방문 때 특이한 업장이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 원탕고려호텔이다. 백암온천지구에 들어서면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바로 그 건물이다. 숙박과 목욕업(온천)을 겸하는 경우 온천호텔, 온천장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의 상호 끝에는 '호텔'이 붙지만 시설은 '장'급이다. 하지만 수질로 따진다면 장급이라는 평가가섭섭할 정도? 온천러들에게는 '원탕'이 주는 매력도 상당하니까.
백암온천 원탕고려호텔, 중년의 데스크를 지나 대중탕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백암온천은 경상북도에 있는 온천 중 덕구온천에 이어 두 번째로 이용자 수가 많은 온천이라고 한다. 추측컨대 그중 원탕고려호텔은 외지인보다 현지인들 이용빈도수가 가장 높은 업장이 아닐까 싶다. 넓은 주차장에 손쉽게 주차를 했다. 일고여덟 계단을 밟고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내 나이만큼 나이 먹었을 안내데스크가 눈에 들어온다. 데스크 앞에는 아저씨 한 분이 서서 수건을 접고 계셨다. 차분하고 친절하셨던 그분께 여쭤보니 얼추 내 나이랑 비슷했다. '중후한 인포데스크'되시겠다.
주말의 경우 원탕고려호텔 가족탕 대여 (대실)는 5만 원이고 숙박은 10만 원, 미리 예약을 했기 때문에 예약자 이름을 말하고 객실 키를 받아 올라갔다. 오래된 건물이라엘리베이터가 없으므로 배정받은 317호까지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관리가 잘 된 객실, 희한하게 창문이 벽면 아래쪽에 있었다. 방바닥에 앉아 창문을 열어보니 멀리 한화리조트 백암온천이 보이는 특이한 구조? 침대 옆 협탁에는 스킨, 로션 등 화장품과 드라이어, 롤빗 등이 준비되어 있고미니 냉장고에는 생수 2병이 들어 있었다. 전기포트와 믹스커피, 종이컵도 준비되어 있는 데다 욕실 안에는 대용량 샴푸, 컨디셔너, 바디워시 등도 갖춰져 있어서 별다른 준비물 없이 빈 몸으로 와도 괜찮을 정도이다. 누군가는 내게 '이런 데를 누가 가냐'라고 했는데,"이런 데를 제가 갑니다. 저 말고도 많이들 가고요."
사슴을 뒤쫓던 사냥꾼 덕분에 발견한 백암온천
백암온천지구 들어오는 초입에 큰 돌에 쓰여있는 백암온천에 대한 역사, 효과가 빼곡히 적혀있다. 신라시대 사슴을 뒤쫓던 한 사냥꾼에 의하여 발견된 천년의 역사를 가진 백암온천, 중생대 백악기 이후 화성암 지역에서 용출되는 천연 53℃ (온천공 발견 시기에 비해 현재 수온은 낮아진 모양이다)의 고온 온천수로 물을 절대로 데우지 않는다는 백암온천, 천연 알칼리성 라돈 성분과 수산화나트륨, 불소, 염화칼슘 등 우리 몸에 유익한 각종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만성 피부염, 자궁내막염, 부인병, 중품, 동맥경화, 천식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바로 그 백암온천, 바로 그 원탕에 가족탕이다.
최근에 리모델링한 모양이다. 호텔 외관이나 복도 등에서는 오래된 흔적이 보였지만, 객실 내 조적 욕조며 램프식 욕실 난방기 등은 최근에 공사한 것으로 보였다. (나중에 여쭤보니 2~3년 정도 되었다고 하셨다.) 가족탕의 크기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욕조의 1.5배 정도의 사이즈였다. 크지 않은 덕분에 물은 금방 받을 수 있다. 데워서 사용하지 않은 온천수로 46.5℃라 온수 밸브만 열어 물을 받으면 엄청 뜨겁다.냉수를 섞거나 온수를 식혀서 사용해야 한다.
백암온천의 명성은 온천욕 후 피부 상태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목욕을 마친 후 매끈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나는 악건성 피부인데 목욕 후 바디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당김 현상이나 각질 부각이 없어서 신기했다. 사람마다 컨디션이 다르고 천질과의 궁합도 있기 마련인데, 내 경우에는 백암온천이 불편함 없이 잘 맞고 바로 체감할 수 있는 좋은 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음날 아침식사는 체크인할 때 미리 주문한 1인당 8천 원짜리. 백암고려호텔 출입구 오른쪽으로 식당이 있는데 프런트 모니터를 통해 상차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리 예약을 하면 인원수 맞게 식사를 준비하는 시스템인가 보다.체크인할 때 조식도 먹을 건지 물어본다. 아침식사는 이렇게 반찬 9가지에 공깃밥, 미역국, 숭늉이 제공된다. 근처에 딱히 맛집이라 할 수 있는 곳이 없기에, 숙박을 하게 될 경우엔 해당 숙박업소 조식을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백암온천은 내가 좋아하는 천질이라 온천욕 만족도는 높지만, 당일치기나 1박 2일로 가기에는 힘들다. 일단 길이 매우 구불거려 멀미를 심하게 하는 분들에겐 속 불편한 코스,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달렸다. 딱히 맛집도, 볼만한 곳이 많은 관광지도 아닌 이곳을 여행하려 한다는것은 다분히 온천에 관심이 있기 때문일 터. 개인적으로는 2박 3일 정도 생각하고 오면 괜찮을 곳이라 생각한다. 구불길 오기 힘드니까 온 김에 온천욕 열심히 하다 가는 게 좋겠다. 피닉스, 성류, 스프링스 등에 가보지 못해 아쉽지만, 시기적으로도 대중탕 이용하기엔 무리였고 낼 수 있는 시간이 1박뿐이라... 남은 아쉬움은 멀미를 감당할 수 있을 또 한 2년 후에 도전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