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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l 21. 2023

여보, 우리 여기서 살까

복지제도가 좋다는 스웨덴에 대한 기대가 컸다.

허나 스톡홀름 시에서 날아온 첫 달 막내의 유치원비와 둘째의 방과 후 활동(fritid) 비용 청구서를 보고 적잖이 실망했다.

두 비용을 합쳐 우리 돈 27만원가량을 냈다.

비싼 월세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형편인 우리 부부에게 제법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무상교육인 한국 유치원은 매월 간식비나 기타 수업비 등으로 15만원 정도를 냈던 기억이 있었다.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도 과목당 4만~5만원이었다.

그에 비하면 스웨덴 유치원비와 방과 후 활동비는 오히려 더 비싼 편이었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무상교육 시스템은 외국인에게는 예외인가 싶었다.


몇 달 후 스톡홀름 내 다른 지자체로 이사한 뒤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자녀 학교 등록 현황을 살펴보다가 부모 소득을 적는 코너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치원비나 방과 후 활동비가 부모 월 소득에 따라 정해진다는 걸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었다.

부모 소득액을 등록하지 않으면 소득 정보를 고의로 누락한 것으로 보고 최대 비용을 내야 했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아내와 난 몇 달간 최고 수수료를 납부한 셈이었다.

그동안 낸 돈이 아까우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만약 소득 신고 사항을 몰랐으면 청구되는 대로 계속 비싼 돈을 내야 했을 테니까.

월소득을 계산해 기입했더니 다음 달 유치원비와 방과 후 활동비가 원래 냈던 돈의 5분의 1 이하로 청구되는 마법을 보여줬다.(월 소득액은 추후 확인을 거친다.)

스웨덴 복지는 허울뿐이었다며 맹폭을 퍼붓던 우리 부부는 바로 돌변해 역시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 스웨덴은 다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웨덴에서는 한 달 54,830크로나(약 676만원) 이상을 버는 가정은 첫째 자녀의 유치원비와 방과 후 레저 활동비로 최대 수수료를 낸다.

그 이하 소득 가정은 자녀 수나 출생 순서에 따라 최대한도 내에서 소득의 1~3% 수수료를 납부한다.

그제야 예전 과속운전으로 적발된 스웨덴의 한 기업가가 소득에 비례해 수억원의 벌금을 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재산과 소득에 따라 벌금액이 달라지는 스웨덴식 평등과 공정을 유치원비를 내면서 실감할 줄 몰랐다.

스웨덴에서는 사람마다 돈의 무게가 다른 만큼 소득에 비례한 벌금을 내고 이를 공평하다고 받아들였다.

한국에서 소득에 따라 벌금을 부과한다면 큰 반발에 직면하지 않을까.


스웨덴 국민은 연간 소득에 따라 지자체에 28~35% 정도의 지방세를 낸다고 했다. 평균 지방세율은 32.34%였다.

이에 더해 연간 598,500크로나(약 7,385만원)를 초과하는 소득에 대해 20%의 주소득세도 내야 했다.

연소득 중 적게는 28%, 많게는 40% 전후의 세금을 납부하는 곳이 스웨덴이었다.

자본 소득세율은 약 30%, 부동산 차익에 대한 세율은 22%, 법인세율은 20.6%, 부가가치세는 상품이나 서비스 25%, 식품 12%, 서적 신문 여객 운송은 6% 등이다.

이런 높은 세금은 사회민주주의 스웨덴을 떠받치는 근간이었다.

물론 고율의 세금을 견디다 못해 스웨덴을 떠나는 기업이나 운동선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스웨덴 국민은 높은 세금과 복잡한 과세제도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묵묵히 감내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애초 스웨덴에 올 때 악명 높은 고물가에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식료품 가격은 비싸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보다 더 값싼 품목도 많았다.

특히 아이들의 음악, 체육, 레저 활동 비용은 한국에서 들인 사교육비보다 훨씬 저렴했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일주일에 한 번씩(20분) 한 학기 동안 배우는 데 15만원 정도였다.

농구 역시 30만원가량만 내면 유니폼, 농구공 등이 든 키트를 받고 2학기 동안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겨울이 되면 도처에 마련되는 빙상장에서 무료로 스케이트를 즐겼다.

