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 아버지의 눈물과 딸의 성장
그 상관관계에 관하여
아버지의 눈물을 본 적 있는지? 보통 인생의 큰 사건 앞에서 아버지의 눈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사업을 실패했거나, 자식이 결혼한다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거나. 물론 나도 아버지의 눈물을 본 적이 있다. 아빠가 작게 시작했던 사업에 실패했을 땐 내가 너무 어려서 아빠의 눈물을 본 기억이 없다. 언니가 결혼할 땐 웨딩홀 한쪽 구석에서 울다가 나한테 걸렸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어디서 우셨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네 아버지들은 자식 앞에서 어지간해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좀 이상한 순간에 우리 앞에서 대놓고 눈물을 보였다.
아빠가 첫 차를 폐차하고 온 날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아빠는 운전면허 응시표에 더 이상 도장 찍을 칸이 없을 만큼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운전면허를 따고 생애 첫 차를 구입했다. 거의 똥차에 가까운 중고 봉고였다. 유난히 공간 감각이 없고 길치인 아빠는 매일 일터에서 돌아와 집 앞에 주차를 할 때마다 엄마를 불러 뒤를 봐달라고 했다. 한 번은 지나가던 운전자가 답답해 펄쩍 뛰다가 직접 주차를 해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아빤 봉고와 하나가 되었다. 이젠 가까운 곳에 갈 때도 더 이상 버스를 타지 않았다. 내 눈엔 창피하기만 한 그 봉고가 아빠에겐 다리였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이었다. 하지만 봉고는 이내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애초에 살 때부터 덜덜거리는 노인이었으니, 그만 편하게 보내주는 편이 나을 정도였다.
그렇게 폐차를 하고 얼큰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거실에 대자로 뻗어 오열했다.
"으아~ 그 개새끼들이 타이어 공기도 다 빼 불고 발로 차고, 완전 개새끼들이라~. 아이고, 그동안 고마웠다이. 어딜 가도 행복하라~."
지금은 아빠가 봉고에게 느꼈을 애착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땐 아빠가 웃기기만 했다. 엄마와 우리 4남매는 엉엉 우는 아빠를 보면서 키득거렸다. 아빠가 평소에 워낙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었기에 우린 아빠의 슬픔을
그렇게 웃어넘겼다.
두 번째로 아빠의 이상한 눈물을 본 것은 아빠의 새들이 도망간 날이었다.
산에 놀러 갔던 아빠는 우연히 둥지에서 떨어져 울고 있는 새끼 새 세 마리를 발견했다. 당시 아빠가 그 새들이 '매'라고 했는데 확실한 건 모르겠다. 아무튼 아빤 베란다 한 구석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녹색 그물망을 쳤다. 그리고 나무로 가로대를 설치해 커다란 새장을 만들었다. 아빤 퇴근할 때마다 생고기를 사다가 직접 새들을 먹였다. 새끼 새들은 건강하게 자랐고, 아빠가 새장 안으로 들어가면 아빠 어깨에 내려앉기도 했다. '매'일지도 모를 그 새들은 아빠의 자랑이었다. 아빤 틈만 나면 친구들을 데려다 새를 구경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고기를 들고 새장 문을 연 순간 새들이 후드득 날아가버렸다. 눈 깜짝할 새의 일이었다. 아빤 망연자실했고, 그날도 우리가 보든 말든 엉엉 울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빠는 입으론 "남자 새끼가 왜 우냐"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감정을 잘 숨기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면서 훌쩍훌쩍 울기도 잘 한다.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빨 바라보면, 아빠는 "독한 년. 넌 저런 거 보면서 울지도 않냐?"라고 쏘아붙인다.
그런 아빠 밑에서 난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아빠도 우는구나. 그런데 아빠가, 아빠가 돼서는 별 것도 아닌 일로 우네? 아빠가 우니까 웃음이 나네? 아, 운다는 게 별 것 아니구나.' 이런 논리적 구조가 생성됐달까. 그러고 나니 세상에 심각한 일이 별로 없어 보였다. 속상한 일이 생겨서 잠깐 눈물이 핑 돌았다가 이내 피식 웃음이 터졌다. 나는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속 편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물론 아버지의 눈물이 전부는 아니다.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서울 연립주택으로, 그랬다가 다시 경기도 판잣집으로 전락했을 때도 씩씩했던 엄마. 무슨 일이 생겨도 '그까짓 거 뭐 대수냐?'라는 말부터 꺼내고 보는 엄마. '고 대충 여사'의 막무가내 긍정 마인드도 현상의 좋은 면만 보며 살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4남매 2호, 딸.
지난 생을 돌아보면 부모님께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는 마음의 구멍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빠의 엉뚱한 모습과 엄마의 강한 모습, 지겹도록 싸우면서도 기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연락하는 형제들이 있기에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웃음 속에 쌉싸름한 눈물 한 방울 담긴 시트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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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남매 2호 딸의 시트콤 인생>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시트콤처럼 너무 무겁지 않게 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