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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Feb 21. 2024

형제도 짝이 있다.

1-3과 2-4

누군가 내게 지나온 내 삶을 그림 한 장으로 그려보라고 한다면, 나는 얼굴로 랩을 뚫으려고 기를 쓰다가 우스꽝스럽게 찌그러진 내 얼굴을 그릴 것이다. 예능에서나 볼 법한 그런 웃기는 얼굴 말이다. 목엔 핏대도 서 있을 것이다.


보기엔 만만해 보이지만 막상 뚫으려고 하면 어지간한 힘으론 꿈쩍도 하지 않는 질긴 벽. 언니와 쌍둥이 남동생 사이에 낑겨 태어났기 때문일까? 나는 나와 언니, 나와 쌍둥이 남동생 사이에 랩으로 만들어진 그런 벽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유난히 고집스러운 성격이어서 그걸 꼭 뚫어야 직성이 풀렸기에 그렇게 기를 쓰고 살아왔겠지.


그런데 우리 집에서 나만큼이나 눈물 젖은 쌀을 삼킨 이가 있었으니, 바로 막내인 4호였다. 10분 차이로 쌍둥이 동생이 된 4호는 어찌 된 영문인지 츤데레의 표본으로 자랐다. 누나들이 이름만 불러도 꺼지라고 소리치지만, 정작 누나들의 부탁은 거의 다 들어준다. 가끔 돈도 준다.


나는 4호가 어쩌다 그렇게 몹쓸 츤데레가 됐는지 그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와 4호 사이에는 둘째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둘째 딸, 4호는 둘째 아들. 그리고 우리 둘이 1호와 3호보다 엄마 심부름을 더 많이 했다는 것도 비슷하다. 첫째 딸과 첫째 아들인 1호와 3호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서글서글하다. 그만큼 능글맞고 요란하며 어수선하다. 그에 비해 나와 4호는 방어적이고 꼼꼼하며 차분한 편이다. 나 원 참, 형제도 짝이 있을 줄이야.


심부름을 시키는 엄마의 입장에서 더 의지가 된 건 당연히 나와 4호였으리라. 엄마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소리 높여 나나 4호의 이름을 부르면, 우린 왜 맨날 나만 시키냐고 입을 댓 발 내밀었다. 그러면 엄마는 큰 것들한테 일을 시키면 한 번에 끝나는 법이 없어서 그렇다며 웃어넘겼다. 할 일은 넘치는데 똑같은 심부름을 재차, 삼차 시키려니 엄마도 속이 터졌으리라.


어쩌면 그 과정에서 나와 4호에게 자격지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나만 더 일하고 나만 덜 사랑받는다는 자격지심. 그나마 나는 좀 나았다. 언니보다 두 살이나 어린 동생이라는 명백한 이유가 있으니 억지로라도  수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호는 아마 나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겨우 10분 먼저 태어났다는 시답잖은 이유로 오 씨 집안 장남 타이틀을 거머쥔 3호. 그 3호가 능글맞게 심부름을 요리조리 피할 때마다 혼자 씩씩대며 분을 삭였을 것이다.


틀림없다.


어느 한 날, 4호가 3호에게 이렇게 말했으니까.


"야, 너 장남 자리 나한테 팔아. 5천 원 줄게."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이래도 꺅, 저래도 꺅인 3호는 이게 웬 횡재냐며 얼른 오 씨 집안 장남 자리를 팔았다. 

단돈 5천 원에.


물론, 그렇다고 4호를 장남으로 인정해 주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이래저래 불쌍한 4호. 그리고 나.

가여운 오 씨 집안 둘째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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