여름이 되면 도심 곳곳 수영장에서 5명 가족 기준 29,000원(정기권을 구입하면 더 저렴)에 하루 종일 놀았다.

열심히 할 거 다 하는 데도 아내는 월세를 제외한 스웨덴 한 달 생활비가 오히려 한국보다 적게 든다며 신기해했다.

한국에서는 방과 후에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학원비만 해도 꽤 큰 비중이었고 주말에 밖에 나가면 다 돈이었다.

여름에 워터파크 한 번 가면 수십만원이 나가는 건 예사였다.

스웨덴에선 주말에도 돈 없이 혹은 돈을 적게 쓰고도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일랜드 출신 이웃은 영국에서도 다양한 음악, 체육, 레저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큰 차이는 비용이라며 영국은 '돈 드는 스웨덴'이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

독일로 이사 간 막내의 유치원 친구 엄마는 스웨덴의 아이 친화적인 환경이 그립다며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스웨덴에서 음악, 체육, 레저 활동 비용이 저렴한 건 운영 형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톡홀름 곳곳에 있는 음악학교(10여곳), 체육관·운동장(실내외 154개), 수영장(야외 9개, 실내 14개)은 모두 공영시설이었다.

지자체가 운영하기에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었다.

축구교실이나 테니스 수업 등은 협회가 운영하는 반공영 형태였다.

겨울의 나라 스웨덴에서 스키 강습이나 체험이 비교적 비싼 이유는 공영이 아닌 민영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었다.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 속에서 아이를 키운다면 월 소득의 40%를 세금으로 내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금으로 수입이 줄어도 지출이 상대적으로 적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낸 세금이 여러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믿음과 신뢰는 고율의 세금에도 조세 저항이 많이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기후나 자연환경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1년 내내 미세먼지가 없고 태풍 등 풍수해가 없는 건 한국인으로서 정말 부러웠다.  

겨울이 길긴 하지만 아주 춥지 않았고 여름엔 습도가 낮고 쾌적해 1년 내내 야외활동이 가능했다.

언제든 깨끗한 수돗물을 별다른 걱정 없이 마실 수 있는 건 덤이었다.

이런 기후 조건이라 정수기, 공기청정기, 에어컨 등의 가전제품은 전혀 필요 없었다.

사실 스웨덴에 오면서 큰 짐 하나에 캠핑용품을 담아왔다. 스웨덴의 멋진 자연 속에서 캠핑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1년이 되도록 캠핑 한 번 가지 않았다.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는 게 더 정확할 듯싶다.

매일 가까이 있는 자연을 접하고 언제든지 숲을 걸을 수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유독 캠핑이 유행하는 건 도심에서 자연을 느끼기 쉽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언젠가 한국에선 아이 한 명이 대학 졸업 때까지 드는 비용이 2억~3억원이라는 어느 조사 결과를 봤다.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넉넉잡아 10억원은 있어야 세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말이었다.

돈이 없으면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세상, 슬펐다.

문제는 돈으로 교육을 사는, 재능을 사는 경향이 더 심해진다는 점이었다.

2023년 3월 국민의힘은 저출산 대책으로 아동 1인당 18세까지 매달 100만원씩 총 2억원이 넘는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기사를 봤다.

한 달에 100만원씩 준다고 해도 요즘 유행한다는 영어유치원 한 달 회비도 안 되는 돈이다.

매달 100만원 바라고 아이를 낳겠는가.

돈으로 아이를 키우는 사회에서 돈 있는 사람은 자녀 교육에 돈을 들이부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식에 대한 미안함, 열패감에 빠지게 될 것이 뻔하다.

돈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아이가 좋은 교육을 받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서 소득에 따른 세율 40%의 세금을 내고 스웨덴 같은 교육, 스포츠, 음악, 레저 활동 여건을 만든다면 학부모들은 얼마나 동의할까.


최근 아내는 스톡홀름의 어느 한식당에 갔다가 주인분으로부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가 3명이면 무조건 스웨덴에 살아야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차라리 이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를 몰랐으면 좋았으련만.

한 달 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내와 난 서로에게 물었다.

"여보, 우리 여기서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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