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 삶의 태도, 문학의 태도
# 15
- 문학의 태도, 삶의 태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 어느 인터뷰에서 글 쓰는 데 어떤 기준이 있느냐는 질문에 스스로 마련한 세 가지 잣대가 있다고 했습니다. 글 쓸 때마다 되새기는 세 가지 기준.
1.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2. 어디만큼 와 있는지
3. 기꺼이 ‘저 너머로’ 가려는 의도가 있는지.
이걸 보고 내 나름의 기준을 세워보았습니다.
1. 쓸만한 가치가 있는가.
2. 어디만큼 와 있는가.
3. 기꺼이 ‘삐딱해질’ 용의가 있는가.
글을 쓰다 보면 글이 글을 쓰는 경우가 생깁니다. 나도 모르게 글의 흐름이 바뀌고 마는 거지요. 쓰는 동안 어떤 영감을 순간적으로 받아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대개는 엉뚱한,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글이 됩니다. 그런데 그게 또 그럴듯하게 보여 이게 재능이거니 자찬하기도 합니다. 결국 안 좋은 글인데.
그걸 막으려고 1번 ‘쓸만한 가치’를 새깁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다 쓰지 않기. 자기 통제가 필요합니다. 세상에 범람하는 게 쓰레기와 망나니. 글 쓰기가 쓰레기와 망나니 생산이 되어서야.
작가로서 지금 어디에 위치하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며 자괴감에 빠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작품을 받아주지 않는 작가, 화분에 꽃 한송이 심기보다 못한 것 같은 글쓰기 노동의 결과,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방향은 명확해도 길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을 때의 곤혹감. 주저앉고 싶은 좌절, 낙망. 이럴 때마다 남이 따뜻한 시선 한 번 던지지 않아도 내 위치를 점검해 보는 것은 다시 일어설 힘이 됩니다.
좋은 글, 안 좋은 글이 넘치는 시대. 개성(때론 몰개성이)이 만발하고 재치(때론 무딘 말솜씨)와 별스러운 정보, 아이러니(때론 역겨운 말장난), 번득이는 표현(때론 과해서 눈살이 찌푸려지는)이 난무하는 요즘의 글쓰기 시대.
꼰대 세대에 속하는 글쟁이로서 어떤 글을 쓸 것인가? 나만의 ‘문장’은 무엇인가? 과거의 ‘고답적인’ 문학을 견지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 끝에 내놓은 해답은 ‘삐딱해지자’는 것. 멀쩡한 것을 억지로 비트는 것과는 다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기존의 안일함을 거부하자는 것.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경악스러운 문장 만들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문학의 태도는 곧 삶이 태도가 되고, 삶의 태도에서 문학의 태도가 나오거늘, 내 삶은 별로 삐딱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니체 씨. 니체 씨 시대의 글 쓰기는 어떠했나요? 니체 씨 삶의 태도는요? 저작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하지만, 육성으로 듣고 싶네요, 이 추운 겨울 아침에.