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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l 03. 2023

이런 멋대가리 없는 건물이 1등?

우연히 2023년 스톡홀름 '올해의 건물' 수상을 알리는 스톡홀름시의 발표를 봤다.

스톡홀름 건축상 1등은 어떤 건물일까.

올해의 건물로 뽑힌 건축물을 봤는데 '에게, 이게 뭐야'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스톡홀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테라스가 달린 공동주택에 다름 아니었다.

디자인이나 구조가 색다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직육면체 아파트 건물 단지에 불과했다.

1등 건축상이라면 뭔가 건축에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23년 스톡홀름 올해의 건물 후보 10개 건물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2022년 부산다운 건축상 대상에 부산 수영구 민락동 해변가에 들어선 복합문화시설 '밀락더마켓'이 선정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부산 북항에 있었던 창고 건물을 모티브로 내부에서 광안대교가 보이는 구조에 각종 편집숍, 팝업스토어, 체험형 플래그십, 아트 플랫폼 등이 있는 복합문화건물이었다. 부산의 정체성과 가치를 살렸다는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2022년 서울시건축상 대상은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을 합친 듯한 라키비움(larchiveum) 형태의 중정이 인상적인 김근태 기념도서관이 수상했다.

부산다운 건축상 대상 '밀락더마켓', 서울시건축상 대상 '김근태 기념도서관' (사진=부산일보, visitseoul.net)

건축상을 받는 건물은 이 정도는 돼야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에 비하면 스톡홀름 '올해의 건물'은 너무 평범했다.

도대체 뭘 보고 상을 준 건지 궁금했다.

스톡홀름 올해의 건물로 선정된 건축물은 하가스타덴(Hagastaden)에 있는 세데루센(Cederhusen).

필로티 구조의 8~10층 건물 4동짜리 245채 주택이 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단단한 목재로 된 스톡홀름 최초의 대형 아파트로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주택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했다.

전원주택이나 단독주택을 나무로 짓는 게 유행이라는 말을 들은 적은 있었다.

그런데 아파트를 철근 콘크리트가 아닌 목조주택으로 만들었다니...

심사위원은 이 건물이 스톡홀름에서 목조 주택 기능과 도시 경관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스톡홀름 올해의 건물 Cederhusen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기둥 등 주요 구조를 비롯해 건물 대부분을 목재로 만들었다는 게 신기하긴 했다.

인테리어 할 때도 나무를 잘 쓰면 집이 훨씬 따뜻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나무 아파트는 특유의 색깔과 함께 스톡홀름의 전통적인 분위기, 디자인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고 심사위원단은 설명했다.

특히 목조 아파트 주택은 기후변화에 좋은 효과가 있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기본적으로 나무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 과정에서 탄소를 저장해 '탄소 통조림'으로 불린다.

목재를 약 36㎡ 사용한 목조주택 1동에서 탄소 9톤을 저장하고 목조건축 1000㎡를 만들면 탄소 130톤을 저장할 수 있으며 탄소 대체효과도 270톤에 달한다고 한다.

개인, 기업 등이 활동이나 상품을 생산, 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특히 이산화탄소 총량을 말하는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현격히 줄일 수 있는 셈이었다.

더군다나 나무는 탄소를 잡아두는 포집 역할도 해 목재건물은 일반 콘크리트 건물보다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 효과도 크다.

스톡홀름 올해의 건물 Cederhusen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그런 설명을 들으니 과연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스톡홀름의 '올해의 건물' 다웠다.

온실가스 3분의 1이 건축에서 발생한다고 하는데 콘크리트, 철근 대신 목재로 건축물을 만든다면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테다.

실제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 연구에서 건축 재료로 콘크리트와 강철을 목재로 대체하면 평균 60%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결과도 있었다.

더불어 목재건물에서 생활하면 스트레스 감소나 생산성, 집중력 향상 등의 효과도 있다고 했다.

건물 디자인만 보고 수상 자격 운운한 나의 짧은 생각이 참 경솔했다.

디자인이나 구조가 아니라 소재와 기능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낸 건축상 수상작이었다.

스톡홀름 올해의 건물 Cederhusen. 나무로만 만들었다. (사진=스톡홀름시 홈페이지)

스톡홀름엔 목조 아파트 단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도시 자체를 목재로 짓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었다.

 아트리움 융베리(Atrium Ljungberg)라는 부동산 회사는 2025년 스톡홀름 남동쪽 나카(Nacka)의 시클라(Sickla) 지역에 세계 최대의 목조 도시를 착공할 예정이다.

25개 블록, 25만㎡ 면적에 약 30개 건물을 목재로 만드는 계획이다.

이 목조 도시가 완공되면 7천개의 사무실, 2천채의 주택이 만들어진다.

전체가 거대한 나무 도시가 되는 셈이다.

실제 어떤 모습일지 기대되고 궁금했다.

Nacka의 Sickla 지역에 들어설 세계 최대의 목조 도시 (사진=Dagens Nyheter, 일러스트:Henning Larsen)

건축가 유현준은 자신의 책 '인문건축기행'에서 건축물은 그 시대와 사회의 반영이라고 했다.

건축물을 보면 사람들이 세상을 읽는 관점, 물질을 다루는 기술 수준, 사회경제 시스템, 인간을 향한 마음, 인간에 대한 이해, 꿈꾸는 이상향, 생존을 위한 몸부림 등이 보인다는 말이었다.

스톡홀름 '올해의 건물'과 시클라(Sickla) 목조 도시 추진을 보며 기존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환경에 도움이 되는 건축물을 짓고자 하는 스웨덴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건 약간 둔탁한 듯 멋대가리 없는 건물 디자인에 숨어있는 실용주의와 말로만 떠드는 온실가스 감축이 아닌 실천의 미덕이기도 했다.

10개 후보작 중 시민 온라인 투표로 올해의 건물을 선정한 시민 안목은 몇몇 전문 심사위원들만의 결정으로 뽑는 선정방식보다 훨씬 권위 있어 보였다.


스웨덴 리딩외 월셋집 주변에도 단독 목조주택이 많았다.

한 2층 주택엔 '1910'이라고 완공시점을 표기해 놨는데 집 나이가 110세가 훌쩍 넘은 셈이었다.

계속 수리하고 관리하니까 전혀 오래됐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30년만 넘어가도 오래됐다고(혹은 집값 때문에) 허물고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는 한국의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를 벗어나 마당 있고 꽃 피는 단독주택, 이왕이면 탄소발자국 줄이는 목조주택을 꿈꿔봐야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뤄지지 않을까.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 신문,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 에코미디어의 '친환경건축, 기후위기시대 목조 건축의 필요성 증대' 기사, via.tt.se, 스톡홀름시 홈페이지, Dagens Nyheter 등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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